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는 이 나라의 비뚤어진 사회와 문화를 마치 비웃는 듯 이태리전 안정환 선수의 힘찬 역전 헤딩슛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냉전체제 속을 살아오면서도 서로를 못 잡아서 물고 헐뜯어 상대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무자비한 공격을 일삼던 정치패거리들이 무거운 쇠망치에 맞은 일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핏속에 500백년 넘은 당파싸움의 유전인자가 또다시 살아나서 이 땅을 지배할 것인가 고민 고민 했던 바로 그 개표 날의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위기는 기회라 했던가? 기다리는 자에게는 새 날이 반드시 온다고 했던가? 국민 1인당 0.46입방미터의 목재를 사용하면서도 목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 마치 정치행위를 해왔음에도 정치 그 자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일천한 것처럼 말이다.

생명의 가치도 소중하지만 사용의 가치도 매우 소중하다. 생명의 문화와 사용의 문화는 공존하며 누가 먼저며 누가 나중이라 할 수 없다.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로는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심고, 가꾸고,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하나로 인식되어야 비로소 환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 것이다.

여와 야가 대립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집착과 고집으로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심는 사람과 가꾸는 사람 그리고 이용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편다. 이것이 오늘 우리 임업의 자화상이다. 

평행선을 달리는 정치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임업인의 한사람으로 지울 수 없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건 베어서 사용하는 사람이건 다 임업행위이다.  이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해석하여 서로를 경계하고 터부시한다면 되레 정치판보다 못할 수 있다.

우리국민은 어쩌면 불행하다. 

수 백년된 숲이 우리에겐 흔하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오래된 숲이 전해주는 역사의 메아리를 우린 듣지 못하고 있다. 또 아름드리나무가 흔치 않아 훌륭한 재목을 만나기 어려운 역사적 아픔이 있다. 후손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새해에는 임업종사자와 목재산업종사자가 한 배를 탄 한 가족임을 인정해야 하겠다. 그리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토론과 문화행사가 열렸으면 한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사이에 놓여진 높은 벽을 허물어 버리는 작업을 시작하자. 

새해에는 숲문화, 나무문화, 목재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격의 없는 토론을 하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산에 나무도 심고 가지도 치고 쓸만한 나무 베어서 후손에게 평생을 물려줄 소품이라도 직접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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