전통 목공예를 찾아 모으고 가꾸는 사람좋은 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한 국가 혹은 민족의 변천사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문화유산이라면, 시간과 공간, 동서양을 초월하는 작가의 감성이 묻어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볼만한 전시를 기획하기까지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위해 전시기획을 하고 작품수집,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이 바로 학예사 혹은 큐레이터(curator)이다. 짧은 시간에 그 나라를 이해하려면 박물관에 가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를 통해 한 국가의 변천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전국의 박물관 및 미술관, 일반화랑에 종사하는 학예사(큐레이터)는 모두 약 1,000여명으로
나무와 함께한 반세기 공예 인생차기수 명장은 목공예 경력만 반세기가 넘는 51년이다. 대목이었던 할아버지와 역시 목공이었던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던 그였기에, 목공예의 길을 시작했던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업경영자의 일선에서 물러나 3대에 걸쳐 전통을 살리는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차기수 명장(2001-8)을 만나보았다. 3대를 이어온 목공예의 길"목공이란 것이 기술과 인내를 가장 필요로 하는데, 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이 모든걸 타고난 것 같다"며, 차기수 명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는 어렴풋한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1937년 경남 거창에서 삼남매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일어난 작은 사고로 지금껏 70여 년 가까이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
전통의 맥 이어온 30년 공예가의 길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할 요즈음인데, 전통을 고수하며 이조시대 선조들의 목공예 기술의 맥을 잇고있는 우직함이 존경스런 사람이 있다. 목공예가의 이름으로 한가지 분야에서 30년간 묵묵히 땀흘리고 있는 사람.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99-18) 최일호씨를 만났다. 목공예와의 인연충남이 고향인 그가 전통을 고수하며 이조시대의 목공예 작품을 제작에 열중하고 있는 공방 "이조공예"는 현재 경기도 일산시에 자리잡고 있다. 1973년 서울 월곡동에서 처음 목공예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소목공의 대가로 꼽히는 故허기행 선생과의 78년 인연을 시작으로 마지막 제자로서 이조목공예의 기술을 전수 받은 장인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그였기에 다른사람
노력과 땀으로 꿈을 키워가는 사람2002년 이타미국제공예전(2002 Itami International Craft Exhibition)에서 한국인이 대상에 올랐다.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국제 공예전이고, 현대공예이기에 유리와 금속 등 모든 공예품들이 경쟁을 치렀다. 그 중에서 목공예로 당당히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공예가 고무영의 이름 옆에는 너무 간단한 소개만이 있었다. 이름과 그 전년도의 "2001 청주 국제공예공모전"의 동상 수상경력과 몇 줄만이 남겨져 있었다. 고무영은 학연과 지연등 그 모든 것을 상대로 경쟁했다고 말한다. 그가 그의 경력과 학력을 남기지 않았던 것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도구로 삼는 것이 싫어서 였던 것이다.어려서부터 기능인이 아닌 공예가가 되고 말겠다고 살아온 그의
파도를 헤쳐 나갈 듯 생생한 범선 모형범선을 모르는 사람들은 범선을 프라모델과 같이 취급하기 일쑤다. 그러나 범선은 플라스틱 키트만으로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창작을 곁들여야하고 시대적인 배경에 따라 철저한 고증도 필요한 복잡한 작업이다. 그렇다고 프라모델 제작이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장마가 시작되는 즈음 만난 범선화랑의 손영수 씨는 범선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국내에서는 범선을 제작하는 매니아 층이 구성된 역사가 짧다. 일본이 30년 정도의 역사를 지녔다면 국내는 불과 3년정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최근 들어 범선동호회 회원이 늘고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어 국내 범선제작에도 희망이 보인다는 손영수 씨는 지금 제주도 하멜표류 350주년 기념전시회에 선보일 "프린스 윌
디자인 따라 다양한 전통목공예 기술 보급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에는 생활전반에 걸친 디자인 분야의 창의성 개발과 이를 바탕으로 기초 조형과 이론을 종합적으로 교육하는 생활디자인전공분야가 있다. 이들 학생들의 디자인이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탄생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곳이 가구공작실이다. 이곳에서 지난 7년여 동안 학생들의 목공기계?기구 실습을 지원해 주고 있는 테크니션 류오현씨를 만났다. 기계제도에서 전통목공예의 길로미술을 통한 예술대학을 꿈꾸던 그가 실업계 공업고등학교에서 기계제도를 하기까지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마음이 더욱 답답했었다.그러던 중, 재학중인 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을 통해 국가기능올림픽대회 목공예 분야의 기능장들이 모인 소모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곳 선배들
국내 최대 9,500명 회원의 인터넷을 통한 "목재전도사"국내에도 인터넷이 활발히 보급되면서 많은 동호회들이 성장했다. 그 속에서 유행처럼 만들어진 것이 인터넷의 카페운영과 같은 것들이다. 카페운영의 대명사가 된 "Daum"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회원수를 자랑한다. 그 가운데서 DIY부분에서 회원 9500여명으로 4위, 악세서리 등을 제외한 가구부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생각을 담은 가구(www. cafe.daum.net/gounson)"이다.자발적으로 나무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나무와 생활의 새로운 끈을 엮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카페의 운영자인 김대영 씨다. 그의 닉네임 "고운손"처럼 사람들을 손짓하며 목재와는 전혀 무
"살아있는 재료를 이해하라"부전자전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목공예 명장 권우범씨는 그만큼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느 때부턴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지금은 작고하신 아버지 권혁원 선생의 작업하는 모습과 나무들이었고 자연스레 목공예에 몸담게 됐다는 그. 그러나 그는 옛것을 그대로 재현해내는데 안주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연구하고 나무를 이해하면서 현대 생활양식과 주거양식에 맞도록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그가 다른 공예인들과 다른 점일 것이다.목공예에 종사하는 이로는 드물게 지난해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한 목공예 명장, 대권공예 권우범 대표의 나무와 함께한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버지 연장에 손을 대다권우범 명장는 어린시절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6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혼
DIY를 통해 잃어버린 삶을 찾는 사람들요즘은 DIY가 흔한 단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DIY를 단순한 만들기만을 위해 찾아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새로운 만남을 만들고 땀흘리고 일하는 과장에서 새로운 성취감을 회복하고, 또 나무와 자연을 접하면서 생명의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많은 DIY공방들 가운데 유난히 사람냄새가 많이 나는곳이 있었다. 회원들의 한마디 한마디와 홈페이지의 여러 구석구석에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무었을 만들고 있는지 "만드는 세상"의 만세학교를 찾아가 DIY를 통해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 본인들의 잃어버린 시간과 삶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컴퓨터학도의 DIY입문기만드는 세상, 만세학교는 지금까지 약 250여명의 회원들이
붓 길 흐름 따라 칼 가고 마음 가는 공예주5일 근무제도의 정착이 가시화되고 있는 요즈음 우리들에게 돌아오는 경제적 · 시간적 여유로움은 삶과 문화 또한 윤택하게 바꿔 놓고 있다.바쁜 생활을 핑계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며 불만족했던 시간들도 이제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가 선용을 통해 행복한 삶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매주 금요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 가면 자연냄새 물씬 풍기는 나무판에 글자 한자 한자씩을 정성스레 새기며 자아실현의 기쁨에 도취되고 있는 현대의 선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의 여가를 통한 삶의 풍요로움을 엿 보기 위해 교육이 진행중인 강의실을 찾았다. 각자의 탄생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운영중인 각자 기초 및 연구반은 1979년 전통교육을
홍송 캔버스를 녹인 봄기운 나무보다 더 친근한 소재가 있을까?인간의 생활에서 나무는 그늘이 되어주고 집안을 아름답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나무에서 봄기운을 느낄 수는 없을까?종로구 소격동 화랑과 전시관이 즐비하게 늘어선 한켠, 금산갤러리에는 벌써부터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린시절 동화책을 펼쳤던 것처럼 꽃밭을 거니는 느낌이 든다. 9번째 개인전을 연 장옥심 서양화가의 전시회는 나무를 캔버스 삼아 여느 작품보다 따스함이 배어나온다. 그의 전시회와 작품, 그리고 나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주인을 닮은 작품"솔직히 말하자면 나무는 잘 몰라요. 하지만 이번 작업에 가장 적합한 재료는 나무라고 생각했지요. 갈라지거나 터지는 단점이 있지만 다루고 쉽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화같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동화공작소""만약 내 방이 생긴다면......"어릴적의 그런 꿈들을 현실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공예가 이종명은 어릴적 누구나 가지는 그 꿈을 일상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가구디자인과 가구공예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는 가구회사를 다닌적도 없고 디자이너로서 처음부터 이름을 알리고 있지도 않았었다. 그런 그가 만든 압구정동의 "이종명 디자인"의 동화공작소를 찾아갔다. 다소 거친 느낌과 화사한 느낌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소품과 가구들이 압구정동 그의 전시장안에 가득하다. 꿈꾸던 그런 것들과 어디선가 본 듯한 오래된 외화 속 시골마을에 나올 것 같은 그런 작품들이 빼곡이 차있었다. 난 참 행
우리시대의 유물을 남기는 사람경기도 이천에 고향을 둔 손덕균(목공예 명장 91-39호)씨가 서울, 인천을 거쳐 강화도 양도면에 자리잡은 해가 지난 94년. 어느 새 10년 전의 일이다.그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자리보다 유물연구(강화반닫이 연구소 운영)와 작품세계에 애착을 갖는 시간이 더 길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항상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던 아내가 있어 오늘의 자신이 있는 것"이라며 아내의 큰 자리를 자랑한다.손씨는 우리 생활속의 목가구 연구를 중점하고 있다. 기성가구의 모방과 하자발생 문제를 비교할 때 기능성과 디자인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우리 전통가구의 선점을 기대하며 유물연구에 몰두하고 있고 완성된 연구작들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등 각국에 전시돼 소중한 우리 문화 전달에 일익을 담
나무냄새 풍기는 이 남자거친나무, 소똥… 이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강원도 왕산조형연구소를 방문한다면 그 의문이 풀릴 것이다. 옹이투성이의 거친나무와 소똥은 한사람의 손에 의해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강원도 토산품 판매장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진또배기(솟대)를 비롯한 20여종의 토산품의 창조주, 강릉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이기도 한 최옥영 조각가를 만나 보았다. 강원도 왕산골엔 특별한 사람이 있다!개울이 있고, 대지가 있고, 병풍 같은 산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예술이 숨쉰다. 자연과 호흡하는 있는 그대로의 미학사랑. 햇볕에 함초롱 빛나는 나뭇잎과 마른 볏짚과 솔 향과의 나눔터. 그리고 그곳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나무냄새. 산과 계곡이 함께 어우러진 왕산에서 햇빛도,
문화 홍수속 우리 목칠문화의 지킴이우리나라에는 2,000년이 된 가야시대의 칠기가 보존돼 있고, 일본에는 3,000년이 된 칠기가 남아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칠기인데, 수천년을 제 상태를 가지고 있는 신비의 도장기술인 ‘칠’, 그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일산 장항동에 있는 예림공방은 전통 목심칠기기법으로 목칠 공예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고급옻칠가구, 옻칠식생활용기, 혼례용품, 장식가구 등 고품위의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이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대한민국칠기명장 송원섭씨를 만났다.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였죠......"모든 사람들이 많이 가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잘먹고 잘살수 있었던 선생의 진학지도를 무시하고 경기공고에 들어가 공예를 선택했지요.”왜 선
옻칠에 혼을 담는 옻칠장멋과 맛의 고장 전주에서 무형문화제 옻칠장인 이의식선생을 만났다. 그의 이력에는 부족해 보이는 작업장에서 나무를 깍고 다듬어 정성을 다해 옻을 입히는 선생의 작은 소망은 개인전을 여시는 거라 한다.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리기 위해서라는 선생이 장인이다 싶다. 옻칠과 나무와의 인연14살 때 주위의 권유로 처음 나무와 옻칠과 인연을 맺은 이의식선생은 72년 최한창 선생의 문하생으로 서울모란칠예공방 옻칠연구문하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옻칠공예의 길에 접어들었다. 78년에는 지금의 토대가 된 행촌칠예공방을 설립 본격적인 옻칠연구를 시작하였다. 1985~1990년 일본의 건너가 옻칠 공부를 위해 동경 도모다칠예학원을 수료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옻칠을 모두 공부한 그는 그때부터
사랑채 목가구의 멋과 아름다움잘 알려져 있는 인사동의 경인미술관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노년의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목야회’회원은 젊은 사업가부터 정년을 마감하신 분들까지 모두가 다양하다. 다만 나무가 좋아서 모이신분들이 박명배 소목장과 함께 전시회까지 열게되었다. “아름다움은 나눌수록 더 아름다워집니다.”94년부터 한국전통공예학교의 박명배 소목장으로부터 소목과정을 이수한 사람들로 구성된 목야회는 이제 만 7년이 된 목공예모임으로 현재 30명 정도의 소목공예를 하는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모두들 나름대로의 직업이 있고 더러는 주부 및 전문직 종사자들도 있다. 현재는 이일을 전업으로 하는분들이 생겨날 정도로 모두들 모임에 열심이고 내실있게 운영되고 있다. 용인에 마련한 회원전용의 공방이
깍을수록 매력 있는 작업 - 서각나무 만진 지가 벌써 20년이 흘렀다. 개념도 없이 나무로 이것저것 깎아보던 때까지 합치면 어린시절부터 그의 곁엔 늘 나무가 함께 있었다."남들이 이름에 '각'자가 있어서 운명적으로 서각을 하게 된 게 아니냐고 묻지요. 지금의 저를 보면 아마도 부모님이 선견지명이 있었나 봅니다."취미 삼아 시작한 서각이 어느덧 업이 돼 버린 그.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기에 늘 행복하다는 그의 나무냄새 나는 작업실을 찾았다. 서각의 매력에 취해벌써 서각을 한 지 20년이 됐다. 20년 전 각자장 보유자인 철재 오옥진 선생을 만나면서 김각한씨와 서각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스승을 만나기 이전부터 취미삼아 목공예를 해왔지만 서각에 대해 진지하게
소품부터 인테리어까지 전통과 함께하는 사람태풍 루사의 거센 바람도 비켜간 한적한 시골 마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 가면 우리 고유의 전통 이미지를 간직하면서도 현대인의 생활과 조화가 자유로운 인테리어 가구의 제작현장을 찾을 수 있다.소품과 가구에서부터 고전이 가득한 실내 인테리어까지 변화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발맞추며 다방면에서 작품 및 공예작업 활동을 펴고 있는 목공예가 이의만 씨를 만났다. 목공예로의 발걸음해방동이인 이씨는 일사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하한 이후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서울토박이(?)다.모든 재산을 북에두고 남하한 탓에 온 식구가 먹을 것을 찾아 일터로 향해야 했을 때, 이씨는 지금은 없어진 화신백화점 시절 군화공장에서 첫 직장을 얻었었다. 하
4년여간 ‘임업경제동향’ 집필·편집국내 목재산업의 경제동향 초석닦아“목재 국내 수급량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데이터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데이터가 없다는 것은 정확한 경기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는 다시 국내 목재수입업체로서는 구매자이면서도 약자의 입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국립산림과학원 임업경제과에서 ‘임업경제동향’을 집필, 편집하고 있는 김철상 박사의 말이다. 지난 2000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4년여의 꾸준한 출간을 통해 우리나라 목재산업 경제동향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김 박사는 2년여의 일본 파견근무를 마치고 복귀, 지난 2002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