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초 한옥의 재조명
“한옥에 살고 싶다”라는 명제가 사회를 풍미한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매스컴에 한옥이 소개되고 그것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체험담이 블로그를 통해 재생산됐으며, “한옥이 돌아왔다”, “한옥에 살어리랐다” 등 세련되게 정리된 한옥에 관한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옥 붐은 절정에 달한 것 같다. 2008년 국토해양부 조사 결과, 42%의 국민이 한옥에 살고 싶다는 응답을 했다고 하니 과히 열풍이라 할 만하다.
한옥은 글로벌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아시아로 수출되면서 평가받기 시작한 한국문화 열풍은 2002년 월드컵 신화를 계기로 증폭됐고 놀라운 성과의 본질을 찾아내려는 시도들은 전통문화로 눈을 돌렸다. 한글의 우수함, 한복의 우아함, 한식의 정갈함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이들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서 한옥의 가치가 상승했다. 한옥을 방문하고 체험하는 것은 한국문화를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동일시됐다.
같은 시기 서울시는 청계천을 복원했다. 지난 건축·토목사업이 경제적 합리성, 산업과 유통의 효율성에 입각한 인프라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면, 청계천 복원은 도시경관의 혁신과 문화적 상징의 개발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였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나대지를 개발한 것도 아니고, 도시조직을 파괴하는 전면적인 재개발도 아니었다. 수십 년 전의 경관을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는 일이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됐다.
이보다 조금 앞서 서울시는 북촌가꾸기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우연한 조건 아래서 한옥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던 북촌을 정비해서 서울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사업이었다. 북촌의 한옥은 대단한 작품성을 지닌 건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촌가꾸기 사업의 성공은 근대기 부동산 자본에 의해 개발된 경사지의 평범한 기와집과 좁은 골목의 매력을 단숨에 한국 주거문화의 대표 아이콘으로 부상시켰다. 더구나 한옥에 오피스, 아뜰리에, 병원 등 새로운 기능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신선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한옥은 오랜 기간 주거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었다. 20세기 근대화의 기치 아래, 주거문화의 개선은 한옥을 탈피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불편하고 낡았으며 전근대의 상징인 한옥은 낙후된 한국문화의 온갖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가 한옥을 대체하면서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했고, 농촌에서는 새마을 주택이 한옥을 대체하면서 경관을 일신했다. 아무도 한옥과 거주의 문제를 연결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한옥이 사회적·문화적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면서 당면한 주거문제와 관련해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한옥의 낭만적 흥취와 정서적 포근함은 아파트 중심의 갑갑하고 획일적인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한옥을 상점이나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전통문화의 체험장으로 이용된 것이 기존 한옥에 준 활력이라면,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귀농인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신한옥의 수요를 촉발시켰다. 다만 문제는 여전히 한옥의 단점이 해소되지 않은 시점에서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옥 수요는 매우 낭만적이다. 즉, 산업이라고 할 만한 공급체계가 갖추어진 것도 아니고, 한옥의 건축을 고려한 법체계가 정비된 것도 아니며, 현대식 설비와의 접점을 해결한 것도 아니다. 고급 한옥은 창의적인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솜씨 좋은 장인의 기술로 멋진 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서민들이 엄두를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한옥에 살고싶다는 명제는 아직은 꿈에 더 가깝다.
그러나 어떤 지역들에서는 그 꿈이 실현되고 있기도 하다. 대개의 경우는 정부와 지자체의 일정한 지원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건축비를 지원하고, 세제를 감해주는 일을 포함해서, 건축 단가를 낮추고, 성능을 개선하고, 장점을 홍보하는 역할을 다분히 국가기관에서 떠맡고 있다. 즉, 한옥문화 진흥의 초기단계에서 수요과 공급의 간극을 정부와 지자체에서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정부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옥 사업을 간략히 검토하고자 한다.

■한브랜드와 한스타일

한옥의 상품성에 대한 검토는 문화관광부 주도의 한브랜드화 사업에서 활성화됐다. 2005년 5월에 수립된 ‘한브랜드 지원전략’은 경제발전과 한류열풍 등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가 제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진단하고 브랜드화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같은 해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신일본양식·브랜드 추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네오 제패네스크(Neo Japaneseque)’를 국가 브랜드의 명칭으로 정했다. 이처럼 21세기 초 자국 전통 문화의 브랜드화는 하나의 세계적 트랜드로도 볼 수 있다.
한브랜드의 명칭은 ‘한스타일’로 결정됐다. 한스타일의 대상은 6개 분야, 즉 한글, 한식, 한복, 한옥, 한지, 한국음악이 선정됐다. 한스타일 사업은 우리 문화의 원류로서 대표성과 상징성을 띠고 있으나 자생력이 부족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우리 고유문화를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해 세계적인 문화명품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07년 2월15일에 발표된 ‘한스타일 육성 종합계획(2007~2011)’에 그 구체적인 방안이 수록됐다.
‘세계문화와 소통을 통한 새로운 문예부흥 시대 개척’이라는 정책비전에 따라 추진된 한스타일 육성 종합계획은 모두 40개의 과제로 구성됐으며, 그 중 한옥에 5개의 과제가 할당됐다. ①전통 한옥건축의 보전·관리 및 활용 ②한옥건축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의 정비 ③한옥건축 전문인력의 양성 및 관리 ④공공시설 한옥디자인 보급 확대 ⑤한옥의 관광자원화 및 한국식 정원모델 개발이 그것이다.
현재 문화관광체육부에서 한옥관련 사업은 국어민족문화과와 관광진흥과에서 추진 중이다. 국어민족문화과에서는 2007년 한스타일 육성 종합계획을 수립한 이후, 한옥건축 활성화 시범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한옥건축 활성화 시범사업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출한 한옥 공공건축물의 사업계획서를 평가해, 리모델링 건축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2008년에 20개소가 접수됐고, 이 중 서울시 구로구 청소년 도서관, 안산시 관산도서관, 군포시 산본도서관, 여수시 현암도서관이 선정돼, 각각 2억 원씩 지원됐다.
공공시설을 한옥으로 짓거나, 실내에 한옥의 요소를 도입하는 방안은 한스타일의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9년 국가브랜드 위원회와 외교통상부는 글로벌 코리아 추진계획에서 재외공관의 국가브랜드 거점화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총 156개 재외공관 청사 및 관저의 주요 응접 공간을 전통 한옥, 한지 등 한국의 전통을 살린 품격있는 공간으로 개선하고, 이에 더해 무형문화재 가구와 우수 미술품 및 전통 공예작품을 전시해 한국적 공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저의 게스트룸과 유엔 한국대표부 건물이 전주한지 등으로 새단장된 바 있으며, 최근 일본 토쿄의 한국문화원 사랑방이 한옥으로 지어져 찬사를 받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한스타일의 확산을 위한 또 하나의 축은 기존의 한옥을 활용해 관광자원으로 이용하는 일이다. 이는 주로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진흥과에서 주도하고 있다.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2000∼2010), 고택·종택 관광자원화 사업(2004), 콘텐츠 융합형 관광자원 개발사업(2007), 3대 문화권 개발사업(2010∼2019)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이들 사업은 기존 한옥에 숙박시설이나 체험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현대식 설비를 지원해주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강민 박사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부연구위원

 

 

 


<다음 호에 이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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