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특임교수 윤영균

자작나무를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는 대신 긴 침묵을 시작한다. 곧고도 흰 이 독특한 나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시베리아의 숲으로, 빨강머리 앤이 턱을 괴고 바라보던 창문 너머 아름다운 숲으로 데려다 놓는다.
숲의 정령이 있다면 아마도 이 자작나무 숲에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자작나무의 진정한 멋은 한겨울 눈 내린 때이다. 큰 키와 흰 껍질을 가진 자작나무는 어두운 침엽수나 잎을 다 떨궈낸 참나무 숲과는 사뭇 다르다.
자작나무는 단정하고 고결한 모습으로 ‘숲의 귀족’이라고도 불리는데, 홀로 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여럿이 모여 숲을 이룰때 더 환상적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 속된 것들을 덮어버리듯 눈 내린 겨울의 자작나무 숲은 순백의 고결함과 치유의 쉼터 그 자체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어 이름 붙였다는 자작나무는 본래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수종(樹種)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백두산이나 강원도 지역에서만 볼 수 있고, 시베리아와 핀란드 같은 추운 곳에서 주로 자란다. 자작나무는 오래전부터 인류의 삶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었다.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 하얀 껍질은 종이 대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화촉(華燭)을 밝힌다’의 화촉 또한 바로 자작나무 껍질이다.
목재는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하고 벌레도 잘 생기지 않는데다 천년을 간다고 할 정도로 오래도록 변질되지 않아 건축재, 조각재로 사용되었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자작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에 있는 목판 재료 역시 자작나무라고 한다. 자작나무는 약재로도 쓰이는데, 한방에서는 백화피(白樺皮)라 하여 이뇨, 진통, 해열 등에 썼다. 뿐만 아니라 고로쇠나무와 같이 줄기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마시기도 하고,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자일리톨(xylitol) 또한 이 자작나무 추출물에서 얻은 것이다. 그야말로 나무계의 팔방미인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에 있는 자작나무 숲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곳이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 숲이다. 인제국유림관리소에서 경제림 단지 조성을 목적으로 지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총 138헥타르(㏊)에 69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고 가꿔 ‘숲 유치원’으로 개방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져 지금은 해마다 10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산림청에서도 1977년부터 2014년까지 총 42,830헥타르에 1억3,806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었다. 안타까운 것은 제대로 조성된 자작나무 숲이 아직 그 산업적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이 아름답고 재주 많은 자작나무가 산림치유와 휴양, 경관 뿐만 아니라 목재산업에도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구재, 건축재, 인테리어, 수액 채취를 통한 건강음료의 개발뿐만 아니라 생명공학기술(BT)을 응용한 자일리톨과 같은 천연추출물 등 고부가가치 연구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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