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업 이틀째인 9일, 동명목재 근로자 3천여 명은 회사에 정상출근해 동명 재건을 위한 농성을 계속했다.
근로자들은 이날 오전 10시 강정남 사장을 불러 그동안의 경위와 해명을 듣고 재산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회사에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강석진 회장은 그날 오후 근로자들의 농성장에 나와 ‘오늘의 사태에 죄책감을 느낀다. 말년에 이 같은 지경에 이르니 죽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하고 ‘모든 재산을 근로자 여러분들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하며 이를 각서로 써냈다.

동명조합 정상화 추진위원회(위원장 윤용웅 자재부장)는 강씨 일가족의 전 재산이 회사에 환수되는 대로 주식회사를 설립할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들 개인재산이 주식회사로 넘겨질 경우 증여세 70억 원과 양도세 등을 포함 2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동명재건을 위한 정부의 세제상 특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합판제조공장으로는 동양최대의 규모를 자랑해오던 동명목재가 당시 형식상으로는 임시휴업상태였지만 실질적인 도산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50여 년의 역사와 1천여억 원의 재산을 가진 기업이 불과 1년여의 불황에 못 견뎌 도산 상태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비단 동명목재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한국기업의 결함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동명목재가 살아나느냐 아니면 넘어지느냐에 따라 계열기업의 사활은 물론 연쇄파급영향이 매우 클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당시 금융계 및 업계에 따르면 동명목재는 거래은행에 6백억 원의 채무 외에도 단자회사에 130억 원, 거래업체에 백억 원의 채무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자회사의 대출은 대부분 신용대출이었다.

이러한 채무관계 때문에 동명목재가 도산할 경우 연쇄적인 피해가 막심할 것이 분명했다. 거래은행 측은 동명목재가 자체적으로 어떤 자구노력을 벌여 가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휴업 사흘째인 10일,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2억4천만 원을 긴급 융자해주어 종업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는 동명이 도산할 경우 당장 부산시 상공업계의 고용유지정책에 혼란이 일어나 실업자의 급증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사 재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동명의 3천7백여 근로자들뿐 아니라, 부산 상공업계도 회사 근로자 못지않게 다각적인 해결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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