쎌포 임경수 대표이사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산업이면서도 가장 진부한 품목인 무늬목 제조업에 30년 넘게 종사해 오면서 세계 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염색무늬목을 개발해 화제가 된 남자. 섬유 염색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까다로운 무늬목 염색기술을 5년 이상의 노력 끝에 완성한 뚝심 있는 남자. 자신의 모든 재산을 올인하며 염색무늬목 개발에 나섰고 섬유염색 전문 박사조차도 두 손 들 정도로 난해한 분야였지만 생산기술연구소와의 공동연구 사업이 채택된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탈색, 염색, 탈수, 건조를 거친 수려한 염색무늬목 생산기술이 탄생했다. 이태리 타부社와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염색무늬목에 엠보싱기술을 가미해 질감 있는 인테리어용 가공제품도 개발했다. 이제 세계시장을 향해 도전장을 던진다는 쎌포 임경수 대표와 인터뷰했다.

언제 목재업에 입문했나
군대 제대 후 1970년도 중반 을지로에서 친구가 운영하던 회사에서 도와 달라고 한 것이 인연이 됐다. 그 회사는 무늬목, 특수목, 합판, 루바, 마루판 등을 취급했었는데 5년 정도를 근무 했었다.

사업을 언제 시작했나
그 친구의 도움으로 을지로에 매장을 냈다. ‘현대무늬목재’라는 이름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는 성수동 무늬목 공장에서 무늬목을 사와서 매장에서 팔았다. 잘못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힘들고 불안한 시절이었지만 다행히 잘 풀렸다. 당시 건축내장재를 사려면 대부분 을지로에 와야 했다. 을지로 3~4가는 합판, 무늬목, 루바, 마루판, 특수목 등을 취급하고 있었다. 당시 지하철공사로 인해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아야 했는데 우리 매장은 콘크리트 구조물이여서 철거 대상에서 제외됐고, 문을 닫은 회사의 고객들이 우리 매장으로 찾아와 호황을 누렸다. 반사이익이 있었던 셈이다.

제조업을 하게 된 동기는
조달이 어려운 무늬목은 원목을 사서 임가공을 줘야 하는 데 그렇게 하면 무늬목 재고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서 미장합판과 포리톤을 하는 공장을 야탑동에 세웠다. 1989년 쯤이다. 그러다 분당 신시가지가 조성돼 이사를 가야 했다. 경기도 광주에 부지를 구입해 을지산업이라는 무늬목 가공 회사를 세웠다. 부지가 작다고 판단해 용인 모현으로 큰 부지를 얻어 이전을 했다. 그런데 94년 쯤 건설사의 연이은 부도로 악성채권이 늘어나면서 공장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6개월을 쉬었던 경험이 있다.

어떻게 극복했나
당시 을지로에는 동생에게 운영하라고 맡겼던 매장이 있었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을지로로 돌아왔다. 을지로에 와 보니 예전과는 달리 화물차 주차가 어렵게 교통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고 사람들도 지하보도로 다니면서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적었다. 안 되겠다 싶어 논현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세운 회사가 ‘베데코’다. 동시에 장지동에 생산 공장도 세웠다. 그렇게 해서 차츰 회복했다.

염색무늬목 사업은 어떻게 했나
당시 유럽이나 미국, 아시아 등의 해외 전시회에서 염색무늬목을 봤다. 양질의 원목자원이 고갈되어가는 추세였고 건식무늬목으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천연무늬목은 색상이 불균일하다는 컴플레인이 많았다. 건설현장의 색상 컴플레인에 대응하기위해 반드시 ‘염색무늬목’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이태리,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 회사를 방문했으나 기술은 알려주지 않고 매입만을 요구했다. 그래서 내 손으로 개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애로 사항이 많았을 텐데
2005년 5월에 쎌포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염색무늬목 개발에 나섰다. 우선 염색을 할 수 있는 공단을 찾아 공장을 매입했다. 그 곳이 지금의 포천섬유염색단지다. 개발 초창기에는 국내에 벤치마킹할 회사가 없었다. 개발당시부터 시작해 3년 정도 매출이 전무했다. 개발 1년 후면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봤지만 실제 목재염색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졌다. 색상발현과 균일한 염색은 말이 쉽지 너무 복잡한 팩터 때문에 실타래처럼 꼬여만 갔다. 그러다 ‘제조현장 녹색화 기술개발사업’이 지경부 연구과제로 채택돼 생산기술연구소와 공동연구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섬유염색에 권위자인분들께서도 3개월 하더니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만큼 목재염색은 어려웠다. 해결해야 할 사안이 계속 발생했다. 특히 염색분야에 기초지식이 약해 용어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염색관력서적과 기초화학 서적도 틈틈이 봐야 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염색하려면 탈색을 우선해야 하는 데 나무마다 조건이 달랐다. 색의 발현이 일정해야 하는 데 쉽지 않았다. 수종마다 체계적으로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했다. 염색한 무늬목은 수분을 빼서 건조해야 하는 데 어떤 방법을 써도 수분이 빨리 빠지지 않았다. 무리하게 압착하면 무늬목이 찢어져 쓸 수 없게 됐다. 이 부분도 생기연의 도움을 받아 원심분리방법으로 해결했다. 생기연에 6개월 이상 숙식을 하면서 매달려야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자금난과 ‘성공하지 못하면…’ 하는 불안감에 정신적 자괴감과 충격은 말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염색무늬목 개발에 성공했는데
작년 11월에 한국섬유연합회에서 ‘모범경영인상’을 받았다. 우리 회사는 작은 생산설비에 비해 생산량이 많다. 여러나라에서 관심이 많다. 특히 욕비(염색에 사용되는 물의 비율)가 매우 낮은 상태로 생산되는 장점도 있다. 반응성 염료를 사용하면 조제가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생산원가도 낮게 할 수 있다.

염색기술에 대한 평가는
독일에서 열린 소재 관련 전시회에서 가장 명성 높은 이태리 타부社의 카달로그를 분석해 봤는데 우리 제품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타부사의 제품을 임가공하면서 어떤 면에서 우리의 염색기술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무늬목에 엠보싱을 하는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모자이크 제품 또는 완구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 MDF에 염색무늬목을 접착한 후 브러싱한 제품을 대중화할 계획이다. 특히 중국, 터키, 동남아시아 시장개척을 위해 매진할 계획이다.

업계의 미래에 대해
무늬목 업계는 지금도 불법제품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변변한 협회조차 구성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모두가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무늬목 업계의 발전을 위해 뜻 있는 업체부터 협력하고 대응할 수 있는 협회결성에도 힘을 보태고 싶다. 가장 부가가치 있는 제품이 가장 낙후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 임경수 대표이사 약력
   현대무늬목 창업 / 을지산업 창업
   (주)베데코 대표 / (주)쎌포 대표이사
   한국섬유연합회 모범경영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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