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운영하던 제재소가 놀이터가 되어주던 어린 시절, 얼마든지 숨을 곳을 제공했던 목재더미와 나무로 만들 수 있는 온갖 장난감은 어린 그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려본 주택의 평면도로 가족의 살집을 지었던 아버지는 그의 능력을 인정해준 인생의 큰 교육자로 여전히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서울대 임산공학과 이전제 교수의 흥미로운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버지가 제재소를 운영하셨다던데 초등학교 시절 제재소를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지금의 내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제재소의 목재더미는 친구들과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이었다. 온갖 나무장난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던 나무들이 쌓여있던 제재소는 어린시절 가장 행복했던 공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무와 친숙해졌던 갔다. 나의 진로는 잠재의
70년대 초반 합판용재로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목재로 맥주상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30년동안 목재기업을 운영해온 김태규 사장은 철도침목과 바닥재를 관납하는 전문업체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육십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기업활동으로 노련함을 과시하고 있는 김태규 사장을 만났다. 맥주회사에 근무한 것이 창업의 계기라던데학교를 졸업하고 두산 오비맥주에 근무했었다. 자재를 맡고 있었는데 맥주회사의 자재 구매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맥주병과 상자였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플라스틱 상자가 아닌 목상자였다. 맥주상자라면 하찮은 것으로 보이지만 괜찮은 아이템이라 생각됐다. 당시 작은아버지가 부산에서 제재소를 하고 계셨는데 이 아이템을 권유하고 오비맥주와 단독 공
겁도 없이 ??은 나이에 당시 이름도 생소한 IT업체를 설립하고 중소기업 정보화에 주력해온 이시현 사장. B2B 시범사업 선정에 28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목재업계에서는 흡족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심사에 참가한 60개 업종중 11개 업종에 선정되고 경쟁을 벌이던 3개의 컨소시엄에서 당당히 승자가 된 한맥인포텍 이시현 사장의 포부를 들어보자. 사업을 상당히 일찍 시작했는데대학을 졸업하고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1년을 근무하고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전형적인 386세대로 학생운동을 해온 터라 취업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운동은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업보다는 내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운동선상에 서있는 것이다. 당시 생소했던 IT업체를 창업한 까
어음을 끊지 않는 기업이 있다. 요즘처럼 목재업계에 불황이 만연한 시점에 현금주고 물건을 구입하는 기업은 바로 인천 목재단지에 위치한 태원목재이다. 남의 힘을 빌어 성장하는 것보다는 분수에 맞게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태원목재 강원선 사장의 경영이야기를 들어보자. 목재에 몸담게 된 계기는지금의 엘지인 반도상사 목재부에 입사해 원목 수입, 영업 파트의 일을 7년여 한 것이 직장생활 경험의 전부이다. 82년 젊은 나이에 독립해 대원제재소를 시작으로 이후 지금의 부지에 공장을 짓고 이전한 것이 91년이다. 그해 7월 태원목재(주)로 법인명을 전환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태원의 설립 의지는설립 당시부터 인테리어 자재를 주로 해왔다. 보통 타제재소는 가설재를 많이 하고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생각은
쓸모없다 인식되는 국산재의 활용 방법을 고민하던 중 각재가 아닌 원반으로 가공하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문제는 건조, 이를 위해 14년을 원반건조에만 힘써온 그의 노력은 국산재가 대접받는 그날까지 계속될 듯하다. 목재 건조란 무엇인가목재가 사용되어야 할 장소에 맞는 함수율을 갖도록 건조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이용함수율보다 2∼3% 낮게 건조해야 하자가 가장 적다.건조 연구의 목적은 물성 좋은 재료를 얻는 것, 가능한 짧은 시간에 가장 적은 에너지로 건조하는 것이다. 건조의 효과는치수의 안정화, 부후균과 변색균의 침해를 방지하고 강도를 높이며 보온성과 기밀성이 좋아지고 가공성이 향상되는 등 건조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물이 빠진 자리에 공기가 차서 보온성이 좋아지므로 목조주택의 경우 난방비가 절
경기도 양평의 도덕성 있는 기업인을 꼽으라면 단연 이 사람이다. 시멘트 파동 때 누구는 벼락부자가 되었다지만 그는 기업인으로서 최고 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 ‘이철주는 믿을 만한 사람’, 이것이 미래의 성공을 보여주는 귀중한 보증수표가 된 것이다. 목재와 함께 시작한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마자 또 다른 사업에 뛰어든 그. 작년 12월 ‘삼양우드’라는 목조주택 자재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그의 원대한 포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친이 제재소를 운영했다는데아버지는 40여년 전인 62년에 삼양제재소를 경기도 여주에 설립하셨다. 어릴 때 강원도 평창이나 홍천에서 소나무 원목이 큰 트럭으로 줄을 서서 들어오는 걸 보고 큰 매력을 느꼈었다. 당시는 길이 좋지 않아서 수원이나 이천, 안성, 평택 등으로 가는
‘두일에 가면 뭐든지 다 있다’이 말을 듣기 위해 3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머쓱한 미소를 짓는 두일상사 변희철 대표의 얼굴은 자신감에 차 있다. 열일곱에 합판시장에 뛰어들어 현재 국내 가장 많은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는 두일상사를 일구기까지의 그의 노력은 차라리 한편의 드라마이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등교일 단 50일…. 30년의 시간동안 단 하루도 합판과 함께 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그의 합판 인생을 엿보자. 합판과의 인연은 70년대 초 아는 분이 오갈 데 없는 나를 합판업체에 소개해 줬다. 열일곱의 나이였고 보조일부터 차근차근 익히기 시작했다. 국내 최연소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날 이후로 합판과 단 하루도 떨어지지 않았다. 한 우물만 파랬다고 무작정 합판이 좋았다. 그렇게 30년동안 합판과의
목조주택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향후 5년 후면 현 시장의 10배 이상의 성장을 거듭할 목조주택 시장에 자재를 납품하고 있는 대화는 대형업체는 아니지만 경쟁력 있는 자재만을 공급하는 알찬 업체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대화라는 이름처럼 관련업계의 큰 회합을 소망하는 박광섭 사장을 만났다. 목재와의 인연은?대성산업 해외사업부에서 수출업무와 영업 기획업무를 담당했다. 의류의 어깨패드나 벽산슬레이트 등을 수입하기도 했고 국내에 알려진 MCM가방을 국내 임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업무를 했었다. 목재와는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캐나다에 투자한 나무젓가락 공장을 살리는 길을 찾느라 시장조사를 1년 동안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캐나다에서 팩킹 자재와 목조주택 자재를 수입하는 목재수입팀을 신설해 팀장으로 일
신기술 개발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할 시기다. 목재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목재산업 분야의 연구개발 기지이자 정보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임업연구원에 첫 공채 원장이 취임했다. 수요자 중심의 연구에 주력하겠다는 신임 서승진 임업연구원장을 만났다. 첫 공채 원장 취임 소감은?금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된 임업연구원에 첫 원장으로 취임하게 되어 어깨가 무겁다. 운영기관에 탄력성을 부여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책임운영기관제의 취지에 부합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국가적 과제인 정부조직의 구조조정 등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연구에 정진해준 임업연구원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원장으로 취임하기까지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기술고시에 합격한
국산재 이용의 활성화와 장기적이며 안정적인 목재수급을 위한 해외조림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산림조합중앙회의 새해를 맞는 각오를 들어본다.산림조합중앙회의 역할?한국 목재산업에서 산림조합의 역할은 국산재 이용 활성화와, 해외조림을 확대하여 안정적인 목재 수급을 돕는 것이라 본다. 이것의 일환으로 경기도 여주 임산물종합유통센터를 현재 운영중에 있으며 강원도 동해시에 제 2의 임산물종합유통센터를 설치중에 있다. 녹화완성 이후 발생되는 연간 폐잔재 30만㎥을 자원화하여 목재 자급율을 높이고 임산물종합유통센터의 활성화를 통해 임산물의 유통구조 개선과 신규 수요창출에 매진할 계획이다.베트남의 1만ha의 임지를 확보하여 94년부터 총 5,364ha에 아카시아를 조림했으며 99년 11월부터 ha당 60㎥을 수확했다.
우리 종이에 손을 가까이 대 보면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이 온기는 인위적인 것이 아닌 우리 조상들의, 겨레의 문화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산림청 선정 신지식임업인 “남한강의 깨끗한 물과 우리 닥나무로 기계작업이 아닌 손 작업으로만 한지를 만듭니다. 돈벌이는 안되고 힘들지만 내 할아버지, 내 아버지가 저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한지를 만들었던 과거를 생각하니 한지를 만드는 것이 우리 집안의 천명인 것 같습니다. 허허허…” 작년 12월 산림청은 ‘신지식임업인’으로 전통순수한지를 제작해 우리 문화를 계승, 보급하고 있는 원주한지 장응열 씨를 선정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그의 삶과 한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신사년 새해와 우리를 더욱 더 밝고 뿌듯하게 한다.우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하게 처리해 눈길을 끌고 있는 사무용가구, 이레는 품질제일주의를 표방한다.페이퍼래핑 가구를 생산하는 이레는 설립 5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급 사무용가구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주)이레시스템퍼니처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98년 8월5일 설립된 이레는 처음 파주에 공장을 갖췄다. 다들 비닐래핑으로 사무용가구를 제작할 때 모험과도 같았던 페이퍼래핑(LPM,HPM)으로 사무용가구를 만들었다.비닐 일색이던 사무용가구업계에서는 신규업체가 고가의 제품을 생산한다는 데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레는 철저히 품질로 승부해 해외에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매일 밤샘을 거듭해 러시아에 수출할 물량을 제작했을 때였다. 이레는 한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파주에 물난리
건축자재의 유해성 논란으로 소비자들은 점차 친환경적인 자재로 눈을 돌리고 있다. 래핑의 소재도 비닐에서 페이퍼로 변화되고 있는 추세다.팔도는 국내에 페이퍼래핑의 보급을 주도한 회사다. 비닐보다 종이가 환경친화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지만 단가싸움에 급급한 국내 업체들은 저렴한 비닐 위주의 생산만을 고집했다.국내 최초로 페이퍼래핑을 보급한 팔도목재산업을 찾았다.전국 각지의 모든 사람들과 거래하고 지역의 연고 없이 전국적으로 제품을 유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팔도목재산업은 태어났다.89년 팔도목공으로 설립돼 초기에는 문짝과 문틀을 제작했는데 91년만해도 불모지였던 리모델링시장을 개척하고자 팔도목재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91년 팔도가 리모델링시장에 뛰어들 때만 해도 몰딩은 인테리
2만6,000원과 반쯤 차 있는 자동차의 기름, 이것이 한솔목공기계 자본금의 전부였다.한솔목공기계는 그렇게 시작을 알린 후 3년만에 공장을 마련하고 가구업계에서도 인정받는 기술력을 갖춘 업체로 성장했다.미래가 있는 회사, 한솔목공기계의 성장사와 새로운 도약을 들어보자.목공기계 국산화에 앞장서고 있는 한솔목공기계는 99년 첫 시작을 알렸다.한솔목공기계가 설립된 99년만해도 국산 목공기계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당시 780만원하는 기계가 가장 비쌌을 정도였으니 금액만으로도 외국의 기계와 차별이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처음 3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한솔목공기계는 철저히 기술력으로 승부했다. 영업사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연구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19년간 목공기계 분야에
펜션, 통나무주택, 목구조주택 등 국내에 목조주택의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목조주택의 대중화를 선언하고 목조주택 자재 판매와 시공을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쎄쩌 한국지사를 찾았다. 목조주택이 확산돼 있는 북미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종합목재회사인 쎄쩌는 지난 93년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한국지사는 목조주택 설계 및 시공을 종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국내 목조주택 인식전환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는 그동안 자재판매 위주에서 그 영역을 시공까지 확대했다.쎄쩌는 시공회사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목조주택의 장점을 알리고 잘못된 인식을 바꿔왔는데 그중 하나가 국민대목조주택디자인센터 등 목조주택관련 교육에 후원이 바로 그것이다.쎄쩌는 구조재 등 기초자재부터 창호재, 바닥재, 루바, 몰딩 등 내
미장합판으로 이름을 알리고 목조주택 자재시장에 진출한 삼익산업. 제조공장이 있어 목조주택 자재의 2차 가공까지 그들의 경쟁력이 녹아있는 광주를 찾았다.(주)삼익산업은 미장합판 생산업체인 삼익미장을 모태로 하고 있다.83년 삼익미장으로 출발해 93년 법인으로 전환되면서 합판, 건축자재 등을 직접 수입유통하면서 품목을 다양화했다.최근에는 합판, MDF, OSB, PB 등 목질판상재를 비롯해 목조주택 자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고 있으며 사업의 모태인 미장합판은 여전히 삼익산업의 간판품목이다.삼익산업은 최근 인테리어 소재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목조주택 자재를 공급하면서 직접 자재를 알아보기 위해 시공도 했는데 삼익산업 본사 옥상에 지어진 목조주택은 직원들의 기숙사로 활용되고 있다. 자재공
‘전국토의 65%가 산림인 국가에서 목재자급률은 고작 6%라니 부끄럽지 않습니까?’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농림해양수산위원회가 피감기관인 산림청에 입을 모아 호소한 말이다.더욱이 소비자들이 국내산 목재에 대해 ‘잡목’취급을 하고 있는 현실때문에 국산재 활용은 미비하다.청록개발은 남들이 터부시 해온 국산재로 조경시설물을 제작, 국산재의 고부가가치를 앞당겨온 기업이다. 청록개발의 국산재 가공,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올해로 설립 6년을 맞는 청록개발은 국산재 활용에 앞장서 온 기업이다.6년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산재 시장을 개척하면서 현재 조경분야에서 청록개발하면 낙엽송을 먼저 떠올릴 만큼 국산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청록개발은 연간 20억 규모의 낙엽송 원목을 구입해 150가지의 다양한 아이템으로
목재산업의 모체라 할 수 있는 제재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목립이다. 목립은 제재뿐 아니라 모든 톱날을 사용하는 관련산업분야에 사용되지만 제재분야의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현재는 규모나 업체수가 줄었으나 10여년 전부터 중서부지역(경기, 충청, 전라)에서 꾸준한 개발과 노력으로 자리를 굳힌 대전의 목립 대표업체를 찾았다. 올해로 창립 13년째를 맞는 대전목립센타는 대전시 대덕 공업단지 내에 자리잡고 있다. 30년이 넘는 현장경력을 지닌 기술자와 경력자로 구성된 대전목립은 가장 호황을 이뤘던 89년 이후 기술과 품질에서 어느 업체에도 뒤진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공장에서는 2조 6대의 기계로 목립작업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기계가 목립기계로 유명한 스위스 Iseli사의 제품이다. 톱날의 철판을 다듬
목재산업의 모체라 할 수 있는 제재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목립이다. 목립은 제재뿐 아니라 모든 톱날을 사용하는 관련산업분야에 사용되지만 제재분야의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현재는 규모나 업체수가 줄었으나 10여년 전부터 중서부지역(경기, 충청, 전라)에서 꾸준한 개발과 노력으로 자리를 굳힌 대전의 목립 대표업체를 찾았다. 태양합성(주)은 86년 설립된 이래 기술력 확보와 생산설비 투자로 이제는 온돌마루나 고주파 성형가공공장 등에서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남동공단에 위치한 태양합성은 공단 내에 2개 공장을 갖추고 이전의 완전 수동의 생산시설을 자동화하고 안전시설을 완비한 환경친화적인 기업이다.접착제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보니 유독물의 사용이 많으나 공장에 들어서면 접착제 특유의
79년 서해목재로 출발한 동화합판은 투명경영과 고객중심 경영으로 제재에서 유통까지 모두 성공한 기업이다. 제재소에서 유통 전문회사로 변신에 성공한 동화합판을 찾아가보았다.92년부터 유통업을 시작한 동화합판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합판유통회사 중 하나다.동화합판은 처음 제조업으로 출발, 유통업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79년 서해목재로 라왕을 제재하다가 남양재의 고갈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91년 과감히 제재공장을 없애고 유통회사로 변신에 성공했다.동화합판의 전신인 서해목재는 직원 수만 80여명에 달했으며 당시로는 드물게 건조로를 확보했으며 국내 제재소 중 최초로 갱립소와 트윈벤드소를 갖추기도 했다.92년 비로소 현재의 모습을 찾은 동화합판은 부채비율이 20%도 안되는 건실한 회사다. 매출의 56%를 현금으로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