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우리민족의 우수한 목재문화와 문화적 의미

문화란 그 사회의 자연환경이나 역사적 상황 등에 따라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우리민족도 나름대로의 독특한 목재 이용의 문화가 일찍부터 형성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온돌이다.

한반도에서는 이미 수천년 이전부터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지펴 방바닥 밑의 돌을 데워 난방을 하는 방식인 온돌 문화가 발달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이를 응용한 것으로 바닥 밑으로 온수를 단순히 순환시켜줌으로써 실내를 난방하게 되는 바닥난방식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우리 산야에 자라는 고유 수종의 목재는 솜씨 좋은 목수의 손을 거쳐 목공예용, 악기용, 건축용, 선박용, 인쇄용 등 우리 실생활에 필요한 용도로 폭넓게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종교 의식용 또는 주술적인 목적으로도 이용됐다.

일본 국보 제1호인 교토 광륭사에 있는 목조 반가사유상을 철학자 재스퍼스(Jaspers)가 보고 ‘지상에 있어 모든 시간적인 것의 속박을 초월해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청정하고 가장 원만하며 가장 평화롭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구현이다’라고 감격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 반가사유상이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불상이었고 그 조각된 목재 역시 한반도 자생의 소나무라는 것이 증명됐다. 목재의 천연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했던 우리 전통의 목공예 기법이 스며 있는 걸작품인 것이다.

한편,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에서는 매년 남근제가 열리고 있다. 4백년전 신남마을에서 시집갈 꿈을 꾸며 갯바위에서 미역을 따던 처녀가 산더미같은 성난 파도에 휩쓸려 짧은 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후 고기가 잡히지 않아 민심이 흉흉해졌고 화가 난 어부는 언덕에 올라 향나무를 보고 오줌을 싸며 분풀이를 했는데 그 뒤 어부는 엄청난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남근목을 깎아 시집 못간 처녀의 혼을 위로해 주었고 오줌 갈긴 향나무에 남근목을 주렁주렁 매단 후 신기하게도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는 또 다른 예로 비자나무 바둑판을 들 수 있는데 바둑판의 재료로는 열매를 맺어보지 못한 비자나무 암나무를 최고로 친다는데 이는 처녀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이 탄력, 바둑알 때리는 소리, 향내와 빛깔이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재 뿐만 아니라 나무의 수피 등도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흔히 우리는 결혼식을 ‘화촉을 밝힌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촛불이 있기 이전 자작나무의 수피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사용한 것에 유래한다. 자작나무류가 많은 지방에서는 이 나무로부터 기름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들 나무는 곧 밝음과 빛의 상징이었다.

신라시대 회화 작품으로 몇 안되는 귀중한 천마도는 천마총에서 발견된 것으로 말이 진흙길을 달려갈 때 말 탄 사람의 발에 진흙이 튀지 않도록 말의 배부분에 대는 장니라는 말 장신구에 그려진 그림을 말하는데 자작나무로 만들어 졌다. 또한 기마인물도는 선형(扇形)의 자작나무 수피를 8장 잇대어 만든 도너츠형의 원판에 그려진 그림이다. 국보 87호인 금관총 금관의 관모 내부에는 자작나무 껍질과 섬유가 발라져 있어 머리에 쓰기 편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한지는 닥나무의 인피섬유를 이용해 만든 종이로 품질이 우수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송나라에서는 고려지를 제일로 쳐 이를 얻어 글을 쓰는 것이 상류사회의 자랑이 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지난 86년에는 옛날 여염집에서 썼던 종이세간 100여점이 전시된 일이 있었는데 한지로 만든 옷, 신, 물통, 대야, 요강까지 있어
한지로 만들 수 없는 세간이 거의 없었다.

고구려 담징스님이 일본에 제지술을 전하고 고선지 장군이 유럽에 제지술 전파를 매개하기까지한 종이문화의 대국이요 종주국 역할을 했던 우리 민족의 우수한 종이문화는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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