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춘만 前 이건산업(주) 대표이사 現 호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숭례문이 믿기지 않는 사고로 불타고 다시 재건되었다. 옛 방식 그대로 재건되어 우리들 품에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 숭례문이 밉다. 경복궁도 창경궁도 커다란 사찰도 다 밉다.
내가 이들을 미워하는 것은 이러한 건물에 소요된 최고 품질의 목재들 때문이다. 오랜 세월 대규모 역사가 있을 때면 전국의 잘 생긴 소나무는 징발되어 사라졌다. 소나무는 봄이 되면 송홧가루를 날려 생식이 이루어지는 나무다. 바람이 불면 안개처럼 날리는 송홧가루는 수많은 소나무들의 꽃가루이며 이들이 자손을 퍼트리는 것이다.

좋은 건물을 지으며 최고의 자재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 양질의 자재는 별도로 나무를 심어 사용하고 종자의 보고인 원래 최고의 나무들은 남겨두어야 숲이 좋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오랜 세월 좋은 나무를 베어 쓰고 시원치 않은 나무들을 남겨두었다. 결국 전체의 숲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자명하다. 전국의 우리 고유의 육송 (홍송이라고도 하며 껍질이 붉은색이며 잎이 2개이다)은 삐뚤어지고 못 생긴 녀석들 투성이다. 춘양목(금강송) 일부가 그런대로 남아 있었던 것은 깊은 산속에 교통이 나빠 목숨을 부지한 까닭일 뿐이다. 장래를 생각하는 안목이 없이 눈앞의 이익만 챙기면 결국 차세대의 재목은 피해를 입게 된다.

과거에는 배를 만드는 조선(造船)의 경우에는 조선재(造船材)로 사용하기 위해 특별한 지역(안면도)에 우수한 용재를 심어 특별하게 관리한 기록도 있고 일부 지역에 벌채를 금지하며 우수한 나무를 보호한 기록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대규모의 건축이 진행될 때면 당대의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목을 짤라 썼다고 볼 수 있다.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금번 숭례문에도 산림청뿐 아니라 전국의 산주(山主)들이 자진하여 좋은 나무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우리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은 150여명의 국민이 기증 의사를 밝혔고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 의사를 뿌리칠 수 없어 일일이 전화 확인과 현지조사를 거치게 되었다. 그러나 조사결과 대부분은 사용이 어려웠다. 벌채가 불가능하거나, 산중 깊은 곳으로 운반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소나무의 직경이 너무 작아 활용도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중 10여 곳의 목재는 수급하게 되었다. 자신의 관 제작에 쓰려고, 집을 지으려고 준비한 재목을 기꺼이 내어 놓고 집 앞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꼭 써달라고 하면서 문화재청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본인이 직접 베어 숭례문에 가져다 놓겠다는 분들도 있었다고 하니 우리 국민들의 나라 사랑의 마음은 너무나 따뜻하다. 또한 문화재청에서 직접관리하고 있는 삼척의 준경묘(태조의 5대조묘로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산골 지역이다) 주변에는 길고 곧게 뻗은 큰 소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 곳 목재 10주를 베어 오기도 했다.
아무튼 필자의 요지는 우수한 종자는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남겨두어 후세의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석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려시대의 건축물은 주로 활엽수를 사용하였으나 조선조에 들어서는 대부분 소나무를 사용하였다. 제대로 자원 관리를 하지 않고 좋은 나무를 차례대로 베어내고 우수한 용재를 더 이상 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오늘날 동남아 국가들이 천연림을 베어 내고 제대로 조림을 하지 않아 나무 부족 국가로 전락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주요 건축물의 기둥 등 핵심 목재의 수종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목조 건축물 기둥의 55%를 느티나무로, 40% 정도는 소나무로 했다.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소나무 사용이 많아져 70% 이상에 이르렀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목조 건축물인 경북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 모두는 느티나무, 조선시대의 궁궐·사찰 등의 목재는 대부분 소나무다. 주요 건축물의 기둥 등 핵심 목재의 수종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목조 건축물 기둥의 55%를 느티나무로, 40% 정도는 소나무로 했다.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소나무 사용이 많아져 70% 이상에 이르렀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목조 건축물인 경북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 모두는 느티나무, 조선시대의 궁궐·사찰 등의 목재는 대부분 소나무다. 숭례문에 사용된 목재 역시 모두 소나무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가면서 주요 목재가 느티나무에서 소나무로 옮긴 것은 느티나무의 공급량이 달렸기 때문이라고 국립산림과학원은 분석했다.

여기서 필자는 선운사에 사용된 나무를 보고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선운사의 일부 건물은 곧게 뻗은 나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그 조화가 절묘하며 그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 세대가 미래를 위해 우수한 재목을 남기는 정신은 꼭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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