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인류 역사상 가장 큰 획을 긋는 사건은 바로 문자의 발명이다. 중국의 한자를 받아들인 후 처음 필사(筆寫)에서 시작된 지식의 전달 방식은 대량인쇄의 필요성이 요구되었고 금속활자가 나오기 전에는 나무가 가장 손쉬운 재료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목판인쇄물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있으나 인쇄매체인 목판이 현물로 남아있는 것은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판을 위시한 불경을 새긴 경판과 조선시대 양반 가의 각종 문집판 등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일명 고려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까지 16년 간에 걸쳐 제작된 81,258여장의 목판이다. 경판은 길다란 직사각형의 글자를 새긴 판자부분과 양옆에 인쇄할 때나 보관의 편의를 위해 만든 손잡이(마구리)가 붙어있다. 손잡이를 포함한 총 길이가 68 혹은 78㎝이며 너비는 약 24㎝, 두께는 2.7∼3.3㎝의 범위이나 평균하여 약 2.8㎝, 무게는 경판의 재질에 따라 2.1∼4.4㎏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3∼3.5㎏정도이다. 경판에 사용한 목재의 총량은 약 450m3에 달한다.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약 240에서 280톤 정도로 4톤 트럭에 싣는 다면 70여대에 해당하는 양이다.

경판에는 한 면 당 글자 수가 23행 14자이므로 총 322자이고 양면을 합치면 644자가 새겨져 있는 셈이며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전체로 볼 때는 5천2백여 만 자가 되는 셈이다. 이 숫자는 공교롭게도 조선왕조 5백년 내내 쓰여진 왕조실록의 글자 수와 거의 비슷하여 규모의 엄청남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글자의 크기는 사방 1.5cm, 깊이 2mm정도로 다른 경판보다 더 깊게 파져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를 다루는 기술의 정밀성이다. 경판 한 장 한 장의 크기 편차는 길이 0.2∼0.5cm, 너비는 0.1∼0.6cm에 지나지 않는다. 두께 편차는 불과 0.03cm에 불과하다. 또 한 경판 안에서 부위에 따른 경판 두께의 편차는 1mm도 되지 않는다. 두께를 조정하는 것은 대패를 이용하는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런 편차라면 그야 말로 신의 손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런 방대한 양의 목질유물을 750여년 전에 만들었고 그것도 그냥 자르고 대패질하여 적당히 단청을 한 목조건물이 아니라 글자가 수 백자씩 새겨져 있는 판자이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은 새겨진 글자 하나 하나에 담긴 종교적인 심오함은 제외하고라도, 외형적인 방대함만으로도 세계 어느 문화재보다 위대하며 문화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충분하다.

다음은 경판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해 보자. 지금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450m3의 경판을 가공하는데 당시의 수작업 과정으로 볼 때 원목에서 경판재를 만드는 조제수율(調製收率)은 적게는 10%, 많게도 40∼50%를 넘을 수는 없다. 따라서 최대 수율로 잡아도 실제 경판을 만드는데 들어간 원목은 적어도 1000m3이상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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