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MDF의 역사 XIV

2009년 5월 16일, 동화기업 승상배 회장 별세
우리나라 MDF의 역사를 말하다보면 동화기업이 MDF 역사의 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동화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MDF공장을 건설한 면도 있지만, 그후에도 계속 MDF공장을 건설했고, 해외로 진출해서 말레이시아와 뉴질랜드의 MDF공장을 인수하는 등 글로벌 MDF 기업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화기업이 MDF 산업에서 장족의 발전을 한 이면에는 동화기업의 승상배 회장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에 장사가 없다. 2009년 5월 16일, 동화기업의 승상배 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목재업계 아니 MDF 업계의 큰 별이 떨어진 것이다. 향년 나이 89세였다.

그는 1921년 평북 청주에서 태어나 1944년 서울로 와서 1953년 동화기업을 창업, 국내 목재산업을 이끌었다. 그의 업적중에 목질판상재 분야만 보면, 1972년 파티클보드 공장을 짓고 목질판상재 사업에 뛰어들었고, 1985년에는 국내 최초로 MDF공장을 짓고 목질판상재 업계의 선두주자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살아생전인 2003년 말레이시아 Golden Hope社와 합작으로 MDF공장을 인수하는 한편, 2005년에는 뉴질랜드 레이오니아社의 MDF공장을 인수했고, 2007년에는 말레이시아 거쓰리 MDF공장을 인수하는 등 MDF 사업을 세계로 뻗어나가게 했다.

유족으로는 인도네시아 코린도 그룹 회장인 장남 승은호 씨와 차남인 동화홀딩스 부회장 승명호 씨, 포레스코 회장인 삼남 승현준 씨가 있다. 부인은 동숭아트센터의 김옥랑 대표다.
 

2009년 8월 광원목재, 평택에 제2공장 건설
광원목재 정해진 대표는 3개의 제재소에서 발생되는 부산물(죽데기 등)을 제1 MDF공장 하나만으로는 다 처리할 수 없자 MDF공장을 하나 더 지을 것을 계획한다. 부산물 처리도 처리지만 사실 MDF 사업은 원재료가 있고 팔리기만 하면 돈방석인 사업이었기 때문에 회사의 이익을 더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해진 대표는 2008년 12월, 평택의 기존 MDF공장 옆에 부지 13,500평을 마련하고 건평 3,500평의 제2 MDF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정해진 대표는 지난번 제1공장을 지을때 중고기계를 수입 설치해서 생산이 잘 안되는 등 곤란을 겪었던 점을 생각해 이번에는 독일 짐펠캄프社의 신형 기계설비인 conti 16m 연속프레스(폭 8.5㎝)를 수입해 일산 600㎥(년산 18만㎥) 규모의 MDF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착공한지 7개월만인 2009년 7월 27일 준공식을 갖고 2009년 8월에 첫 생산에 들어갔다. 이로써 광원목재는 제1 MDF공장 8만3,000㎥과 함께 총 26만3,000㎥을 연간으로 생산하게 됐다.
 

2009년, 국내 MDF 시황
지금으로부터 5년전인 2009년의 국내 MDF 시황은 어땠을까? 2009년 당시 국내 MDF 생산량은 165만5,000㎥으로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인 1999년 국내 생산량 84만3,000㎥에 비하면 거의 2배 이상 늘어났다.

2009년 MDF 수입량은 18만5,000㎥으로 2008년에 46만8,000㎥이 수입되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 감소했다. 2009년 MDF 수입량이 갑자기 줄어든 원인은 2008년 발생된 리먼브러더스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흔들렸고, 당시 우리나라 환율이 900원대에서 1,500원대로 인상되는 등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내 MDF 생산도 많이 됐기 때문에, 수입 MDF가 국내에 발을 못부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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