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욱 산림자원개발 컨설턴트
 졸업하자마자 한국남방개발(코데코)에 취업해 해외산림조사 사업에 뛰어들어 현지 원목개발과 제품생산 및 수출 등 목재의 모든 부분을 섭렵한 남자. 40년의 경력을 가진 해외 산림자원 조사 1세대 선봉장. 밀림을 누비면서 숱한 나날을 야생으로 보낸 남자. 건장한 체구에 매일 산에 오르는 남자. 그는 아직도 해외산림개발 소식에 목이 마르다. 해외산림개발 전문가 한상욱 컨설턴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왜 서울대 임학과를 가게 됐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시골서 자라 산이 친숙했는데 마침 산림청이 개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막연히 일할 자리가 있을까 해서 임학과에 입학했다.

졸업하고 어느 회사에 다녔나?
72년 ROTC 8기로 제대하고 코데코(KODECO)라고 알려진 한국남방개발에 입사했다. 우보명 교수의 추천에 있었지만 시험을 보고 입사했다. 두 명이 합격해 인도네시아로 바로 떠났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으로 갔는데 마침 최명행 선배가 기획과장을 하고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첫 임무는 산림자원조사 일이었다.

남방개발 입사당시 상황은 ?
내가 그곳에 갔을 당시 한국남방개발은 이미 3년 가까이 산림을 개발해 벌목한 원목을 100번째 배를 실어 올리는 것을 자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벌목한 원목은 국내 한국합판으로 독점으로 보내고 있을 때였다. 한 달에 6천 입방미터 정도를 3배 정도 수출했다.

당시 회사 규모는 어느 정도 였나?
인도네시아의 남방개발에 있었던 한국 사람만 해도 100명이 넘었다. 코린도라는 회사도 그땐 규모가 작았다. 남방개발에는 좋은 인적자원이 많았다.

남방개발에 대해 신화적인 얘기가 많던데?
최계월 사장이 오너였는데 재일교포였다. 당시 한일은행에서 해외산림개발을 하겠다고 무담보로 450만 불을 차입해 화제였다. 한일은행에서 해외개발 지금 대출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 1968년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 진출한 최초의 해외산림개발회사였다. 한국에서도 첫 번째 해외자원 개발회사였다. 창업주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수상의 둘째부인인 데위 여사(일본인)와 친분이 있어, 27만5천 정보의 산림개발권을 줬다. 이로 인해 단숨에 커다란 산림개발사업을 하게 됐고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다.

산림자원조사는 무엇이 중요한가?
산림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산림자원조사다. 산림자원조사의 핵심은 운송비다. 임도개설의 비용이 원가에 가장 영향을 미친다.

산림자원조사는 어떻게 하나?
산림자원조사는 항공조사를 통해 임상의 개황을 우선 본다. 수관을 보면서 어느 지역에 산림이 가치가 있는지 확인한다. 주임상을 확인한다. 그다음 주임상 지역을 샘플링 조사를 한다. 샘플링은 무척 중요하다. 샘플링을 통해 목재자원의 실체를 확인한다. 축적된 지형도를 보면서 임도개설 계획을 짠다. 임도망 설계는 물론 경사도면과 기초적인 토목공사 설계도 한다. 임도측량, 임도 건설 등의 실무일도 한다. 아무리 임상이 좋아도 임도조건이 맞지 않으면 개발하지 못한다. 손해를 봐야 한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많이 있다. 아직도 좋은 임상이 남아 있다면 임도 개설하는 데 최악의 조건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산림자원조사는 어는 단계에 있었나?
초기입니다. 거의 초기일 것이다. 전문적으로 틀을 잡은 것은 최명행 선배가 했고 제가 2년 정도 돼서 시작했는데 본격적인 산림자원조사 초기였다고 생각된다.

산림조사 당시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나?
정글이라서 시야가 확보 안 돼 위험한 상황이 많았다. 마그넷 콤파스와 지도와 빠랑(칼)만을 들고 다녀야 했는데 작업하다 늦게 돌아오면 어두워 길을 잃어 밤새 헤매다 겨우 숙소를 찾았던 일도 몇 차례 있었다. 암벽에서 미끄러져 다치기도 했다.

최근에 조사했던 곳은?
필리핀에 산림자원 컨설팅을 위해 갔었고 작년 중순부터 올해까지 미얀마 산림을 개발하기위해 산림자원조사와 개발에 관련된 일련의 계획을 총괄했다. 현장조사와 식재입지조건조사, 산림지도 개발, 샘플링, 사업계획서작성, 인력장비소요계획수립, 시행관리계획 등을 세웠다.

인도네시아 목재공장 총괄을 하셨던데?
당시 신흥목재가 우아미 가구공장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합판공장을 검토 할 때이다. 최 선배가 임지개발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흥목재도 원목이 필요했다. 신흥목재는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에 아주발라빤팀버 설립에 자금을 투자했고 경영을 최 선배가 했다. 난 최 선배와 함께 하기로 하고 아주발라빤팀버로 가기 전에 한국의 신흥목재에서 1년 동안 목재가공공장 경험을 쌓기 위해 근무를 했다. 당시 삼미사 다음으로 큰 신흥목재는 42대의 제재기와 건조기, 가공기계들을 가진 공장이 있었다. 1년 반 있었는데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까지 목재가공 공장 총괄을 했다. 인도네시아 회사로 가서 임지개발 기획, 생산을 총괄했다.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셨던데?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현대종합목재에 영업부 차장으로 입사해 부산지점 초대지점장으로 근무했었다. 4년을 근무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반잘마신에서 바리또사와 인연이 두터운 강수희 선배의 제의로 제재가공공장을 차리는데 총괄을 했다. 생산된 제품은 일본과 구라파에 수출했다. 원목구입, 생산 및 수출 업무를 보면서 목재사업의 모든 부분에 경험을 통한 식견을 갖게 됐고 그렇게 해서 목재사업 총괄기획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4년 후에 태신물산이라는 사업체를 차리게 됐다.

산림자원조사와 개발을 경험하는 분이 많은 가?
1986년 인도네시아의 원목수출금지 조치를 전후로 해서 쓸 만한 임지가 대부분 사라져 내가 일을 할 만한 곳이 없어졌다. 특히 산림자원조사 1세대 이후 내가 뽑은 몇 안 되는 4년 후배만이 이일에 경험이 있을 뿐이다. 산림조사 전문성을 가진 인적자원도 대부분 고갈 됐다.

산림개발을 계획 중인 회사에 조언을 한다면.
산림개발의 핵심은 임도건설이다. 임상자원을 평가하고 임도건설비용을 판단해야 한다. 분산된 임지보다 집약된 임지가 유리하다. 산림개발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반드시 전문가가 일차적으로 사업성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공조사를 통해 보면 대략적인 사업수익성을 알 수 있다. 사업수익성이 전문가를 통해 긍정적 대답이 나오면 구체적인 검토 작업에 돌입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하는 곳이 산림개발사업이다. 전문가의 초기 진단이 가장 유용하고 그 다음은 철저한 확인을 통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고 자금이 뒷받침 돼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이산화탄소배출에 관련된 탄소배출권 확보로 재조림 시장이 뜨면서 일이 생겨나고 있다. 또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에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과거의 축적된 경험을 살릴만한 산림개발사업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컨설턴트로써 도움을 주는 컨설팅을 계속할 것이다.

 ○한상욱 컨설턴트 약력
서울대 임학과 졸 / 한국남방개발 근무
신흥목재 근무 / 현대종합목재 근무
바리또그룹 / 태신물산 대표
현 산림자원개발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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