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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 나의 작은 외침 정 연 집 목재공학박사 페르고코리아(주) 부장 설날의 긴 연휴 덕분에 양양 낙산사를 둘러 보았다. 도저히 다시 가보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아 지척에 두고도 미뤄왔던 일인데, 3년이 지나 일부나마 복원이 되었다는 소식도 있고, 무엇보다도 홍련암은 화마를 피해 온전하다고 하니 그래도 위로가 되어 용기를 내었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무거운 발길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민둥산에 우뚝 솟은 복원된 건물과 조화를 잃은 복원현장은 불에 탄 숯검정처럼 내 가슴에 내려앉고 있었다. 사라진 나무들과 숲은 역사를 잃었고 정서를 빼앗겼으며 나는 내 마음을 둘 데가 없게 되었다. 홍련암에서 나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바다를 보았다. 이제 얼마나 더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인가. 낙산사에 갈 때마다 느꼈던 그 포근함이 환생하는 것을 내 남은 생에서 볼 수는 있을까? 또다시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귀경하여 겨우 마음의 짐을 줄여가고 있는 차에 숭례문 중계방송을 보았다. 한마디로 허탈했다. 낙산사의 기억이 중첩되면서 내가 마치 방화범인양 가슴이 졸여 들었다. 그냥 못 본 채 잊고 싶었다. 그렇게 잊고 싶었던 숭례문은 엉뚱한 곳에서 나를 물고 늘어졌다. 각종 언론기사에서 소위 목재 전문가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의 접근을 보면서 내 가슴은 또다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전달하는 기자들의 한계인지, 아니면 전문가가 아닌 전문가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서인지 모르지만 이건 너무한 것 같았다. 어째서 나무를 자꾸 숲이라고 얘기하는지, 어째서 숲을 자꾸 나무라고 하는지 목재를 전공한 내게도 혼돈스러운데 일반인들은 더할 나위가 있겠는가? 아무리 문화재라는 울타리 속에 꼭꼭 메인 상상의 동물과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과학이 적용되고 그 바탕위에 분석되어야 함은 당연지사인데 이렇게 봉쇄되고 감성적으로만 흘러가게 되는지 안타까움은 더해만 가고 있다. 쉬운 말로 복원이라고,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래서 빨리 해야 한다고, 시비걸지 말고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그래서 마음을 놓아 버리라고 조여오지만 나는 아니라고 그래서 소리쳐야 한다고 절규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리라. 전문가를 수소문해야 한다. 숲과 나무를 모두 볼 수 있는 인재들로 하여금 전 분야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갖고 후손들에게 남길 확실한 보고서 하나는 내 놓아야 되지 않겠는가? 무엇이 더 두려운가? 불에 타버린 숭례문 그 자리에, 복원된 숭례문이 다시 서는 것 보다, 숭례문의 역사와 함께 처음 불길에서부터 화재에 대한 대처, 잔해의 수거, 분석, 보관, 재생, 신규 재목의 조달, 복원 등 모든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된, 그래서 훗날 복원된 숭례문보다 그 과정의 기록이 더 값지고 소중한 문화자산이기를 나는 속죄하는 심정으로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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