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몸으로 부딪히며 익혔죠”

▲코리인터내셔날 이동관 대표

인천 항도보세창고 내, 나무가 가득 쌓여있는 창고에 집기라고는 조그만 책상 하나가 전부다. 이동관 대표가 홀로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는 곳, 코리인터내셔널이다.

본래 고려대학교 생명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2004년 학사장교로 전역한 후 제약회사에 취직해 병원영업을 했다. 애초에 창업을 목적으로 제약회사의 시스템을 배우기 위한 입사였으나 제약산업이 기반 없이 뛰어들기에는 너무 진입장벽이 큰 시장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 대표는 입사 1년도 채 되기 전 과감히 회사에 사표를 냈다. 당시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던 러시아로 건너간 이 대표는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는데 중고차, 건자재부터 시작해 고철, 비금속, 수산물, 오일 등 온갖 아이템들을 전전했으나 운이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손을 덴 것이 바로 목재였다. 특히 벌크선 단위로만 거래가 가능해 자금이 많이 필요했던 타 업종에 비해 특수목은 컨테이너 단위의 수입이 가능했던 점이 매력적이었다.

2006년 무렵 거래선과 공급처를 몇 개 확보한 이동관 대표는 2007년 입국, 코리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국내 사업을 시작했다.

오크와 애쉬도 구분을 못할 정도로 목재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하나부터 열까지 몸으로 부딪혀 찾아 습득해야 했다. 공급업체는 물론이고 가공업체, 판매처까지 하나하나 찾아서 믿을 만한 회사인지 신용조사까지 일일이 해야 했다.

‘이제 좀 할 만하다’ 싶던 2008년 하반기에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코리인터내셔널은 불과 개업 몇 개월 만에 휴업에 돌입하게 된다. 그렇게 이동관 대표는 크고 작은 굴곡을 겪으며 빠르게 ‘목재인’이 되어갔다.

“품질이 좋으면 비싸도 팔리고 품질이 안 좋으면 싸도 안팔린다”는 이동관 대표는 수율이 낮아도 좋은 부분만 쓰자는 신조다. 또한 고객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원하는 규격으로 1차 가공을 해주기도 한다. 특히 소량 판매를 많이 하는 코리인터내셔널은 대부분의 업체들이 번들 포장을 풀지 않고 통째로 판매하는 반면 2~3줄씩 소량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물론 작은 규모로 시작하다보니 소량 판매를 하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그것이 오히려 코리인터내셔널의 장점이 됐다고 이동관 대표는 자부하고 있다.
스프러스와 같이 규격화된 제품과 더불어 남미산, 아프리카산 등 희귀 특수목을 수입해 공급하고 싶다는 이동관 대표의 장기적인 계획은 고부가가치의 목재사업을 하는 것이다. 특수처리 등의 기술개발을 통해 목재산업을 하위 개념의 1차산업이 아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품질과 고객우선주의를 신념처럼”

▲에스케이와이팀버 유현식 대표

방킬라이, 모말라, 울린, 맹가리스 등 동남아시아산 목재는 거의 다 만나볼 수 있는 곳, 바로 에스케이와이팀버다. 유현식 대표는 물건을 구입해간 소비자들이 품질에 만족하지 못할 시에는 무조건 환불해줄 정도로 품질에 대한 자신감과 고객우선주의를 신념으로 삼고 있다.

본래 건설회사를 다니던 유현식 대표는 2000년 무렵 목재회사에 입사해 2004년 에스케이와이팀버로 독립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무장사하면 돈 번다고 하여 이 업계에 입문했으나 예상보다 업계의 텃세가 심해 극복하는 데만도 2~3년이 걸렸다. 예전만 해도 독립하면 출신업체에서 도와주는 것이 관례였으나 유현식 대표가 독립하던 시기에는 목재시장에 위기가 겹치면서 오히려 견제가 심해졌고 독립은 엄두도 못 냈다. 그래서 이 업계에 유현식 대표의 또래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목재회사에서의 경력을 살려 방부목으로 처음 시작했던 유현식 대표는 2006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주요 품목도 천연데크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방부목 쪽이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저렴한 것만 찾는 까닭도 있었지만 당시 불거졌던 CCA 방부목 유해성 논란으로 제대로 된 제품마저 신용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품목이 한 번 바뀌기는 했어도 에스케이와이팀버는 줄곧 다품종보다는 한 가지 품목에 집중해 경쟁력을 키워왔다. 에스케이와이팀버가 초반에 자리를 잡는 데 있어서는 단품종이 나으리라는 것이 유 대표의 판단이었다. 다품종을 취급하기에는 인력과 자본이 많이 투입되기도 하는 데다 한 가지 품목에만 집중하는 것이 경쟁도 덜 치열하고 구매처를 확보하기에도 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이것이 대체품목이 없다는 단점이 되기도 하는 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현재는 몰딩, 마루 같은 내장재나 가구재 등 조금씩 품목을 늘려가려 하고 있다.

요즘 유현식 대표는 에스케이와이팀버의 미래를 두고 고민이 많다. 기존 방식대로 도매 위주로 가야할지, 아니면 소비자들과 1:1로 소통하는 다품종 체제로 가야할지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유 대표는 “점차 중간 유통상들이 무너지고 산지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세상이 오고 있다”며 “이렇듯 시장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소형업체가 큰 업체들 사이에서 틈새시장을 찾아 어떻게 자본을 축적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라고 이야기한다.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에스케이와이팀버의 가야할 길은 확실해 보인다. 
 


 

“1등보다는 꾸준한 2등 되고파”

▲윈우드 이홍연 대표

2006년 창립한 윈우드는 목조주택자재상들이 모여있는 경기도 광주에 자리잡고 있다. 햇수로 아직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에드윈’이라는 창호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목조주택자재업계의 실력자로 부상 중이다.

윈우드의 이홍연 대표는 사실 영업맨은 아니었다. 목조주택자재업체에서 세무파트에서 근무하던 그는 아무런 준비 없이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퇴사한 상황이어서 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는 더더욱 되지 않았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더욱이 자금 여력도 없는 가운데, 그저 도와주겠다던 지인들에 힘을 얻어 무작정 시작한 것.

윈우드는 도매판매는 하지 않는다. 시공자가 대부분인 소매 위주의 영업을 하고 있다. 다량 매입은 아니어도 그때그때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구매에 대해서도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이홍연 대표는 “오히려 영업이 아닌 세무파트에서 근무했었던 것이 구매에 도움이 됐다”며 “국내 도매상을 통해 제품을 도입하는 것보다 직수입을 간간이 해나간 것이 사업에 메리트가 됐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직수입을 통해 ‘우리만의 품목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난해 발표한 ‘에드윈’ 창호였다. 지난해 브랜드 론칭을 했지만, 사실 자사 브랜드를 확보하는 것은 이 대표가 사업 초기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중국 공장을 수도 없이 드나들면서 한국에 맞는 창호를 탄생시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원하는 수준의 제품을 꾸준히 생산해 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며 이 대표는 제품 개발 당시를 회고했다.

에드윈은 여러모로 효자 노릇을 했다. 윈우드보다 에드윈을 알게 돼 거래를 지속하고 있는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또 작은 업체지만 자사 브랜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높이사 거래하고 있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사 브랜드를 갖춰야 한다는 이 대표의 생각이 딱 들어 맞았던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직수입 품목을 늘려갈 계획”이라며, “대신 품목 다변화보다는 일부 품목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1등보다는 꾸준한 2등이 되고 싶다”는 이홍연 대표. 그러나 이미 자신만의 노하우로 무장한 그에겐 2등보다는 1등이 더 잘 어울리는 듯싶다.



 

“모험은 끝났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준우드 문준호 대표

4~5년간 직장생활을 하던 문준호 대표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0년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당시 목조주택 자재회사에 근무하던 그는 사실 목조주택 시공을 하고 싶었다. 문 대표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집을 짓는 다는 것이 매력적이어서 당시 웬만한 목조주택 교육은 죄다 섭렵하고 다녔다. 기술도 쌓이고 노하우도 생겼지만, 사업은 개인의 만족만으로는 영위할 수 없었다. 때문에 주택자재유통으로 노선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목조주택자재 유통에 접어들어 10년이 흘렀지만, 문 대표는 아직도 주택 시공에 꿈을 두고 있다. 지금은 한해 5채 정도 짓고 있다는 그는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인지, 집을 짓는 데 나름의 고집을 가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꽤나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해서 자재 선별에서부터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은 그 덕에 제품의 품질에 대한 변별력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10년을 버텨왔으니 준우드는 목조주택자재 업계에서는 이미 신참을 벗어났다. 문 대표는 겁 없이 사업을 벌이던 시절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했을 정도의 모험을 즐긴 것 같다고 말한다. 때문에 굴곡이 많았던 사업이지만, 그가 가장 어려운 때로 꼽는 것은 10년째로 접어든 올해다. “매출도 줄고 마진도 줄어 지금은 잔뜩 움츠리고 있다”는 문 대표는 “이제부터는 품목 다변화의 모험을 즐기기 보다는 검증된 제품에 집중하겠다”고 사업 목표를 밝혔다.

사실 그는 남들이 안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항상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던 그는 손해도 많이 봤다. 기껏 아이템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으면, 정작 재미를 보는 것은 더 싸게 같은 물건을 들여오는 후발 주자들이었다. 문 대표는 “애써 개발해낸 제품들이 남의 손에서 재미를 볼 때는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공부였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앞으로 수입 경험이 있던 제품들 중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다시 도입하려 계획하고 있다. 집성판재와 집성보가 대표적인 예로, 특히 한때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던 중국산 집성판재에 대한 수입을 늘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10년을 거울 삼아 ‘모험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할 것’이라는 문 대표,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그의 눈빛은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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