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MDF의 역사 XV2010년 7월 동화기업, 베트남에 MDF공장 착공목질판상재 전문기업인 동화기업(대표 승명호)은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등에 기존부터 가동되고 있는 MDF공장을 인수한데 이어 이번에는 아예 해외에 MDF공장을 짓기로 했다. 즉 베트남 호지민市 인근 ‘빈폭성’ 이라는 곳에 베트남 기업과 합작으로 MDF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동화기업은 사전에 베트남의 경제 환경과 사업의 타당성 검토를 거치고, 베트남 국영기업인 VRG와 51:49로 지분 투자를 하기로 합의하고 MDF공장 착공에 나섰다. 드디어 2010년 7월 12일, 호지민市 인근 빈폭성의 11만6,000평 부지에 연간 30만㎥을 생산하는 규모의 MDF공장을 짓는 기공식을 가졌다. 우리나라 목질판상재 업체로서는 처음으
우리나라 MDF의 역사 XIV2009년 5월 16일, 동화기업 승상배 회장 별세우리나라 MDF의 역사를 말하다보면 동화기업이 MDF 역사의 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동화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MDF공장을 건설한 면도 있지만, 그후에도 계속 MDF공장을 건설했고, 해외로 진출해서 말레이시아와 뉴질랜드의 MDF공장을 인수하는 등 글로벌 MDF 기업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화기업이 MDF 산업에서 장족의 발전을 한 이면에는 동화기업의 승상배 회장이 있다.그러나 사람은 나이에 장사가 없다. 2009년 5월 16일, 동화기업의 승상배 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목재업계 아니 MDF 업계의 큰 별이 떨어진 것이다. 향년 나이 89세였다. 그는 1921년 평북 청주에서 태어나 19
2007년 2월 동화기업, 말레이시아 거쓰리(Guthrie) MDF공장 인수동화기업(대효 승명호)은 2006년 9월 말레이시아 Merbok社의 MDF공장을 인수한지 5개월만인 2007년 2월 24일, 말레이시아 KGB(Kumpulan Guthrie Berhad)社의 거쓰리Guthrie) MDF공장을 인수했다. 말레이시아에서만 3번째 MDF공장 인수이다.거쓰리(Guthrie) MDF공장은 말레이사아 케다(Kedah)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6년에 설립된 공장으로 연간 13만㎥의 MDF를 생산하고 있으며 생산된 제품의 65% 이상을 베트남, 파키스탄, 중국 등으로 수출하는 공장이었다. 동화기업은 이번 거쓰리(Guthrie) MDF공장 인수로 인해 국내에는 MDF공장이 4개(동화 제1공장, 제
우리나라 MDF의 역사 XII아파트 문화와 궤를 같이한 MDF의 역사옛날 양반집에서는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아주 옛날도 아니다. 우리 할머니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부랄이 떨어진다’고 했다. 옛날 집은 안방과 부엌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안방에서 마루로 나와 신발을 신고 나와야 부엌이 있었다. 우리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소반에 상을 차려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 안방문을 열고 상을 놓았다. 불과 25년전만 해도 남자들은 부엌에 잘 들어가질 않았다. 그런데 MDF는 남자를 부엌에 들어가게 하는 일등공신이 됐다. 아파트 문화는 거실과 부엌을 가깝게 했다. 자연스럽게 남자는 부엌으로 가서 물도 떠먹고, 어떤 집에서는 남자가 설거지도 한다.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 MDF의 역사 XI2005년 8월 동화기업, 뉴질랜드 레이오니아社 MDF 공장 인수동화기업 MDF 사업의 세계진출은 2005년에도 계속됐다. 동화기업은 2003년 말레이시아 Golden Hope社 MDF 공장을 합작 형식으로 인수한데 이어, 2005년 8월에는 뉴질랜드의 레이오니아社 MDF 공장을 인수했다. 2005년은 동화기업이 동화홀딩스라는 지주회사 체재로 전환한지 2년째 되는 해였다. 승상배 회장은 당시 85세로 동화홀딩스 회장을 맡아 자회사들을 총괄하고 있었고, 동화기업 주식회사는 승 회장의 막내아들 승명호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있을 때였다. 승명호 사장(1956년 1월 17일생, 서울 출생)은 고려대학교 경영대를 졸업하고, 1984년 그의 나이 29세때 아버지 회사인 동화기업에 입사
우리나라 MDF의 역사 Ⅹ2001년, 국내 MDF 생산량2001년 우리나라 MDF 생산량은 6년전인 1995년에 비해 많은 양이 늘어났다. 1995년 7월 가동한 선창산업 제1공장이 풀가동되고 있었고, 1995년 10월 가동한 한국카리화학 MDF 공장이 풀가동되고 있었으며, 역시 1995년 10월에 가동한 한솔포렘의 익산공장이 풀가동되고 있었다. 선창산업 제2공장이 2001년 9월부터 가동됨에 따라 2001년말 국내 MDF 생산량은 100만㎥을 넘겨 106만2,000㎥이 됐다.2001년 MDF 수입량은 52만6,000㎥(한국무역협회 자료)으로 국내 MDF 소요량도 158만6,000㎥으로 늘어났다. 6년전인 1995년 국내 소요량 75만㎥에 비하면 거의 두배로 늘어났다. 그러나 수입제품이 많이
우리나라 MDF의 역사 Ⅸ2000년 8월 동화기업, 대성목재 인수동화기업(당시 대표 승명호)은 2000년 8월 7일, 조흥은행 관리하에 있는 대성목재를 인수했다. 대성목재는 1969년 건설된 합판공장, 1989년 건설된 MDF 공장, 1992년 건설된 파티클보드 공장을 갖고 있는 회사였다. 동화기업은 대성목재의 인수 목적으로 합판공장보다는 파티클보드 공장과 MDF 공장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성목재를 인수함으로써 동화기업 목질 판상재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당시 인수대금은 1,200억원이었으나 이중 700억원은 현금으로 조흥은행에 지급됐고, 나머지 500억원은 대성목재의 부채성 자산을 승계하기로 조흥은행과 합의했다. 대성목재의 MDF 공장은 1987년 건설에
우리나라 MDF의 역사Ⅶ1994년 8월 한국카리화학, 군산에 MDF 공장 착공동양화학의 별도법인인 한국카리화학(당시 대표 이복영)은 1994년 8월, 전북 군산에 부지를 마련하고 400억원을 투자, 일산 560㎥(년산 17만㎥) 생산규모의 MDF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1980년 설립된 한국카리화학은 1992년 청구물산을 인수, MDF 사업부를 신설한 바 있으며, 공장착공 1개월후인 1994년 9월, 청구물산을 흡수합병 했다.1995년 10월 한국카리화학(현 유니드), MDF 공장 가동1994년 8월 착공한 한국카리화학 군산 MDF 공장은 독일의 큐스터스 프로세스社의 기계설비를 설치하고 착공한지 1년 2개월만인 1995년 10월 년산 17만㎥ 생산규모의 공장이 완공돼 가동에 들어갔다.M
우리나라 MDF의 역사 Ⅵ1995년 7월 선창산업, MDF 공장 가동선창산업(정해수 회장)은 1994년 6월 인천 북성동에 MDF 공장을 착공한지 1년 2개월만인 1995년 7월, 년산 9만㎥ 생산규모의 공장이 완공돼 시범생산에 들어갔다. 선창산업은 이 공장을 완공하는데 총 공사비 300억원(시설투자포함)을 투입했다. 실제로 공장이 완공된 것은 1995년 4월이었다. 그러나 기계설비 점검 등으로 인해 3개월 후인 7월에야 첫 생산을 했고 본격적인 생산은 10월부터 이뤄졌다. 공사에 투입된 업체만도 40개 업체(건축, 기계설치, 전기설치 등)가 참여했으며 참여 인원도 외국의 MDF 전문가 등 연 2,100여명이나 됐다. 선창산업은 이 공장을 지을때 다른 회사와는 달리 어려움이 많았다. 합판공장에
우리나라 MDF의 역사 Ⅴ1993년, 선창산업도 MDF 공장 건설 추진합판과 제재목만으로는 매출이익의 한계를 느낀 선창산업의 정해수 회장(당시 65세)은 1993년 MDF 공장을 지을 것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창산업(오너 정해수 회장, 당시 대표 이채득)이 MDF 공장을 지을 것을 검토하기 시작하는 1993년은 동화기업(1986년 가동), 청담물산(1989년 가동), 대성목재(1989년 가동), 청구물산(1990년 가동), 거성산업(1991년 가동) 5개 MDF 공장이 가동되고 있을때였고, 1993년 4월 동화기업이 또하나의 MDF 공장을 짓고있을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창산업으로서는 MDF 공장을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많은 검토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해수 회장의
우리나라 MDF의 역사 Ⅳ1990년 MDF 국내 생산량1990년 국내 MDF 생산량은 25만㎥였다. 수입량은 11만㎥으로 1990년 당시 국내 수요량은 35만㎥에 달했다. 1년전인 1989년의 수요량(24만㎥)에 비해 50%나 늘어났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대로 5년간 200만호를 짓기 위해 매년 40만호 이상의 아파트가 지어졌고 그에 따른 MDF의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었다.1990년 당시 국내 MDF 생산량을 업체별로 보면 동화기업이 6만6천㎥(1986년 10월 가동), 청담물산이 6만7천㎥(1989년 8월 가동), 대성목재가 6만6천㎥(1989년 10월 가동), 청구물산이 5만3천㎥(1990년 8월 가동)이상 4개 회사가 가동돼 총 생산량이
MDF의 역사Ⅲ1989년, 국내 MDF 시황1989년말 국내 MDF 생산량은 동화기업이 풀가동돼 6만6천㎥을 생산했고, 청담물산이 8월부터 5개월간 가동돼 2만8천㎥을 생산했고, 대성목재가 10월부터 3개월간 가동돼 1만6천㎥을 생산해 국내 총생산량은 11만㎥에 달했다. 1989년말 MDF 수입량은 13만㎥였다. 따라서 1989년 국내 MDF 수요량은 24만㎥에 불과했고, 그중 국내 생산비율은 전체 수요량의 46%에 불과했다. 국내 생산이 전체 수요량의 반에도 못미치는 상황이었다. 당시 아파트 내장재의 고급화 추세에 따라 MDF의 국내 수요는 늘어나고 있어 공급부족 현상이 있었다.1989년 4월, 청구물산도 군산에 MDF 공장 착공동양화학 계열의 청구물산(구 청구목재(합판회사)로써, 1988년
MDF의 역사 Ⅱ1987년, 당시 MDF의 국내 소비성향우리나라 MDF산업의 초창기인 1987년의 MDF 연간 수요량은 15만㎥를 상회할 정도였다. 오늘날 연간 수요량 170만㎥에 비하면 아주 미미할 정도였다. 1986년 10월부터 동화기업의 MDF 공장이 가동하기 시작했으나 주로 5.5㎜두께의 MDF만 생산됐다. 1987년 MDF 수입량은 연 8만㎥정도였는데 수입 MDF는 주로 3.6㎜두께의 얇은 규격이 많이 수입됐다. 1987년 당시 MDF의 주요 소비처는 텔레비전 제조회사, 오디오 음향기기 제조회사 등이었는데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뒷판, 오디오전축의 스피커박스 제작 등에 주로 사용됐다. 사실 브라운관 TV의 뒷판이나 오디오스피커박스의 옆면, 뒷면 등에 사용되는 MDF는 강도가 그리 필요 없는
동화그룹이 지난 3일 한국일보와 인수합병(M&A) 투자계약(본계약)을 체결했다. 이날 투자 본계약 체결식은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됐으며, 승명호 동화그룹 회장, 김홍진 동화기업 대표, 정대원 동화엠파크 대표, 고낙현 한국일보 대표(관리인), 이준희 한국일보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후 본계약 체결에 따라 향후 동화그룹이 지급할 인수대금인 308억원은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한국일보의 회생·공익 채무 변제에 우선적으로 쓰이게 된다.이에 한국일보는 동화그룹 측과 협의를 거쳐 올해 안에 채무 변제계획 등이 담긴 회생계획안을 작성, 내년 초로 예정된 관계인 집회에서 채권단 동의를 구한 뒤 법원 인가를 거쳐 회생절차를 졸업하게 된다.
MDF의 역사 ⅠMDF 산업의 태동우리나라 MDF의 역사는 파티클보드보다 21년 뒤에야 시작된다. 파티클보드 공장이 1965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MDF 공장은 그로부터 21년 뒤인 1986년에 국내에 처음으로 설립됐다.1984년, 동화기업 MDF 공장 건설 추진동화기업이 MDF 공장을 건설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은 국내 합판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잃고 사양화 추세를 보일 때였다. 합판제조의 원재료인 원목은 연일 가격 상승을 했고, 그나마도 수입물량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만들어진 합판은 수출이 잘되지 않아 합판산업은 점점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합판공장들이 시련을 겪고 있을 때였다.1980년 5월, 부산의 동명목재가 문을 닫았다. 이어서
파티클보드의 역사 XVII 이케아(IKEA)는 왜 국내 파티클보드 산업에 영향을 주는가?2012년까지만 해도 국내산 PB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국내 PB시장이 2013년 들어 수입산의 공세에 뒷걸음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관련업계는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스웨덴의 이케아(IKEA)의 한국 진출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PB의 주요 소비처인 가구업계는 이케아(IKEA)를 견제한다는 명분하에 합판보드협회와 합의하에 반덤핑관세 연장을 막았다. 그결과 국내시장의 PB가격이 급격히 하락했다. 2012년까지는 ㎥당 22만원대 초반을 유지했던 PB가격은 2013년 들어서는 한차례도 22만원대에 진입하지 못한채 ㎥당 21만원대에서 머물렀다.동남아산 PB 반덤핑관세 연
파티클보드의 역사 XIV 합판보드협회, PB 반덤핑관세 연장 신청2011년 10월 21일, 동화기업과 성창기업 등이 주요 회원사인 합판보드협회는 2012년 4월에 종료되는 동남아산 PB 반덤핑관세를 연장해 달라는 재심사신청서를 지식경제부산하 무역위원회에 제출했다.합판보드협회는 “국내 파티클보드 업계는 친환경 등급인 E1등급만을 생산 판매하고 있는데, 규제대상인 E2급의 동남아산 PB가 수입이 많이 되고 있어, 국내 파티클보드 업체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며 반덤핑관세는 연장되어야 한다고 연장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반덤핑관세 부과를 연장하려면 반덤핑관세 부과 종료일로부터 6개월전에 재심사요청을 하도록 돼있다. 태국, 말레이시아산 수입 PB에 대해 2009년 4월부터 8%의 기본관세와 함께 7
파티클보드의 역사 XIII2009년 2월 무역위원회, 동남아산 PB 반덤핑관세 부과2009년 2월 25일, 무역위원회(위원장 박태호)는 합판보드협회가 제소한 태국, 말레이시아산 PB에 대한 덤핑 최종 조사결과에 대한 회의를 갖고 ‘덤핑 긍정 판결’을 내렸다.무역위에 따르면 태국, 말레이사아산 PB가 한국에 덤핑 수출된 사실이 있었고, 국내 산업에 피해가 있다고 판단, 7.67%의 반덤핑 관세부과를 5년간 실시해 줄 것을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 기획재정부는 무역위의 건의에 따라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되 시행기간은 3년으로 한다고 발표했고, 2009년 4월 22일부터 실시됐다. 가구업계는 덤핑 방지 관세율이 3%를 넘어서면 가구제조원가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볼멘 목소리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인 이케아의 국내 진출이 얼마 남지않은 상황에서 국내 중소 가구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이케아는 2012년 기준 매출액 40조원으로 전세계 41개국에 338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올해말 한국 1호점인 광명점 오픈을 시작으로 2호 고양점(부지 확보), 3호 고덕점을 추가로 오픈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저가의 수입가구 증가에 따라 국내 중소생활가구 제조사는 생존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으로, 특히 수입가구 관세는 0%인 반면, 목재가구의 필수 자재인 PB 원·부자재는 8%의 수입관세가 부과돼 국내 가구산업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는 실정이다.국내 보드류 제조사들은 저가 PB 수입증가에 따른 경쟁심화
파티클보드의 역사 XII2007년 10월 환경부, 폐목재 재활용율 66%까지 높일 계획 발표동화기업은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폐목재 안정적 공급에 대해 환경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동화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여 폐목재 관리체계 개선과 재활용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했고, 드디어 2007년 10월 ‘폐목재 재활용 활성화 방안’을 언론에 발표했다.환경부는 폐목재 재활용을 확대하기 위해 국무조정실,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산림청 등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해서 2012년까지 폐목재 재활용율을 66%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5년 국내 폐목재는 임목부산물 244만8천톤을 포함해 총 511만5천톤인데 이중 183만7천톤만 수거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