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이 방대한 원목을 지금처럼 벌채하여 일정한 길이로 절단하여 하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벌채현장에서 조경판(粗經板)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켜는 탕개 톱으로 바로 판자를 켤 수 있으며 지름이 너무 큰 원목은 취급이 불편하므로 경판너비가 24cm를 기준으로 볼 때 약 40cm이상의 지름을 가진 원목이 필요하다.

수를 중심으로 한 좌우의 방사단면판재(柾木)부분은 쓸 수 없으므로 대부분의 경판재는 접선단면판재(板目)이다. 한편 원목의 지하고(枝下高)는 약 1∼2m정도로 보아 직경 40cm의 경우 통나무 한 토막에서 2장의 경판 채취가 가능하고 한 나무를 베어서 3장에서 4장 정도가 생산된다. 물론 실제로는 40cm이상의 대경목도 다수 사용되었을 것이나 운반 및 취급의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사용 통나무 개수는 10,000∼15,000본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동원된 막대한 인원과 물자는 모두 몽고와의 처절한 전쟁기간 중에 이루어졌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경판을 새겨 부처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겠다는 소극적인 지도층의 자세가 당황스럽다. 그러나 불교국가였던 고려의 가치관과 절망속에서 오직 내세밖에는 희망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오늘날의 잣대로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장경판을 만든 나무로는 ‘화목(樺木)’으로 제작되었다는 구전을 근거로 자작나무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세포형태에 의한 수종구명에서는 산벚나무가 60% 이상이고 돌배나무가 10%, 기타 후박나무, 단풍나무, 층층나무를 비롯하여 박달나무 종류로 추정되는 자작나무 속의 목재 등이 검출되었다. 물론 이 결과는 표본 수집이 가능한 300여장의 경판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대장경판 전체의 수종을 대표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우나 국보를 대상으로 한 표본 수집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가치있는 연구라 생각된다.

목재과학적인 입장에서 오늘날의 팔만대장경판의 보존 환경은 어떤가? 대부분이 접선단면 판재인 대장경판은 수축률이 커서 기본적으로 너비 굽음을 비롯한 건조결함이 생기기 쉽다. 그러나 손잡이가 경판보다 두꺼워 세워서 보관할 때 상하의 통풍이 잘 되도록 고안했으며 보관건물은 최상의 통기성을 갖도록 설계하여 현재의 상태는 매우 이상적이다.

측정된 목재함수율은 약 16%이고 반복되는 흡탈습이 750년 동안이나 이루어져 자유 수산기가 거의 없어진 상태로 보아도 좋다. 따라서 수축팽윤에 의한 경판의 손상은 주변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은 이상 당장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60년대에 마지막 인쇄를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시로 경판을 꺼내어 먹물을 발라 인쇄했는데 그 뒷처리가 엉망인가 하면 부후가 된 경판, 벌레 먹은 경판 등 보전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판의 이런 문제들이 ‘과거형’인지 아니면 ‘현재진행형’인지는 앞으로도 꾸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위대한 민족의 유산을 자손만대에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해서는 선조들의 우수한 과학성에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냉철한 시각에서 ‘보고 또 보는’대장경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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