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목재신문=한국목재신문 편집국]◇ 최 창 호 산림조합중앙회 회장한국목재신문이 창간 22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을 220만 산주와 80만 조합원이 함께하는 산림조합을 대표하여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한국목재신문은 1999년 창간한 이래, 우리 목재산업을 대표하는 참된 언론으로 현장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기사와 선진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목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목재산업의 부흥과 발전에 힘써 오고 있습니다.특히 22년간 지속적으로 수입 목재류 통계와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노력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국목재신문은 다
[한국목재신문=한국목재신문 편집국] ◇ 뉴질랜드산 일부 목재제품 수입 관세율 0%중국 상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뉴질랜드 자유무역 협정의 재조정에 따라 중국은 97%의 뉴질랜드 상품에 대하여, 뉴질랜드는 100%의 중국 상품에 대하여 0% 관세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의 MDF, 종이류 등에 부과됐던 관세가 추가로 면제되어 중국 내 자원 절약의 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 2020년 중국 원목 수입량 5975만 입방해관총국의 통계에 의하면 2020년 중국의 원목수입총량은 5975만 입방으로 전년 대비 0.9% 증
◇ 산림조합중앙 최창호 회장 한국목재신문이 창간 21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을 80만 조합원과 210만 산주가 함께하는 산림조합을 대표하여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한국목재신문은 1999년 창간한 이래, 우리 목재산업을 대표하는 참된 언론으로 현장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기사와 선진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목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목재산업의 부흥과 발전에 힘써 오고 있습니다.특히 목재산업 현장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보도함으로써 임업인의 소득증대 방안과 동반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해 왔습니다. 존경하는
목재 블랙홀 중국…세계시장 뒤흔든다중국소비 증대로 가격급등, 국내 소형제재소들 울상 중국의 경제성장과 조림정책, 2008년 북경베이징 올림픽 등이 전세계의 목재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본보 165호에 게재된 소송에 대한 분석기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의한 가격상승이 전체 원목가격의 변동추이를 예상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소송의 경우 겨울철로 들어서면서 국내 소비가 많지 않아 재고는 있으나 중국의 수요가 많아져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겨울철이 벌채시기여서 현지 공급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중국은 1월 말에서 2월 초 자국 내 최대 명절이 있어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올 해부터 수출관세를 단계적으로 높인다는 러시아의 계획에 가격하락은
1999년 8월 ‘우드코리아’라는 정보지로 출발한 이 신문은 이제 7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목재인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한국목재신문은 그동안 목재인을 대변코자 어려운 현실 속에서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새로운 국내외 정보를 실어 독자의 정보욕구해소에 힘썼다. 또한 가격과 통계를 연재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했다. 또한 각계 전문가를 컬럼진으로 초빙 해 훌륭한 글을 남겼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 어려움을 독자에게 그리고 광고주에게 전가하지도 않았다. 신문으로써의 자존심을 지키고 역할을 다하기 위해 광고성 기사를 배제하고 오직 정상적 상거래를 통하여 존재하려 노력해 왔다. 국내목재산업의 후진성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탈피하기 위해 정책기사와 분석기사 그리고 캠페인기사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준
한국목재신문이 1999년 8월 창간된 이래 1년 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지금의 한국목재신문이 목재업계에 자리잡기까지는 형언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공개된 정보매체가 없는 목재업계에 지면을 통한 정보 전달의 시도는 실로 가슴벅찬 사건이었다. 그동안 한국목재신문이 걸어온 길을 잠시 회고해본다. 한국목재신문은 자본금에서도 꼴찌였고 신문제작의 노하우에서도 꼴찌였다. 신문발행 부수도 타전문신문에 비하면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시작이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해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한호도 걸러 뛰지 않고 제작해온 것이 1년 8개월이나 되었다.출발부터 지금까지 도전과 응전 속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턱없이 부족한 자금과 신문제작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