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춘만 前 이건산업(주) 대표이사 現 호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와인과 나무의 밀접한 관계에서 오크통의 이야기와 코르크를 다루었다. 여기에서는 또 다른 부분인 숯을 다루기로 한다. 와인 제조에 있어 후반부의 중요한 과정중 하나는 발효가 진행된 와인을 병에 옮겨서 보관하기 전에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필히 거쳐야 하는 필트레이션(Filtration, 여과)이다. 필트레이션은 단순하게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이 아니라 와인의 색깔을 결정하고 보존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보통 다섯차례 정도의 필트레이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앞부분에서는 비교적 커다란 크기의 이물질을 제거하며, 중간 과정에서는 작은 이물질을 제거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직 발효가 진행중인 효소와 젖산 박테리아를 제거한다. 여기서 흥미있는 점은 우리나라 정수기처럼 필트레이션을 세게 하면 와인은 색깔도 맛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와이너리마다 적당한 정도의 필트레이션을 진행하게 되며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예술적 영역이다. 오래된 와인을 마시면 어느정도 찌꺼기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와인병의 밑 부분은 속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고 거기에 등고선처럼 굴곡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러한 찌꺼기를 거르게 해주는 용도임은 잘 알려져 있다.

근래에 사용되는 필터는 대개 목재 섬유나 규조토 등으로 만든 패드를 사용한다. 촘촘한 정도에 따라 1~5번으로 나누고 사용 방법은 와이너리마다 다르다. 그러나 오랜 세월 필트레이션 재료로 사용된 것은 숯이었다. 숯의 정화 작용은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한동안 유럽에서 광우병이 문제가 되었을 때 와인 소비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광우병과 와인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오랜세월 와인의 정화에는 나무 숯이 사용되었는데 근래에 들어 필트레이션 할 때 나무 숯이 아닌 소의 뼈를 태워서 만든 숯을 사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뼈의 조직을 잘보면 목재의 조직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우리네처럼 사골을 고아 먹지 않으므로 소뼈는 처리가 곤란한 부산물이었는데 상업적인 목적에서 이를 소각하여 얻은 숯을 필트레이션 재료로 개발하였던 것이다. 광우병균은 열을 가해도 박멸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결국 소뼈로 만든 숯을 여과 물질로 사용하였던 와인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고급와인의 여과 과정에 소뼈로 만든 숯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와인은 자연이 만든 선물로 여과과정에서도 순수한 나무 숯을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일부 업자들의 과욕이 빚은 해프닝이었다. 숯불갈비에 참숯 대신 조악한 인조 숯을 사용하면 그 맛이 어떻겠는가?

와인은 오크통으로 숙성시키고 목질의 재료로 만든 숯으로 필트레이션하고 오크 껍질로 만든 코르크로 만드는 것이 제일 좋다. 와인과 목재는 서서히 숙성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서두르지 않는 맛이 닮았다. 와인을 마실때 천천히 마시는 것도 그런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하며 칠레에서 근무한 것을 인연으로 필자도 자연스럽게 와인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맛과 향이 오염되지 않고 오랫동안 나무와 함께 짝을 이루며 후대에 전해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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