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임업 하종범 사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엽송 합판’을 일반화시킨 사람. 엠보싱 가공을 통해 질감이 뛰어나고 다양한 색상연출을 할 수 있는 낙엽송 합판을 보급해 목재패션을 선도한 사람. 몇 번의 사업실패를 교훈삼아 발로 뛰어 땀과 눈물로 역경을 이겨낸 멋쟁이. 목재창고에서 색소폰 하나로 저문 해를 벗 삼아 불 줄 알고 수십 년이상 분재 가꾸기를 통해 취미생활의 달인 경지에도 오른 남자. 인테리어 소재로써 낙엽송 합판의 등장은 천연 질감을 중요시하는 시대의 트렌드와 궁합이 잘 맞았다. 이제 전국 어디를 가도 낙엽송 합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가 이젠 고재 연구에 푹 빠졌다. 판재를 가공해 고재를 연출하는 작업은 상당한 감각을 요한다. 말쑥한 차림에 탤런트라 불러도 빠지지 않는 용모를 갖춘 에이스임업 하종범 사장의 관심은 언제나 목재소재를 이용한 패션창출에 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에게 직접 들어봤다.

목재업계 입문은 언제였나?
1985년 6월 1일 산화실업에 입사했어요. 이전에는 양봉이랑 가스구판업도 했었습니다. 지금의 산화실업 유 사장님께서 나왕 제재목 판매를 해보라고 해서 목재와 인연을 맺게 됐고, 26세부터 장사에 나섰어요.

첫 사업에서 쓴 잔을 마셨다고?
1994년에 성화목재를 창업해서 나왕제재목 수입 판매를 했습니다. 당시 은행이 신용만 있으면 많이 밀어주었던 시절이여서 초창기에는 승승장구 했어요. 그러던 중 IMF를 만났습니다. IMF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을 때라 그 충격은 컸습니다. 분명 줄 돈 보다 받을 돈이 많았는 데 받을 어음의 30%는 못 받게 되고 은행에 줘야 할 돈은 2배 가까이 늘어 오히려 상황이 역전됐어요.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어요. 은행에 가서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 고성으로 항의도 했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첫 번째 사업은 그렇게 접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나?
1998년 에이스임업(주)를 세워서 카드목 사업으로 제기했습니다. ‘림부난히자우’라는 말레이시아의 큰 회사와 거래를 했습니다. 림부나히자우가 바누와뚜에 공장을 세웠는데 거기서 마디카 대용으로 밀크트리를 수입해 왔습니다. 회장의 동생이 잘 봐줘서 TT거래를 틀 수 있었죠. 바누와뚜는 엄청 작은 나라였습니다. 당시 34콘테이너 분량을 수입해 왔는데 그 나라 수출기록이 됐다는 말도 들었고 그 이유로 대통령과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영림임업에서 많은 양을 사줬습니다.

영림임업의 황 사장은 “비닐랩핑한 몰딩재가 앞으로 출시되는데 수입 양을 줄이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었는데 듣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한 발 더 나가서 밋밋한 원목 몰딩에 프린팅을 직접해서 우레탄 도장을 하는 신기술에 투자했습니다. 초기 반응이 좋아 총판 8개를 개설하고 OEM을 줘서 색깔별로 품목을 만들어 3천에서 8천만 원씩 초도 물량을 냈는데 처참하게 실패했지요. 자만이 컸지요. 설마 비닐 래핑제품에 밀릴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또 잘 나가다 다시 엎어 졌지요.

엠보싱 낙엽송 합판은 어떻게 개발했나?
두 번의 사업실패로 목재업계를 떠나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차에 천안에 있는 모 사장님이 낙엽송 합판을 권유했어요. 그 낙엽송 합판은 당시 이건산업에서 국산 낙엽송으로 시험생산 겸 만들어진 제품이었는 데, 팔아 보려해도 물건이 없어 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흑룡강성에서 만들 수 있는 업체를 찾게 됐지요. 30~40여 공장을 돌아 찾아 냈어요. 그 공장은 낙엽송 합판에 페놀수지를 오버레이해 테고 합판을 만드는 공장이었지요. 까다로운 수종이라 제품 개발까지 만만치 않았습니다.

낮선 소재를 유통하는 게 어려웠을 텐데?
‘납품에 죽고 납품에 살자’라고 살아 왔는데 IMF이후에 ‘현금 도소매 판매업을 해야 겠다’하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래서 낙엽송 합판 샘플을 만들어서 하루에 500~600㎞씩 운전하면서 전국 건재상에 낙엽송 합판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인테리어용 낙엽송 합판은 생소하기도 하고 비싸서 사용하기 꺼려했고, 문전박대도 많이 받았어요. 당시 12㎜ 합판 6000장을 재단해서 낙엽송 합판 컬러엔틱마루를 만들었습니다. 18개 색상을 적용했어요. 지금도 건재상에 가보면 제가 뿌린 샘플이 아직도 대부분입니다.

낙엽송 합판의 인기는 어느 정도 였나?
낙엽송 합판은 크게 클레임이 발생하지 않았어요. 크랙이 가도 임자가 있었지요. 낙엽송합판은 옹이, 색상, 무늬가 달라도 취향에 따라 쓸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여서 젊은 층의 클래식한 취향으로 인해 낙엽송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어요. 복고풍의 트렌드가 낙엽송 인테리어와 매치가 됐다고 봅니다. 낙엽송의 매력은 사용자에 의해 아주 멋지게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이지요.

시장점유율 70%라는 기록을 세웠다고?
시장점유율 70%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엽송 합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품질제일주위, 고객대응, AS 등 많은 부분에서 에이스 임업만의 차별화를 해 온 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홍보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우리 회사에 제품 불만이나 배송불만 전화가 오면 무조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 한 뒤 고객의 요구사항을 들어 주도록 직원들을 교육합니다.

최근 고재로 사업을 확장 했는데 성과는?
낙엽송 합판도 하나의 트렌드이고 고재도 하나의 트렌드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실감나는 고재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술 완성도가 만족스럽지 않으나 머지않아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회사의 이름이 알려져 불특정 거래가 일어납니다. 고재 주문도 그렇습니다. 낙엽송은 합판소재이지만 고재는 원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더 자연친화적입니다. 최근 들어 질감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브러싱, 쏘잉, 엠보싱 처리를 통해 질감을 극대화하고 엔틱한 느낌을 살려보려 합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컬러패턴인데 다양한 방식의 협력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고재시장은 낙엽송 합판보다 더 클 것으로 기대합니다.

꼭 개발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질감과 색상조화가 극대화된 인테리어 소재를 개발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지속가능한 산림인증(FSC)과 JAS 인증을 받은 제품을 개발해 국내 판매도 하고 수출도 하는 꿈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여력을 만들어 가면 연구투자는 물론, 주변 업체와의 협력으로 성과를 만들어가는 노력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종범 사장님께 목재는 무엇입니까?
“내게 목재는 동반자다”라 답하겠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목재를 접하고 죽을 때도 그렇고 목재는 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동반자적 관계 아닐까요? 부인이라 해도 좋지요.

○ 하종범 대표 약력
산화실업 근무
성화목재 대표
에이스임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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