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실업 Ⅰ

제재목 유통업으로 시작
삼산실업은 현재 최상급의 보드류 제품과 천연데크재 및 양질의 목재제품을 수입·판매하는 목재유통의 전문기업으로 초창기에는 제재목 유통업으로 시작한 회사다.
1987년 10월 어느 날, 연안부두 삼성타장 길 건너편 10평 남짓한 조그만 사무실에서 개업식을 한다기에 찾아가서 축하를 해주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시 필자가 대성목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이 동업으로 출발
삼산실업은 대성목재 출신 김낙기 씨와 김광채 씨가 동업으로 출발한 회사로 두 사람은 대성목재 73년도 입사동기이다. 당초에는 입사동기인 임흥순 씨가 참여하는 것으로 돼있어 회사이름을 三山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흥순 씨는 당시 말레이시아 산다칸에서 원목오퍼를 하고 있어 조인을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광채 씨(진주농대 임학과졸)는 80년도 대성목재를 퇴사하고 문령실업(대표 문공훈)이라는 제재목 유통업체에 근무하다가 삼산실업 창업에 참여했고, 김낙기 씨(고려대 임학과졸)는 대성목재 영업부에서 합판영업을 하다가 87년 대성목재를 퇴사하고 곧바로 삼산실업 창업에 참여했다.
임흥순 씨(고려대 임학과졸)는 79년도에 대성목재를 퇴사하고 말레이시아에 원목오퍼를 하러 나갔다.
이들 세 사람은 대성목재 입사 후 자유공원 입구에 있는 대성목재 기숙사에서 7년간이나 같이 생활을 하면서 그때부터 사업의 꿈을 키워왔다.

연안부두 국제상사 타장 이용
1987년은 ‘88서울 올림픽’을 앞둔 해였다. 서울올림픽을 준비한 것은 전두환 대통령이었는데 정작 서울올림픽의 개회 선언을한 것은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주택 200만호를 자신의 임기내에 짓겠다고 공약을 했다. 당시 필자가 서교동 홍대입구에 살 때였는데, 퇴근 후에 집앞에 있는 구멍가게 앞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에 있던 홍대건축과 교수가 “단군 이래 주택이 800만호인데 5년 동안에 200만호를 짓겠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실제로 그 공약을 실천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건설 붐이 일어나서 주택건설은 매년 40만호를 웃돌았다. 이러한 건설 붐은 목재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원목수입도 많이 됐고, 합판 수입도 많이 됐을 뿐 아니라 제재목 수입도 많이 됐다.
삼산실업도 당시 이러한 붐을 타고 말레이시아로부터 활엽수 제재목인 라왕 제재목 뿐만 아니라 MLH 제재목 등을 많이 수입해 판매했다. 당시 삼산실업은 연안부두에 있는 국제상사 타장을 임차해서 제재목을 쌓아놓고 판매했다. 삼산실업은 주로 소각재 규격을 많이 수입해서 팔았다. 판재는 당시 제재소에서 켜서 판매했다.

당시 제재목 수입, 마진율 높아
1987년부터 1997년까지는 우리나라에 제재목 수입상들이 대단히 많았는데 당시 활엽수 제재목 수입업자들은 수입가격과 판매가격으로 인한 마진 외에 재적차이로 마진율이 높았다.
재적 차이란 얼라우언스(allowance)를 말하는 것인데, 예컨대 30×30×3600㎜의 제재목을 수입할 때 말레이시아에서는 송장(invoice)에 3㎜정도의 여척(allowance)을 줘서 수출했다. 즉 27×27×3600㎜으로 송장을 작성하고 가격도 27㎜에 대한 가격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 수입되면 30㎜로 판매를 했다. 당시 항간에서는 27%의 재적 차이로 마진을 보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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