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윤정희)는 레이스와 꽃장식이 가득한 의상으로 멋 내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할머니다. 그녀는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고 시상을 얻기 위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손자가 저지른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꾸만 단어를 잊어버리는 증세를 보이던 미자는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문화원에서 여는 ‘시’ 강좌 포스터를 보게 된다. 언어, 즉 사유능력이 ‘상실’되어 가는 시점에서 언어를 ‘발견’하는 작업인 ‘시’에 몰두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위적인 반응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시는 ‘시’(時)를 뜻하면서도 ‘시’(See), 즉 ‘본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극중 시 강사는 “시를 쓴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 말한다. 미자는 시상을 얻기 위해 온 감각을 열고 일상을 주시하지만 그녀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끔찍하게 혐오스러운 현실뿐이다. 미자의 손자는 한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해 자살로까지 몰아갔음에도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못하며 그의 친구들인 가해자 학생의 부모들은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기에만 급급하다. 미자가 돈을 받고 돌봐주는 노인은 성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며 시 낭송회에서 만난 형사는 단상에 올라 음담패설만 일삼는다. 미자(美子)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이름답게,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세계에서 미와 순수, 그리고 도덕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고통스럽게 유영하는 인물이다.

극 초반에는 얼핏 현실에 부양해 살아가는 듯 보였던 미자가 현실을 직시하고 추악한 현실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결심한 순간, 시는 완성된다.

이러한 과정은 시를 쓰는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영화는 진흙탕처럼 더럽고 혼탁한 현실 속에서 의미를 길어올리고 진실을 정제해낼 때 아름다움은 발견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전작인 ‘밀양’에 이어 이번 ‘시’에 이르기까지, 이창동 감독은 결코 스크린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 ‘종교’나 ‘시’ 혹은 ‘믿음’과 ‘예술’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영역에서 보다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관객에게 많은 사유를 요구하는 그의 영화는 그래서 어렵다. 그리고 불편하다. 불편한 진실과 가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창동 감독은 <시>로 칸 영화제 각본상은 거머쥐었으나 관객들은 ‘미자’가 그랬던 것과는 달리 <시>를 외면했다.

영화가 선언하듯 이 시대는 ‘시’(時)도 죽고, 어느 면에선 ‘영화’도 죽어가는 시대다. 

[2010년 6월16일 제 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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