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보다는 조금은 느리지만 착실히 자신의 일과 목표를 꾸준히 맞춰 나가고 있는 소하나무공방의 박수광 대표. 그는 약 6개월간의 취목(취미목공)을 통해 목공의 매력을 알고 그동안 공부해왔던 디자인을 그만둔 채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먹고 살기 위해’라는 생각으로 영업부터 생산 관리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해왔던 그. 하지만 목공의 매력을 알아 버린 후 집 근처 지하 작업실을 계약하고 ‘목수’로의 직업을 감행했다. 남들보다는 더디지만,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 소하나무공방의 라이프를 들여다봤다.

소하와의 첫 만남
굽은다리역 인근에 위치한 소하나무공방은 서울 도심에 위치해있는 다른 목공방들처럼 지하 작업실에 자리를 잡은 도심형 목공방이다. 회색 낯선 건물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나무 간판은 목재가 가진 따스한 감성을 내비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목공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목재 자재들이 가득 쌓여 있어 목재의 향이 그득하며, 입구 초입에는 목재로 만든 강아지 조형물이 서 있어 낯선 방문객에게 친근한 인사를 먼저 건넨다.
지하 작업실 내부에는 박수광 대표가 직접 만든 목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박수광 대표는 “사람을 두지 않고 혼자 작업 하다 보니 음악감상이 유일한 취미에요. 예전에는 욕심을 부려 작업장 구석구석 마다 스피커를 둬 음악이 온 작업장에서 울려 퍼지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스피커 딱 하나만을 제대로 만들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디자인 그리고 목공
본래 디자인을 전공했던 박수광 대표는 전문대부터 대학교 편입, 그리고 대학원 과정까지 마치며, 응용미술과, 공업디자인과, 제품 디자인 등을 전공했다.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해온 만큼 디자인에 자신이 있던 그는 시간강사 등 강의를 통해 제자를 키워왔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가족 생계를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공부해왔던 디자인을 포기하고 영업직으로 한 회사에 취직한 것이다. 유명한 수입 땅콩 회사 영업직으로 입사해 대기업과 거래하며 순탄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박수광 대표가 하고 싶은 것은 결국 디자인이었다.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목공을 접하게 됐고, 처음 찾아간 목공방을 통해 하드우드를 손질하며 가구 만드는 법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 동안 하드우드를 대패질하고 망치질 했던 박수광 대표는 “이 직업을 해도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회사를 정리하고 송파에 위치한 목공방에서 직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사고에도 끄떡없는 슈퍼 대디
늦은 나이에 시작한 목공이었고, 취미로 시작한 목공이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박수광 대표는 자신 있었다. 정식으로 목공방에서 일하고 싶어 목공방을 알아볼 때도 목공방 사장들이 직원으로서 고용하기에는 박수광 대표의 나이가 많아 부담스러워 했는데, “써보고 판단해 봐라”라는 자신 있는 말로 직업으로서의 목공을 시작했다.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야하는 박수광 대표에게 주저할 것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이러한 박수광 대표의 당당한 태도는 사장과 직원으로부터 인정받게 됐고, 지금까지 목공일을 하는데 있어 큰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박수광 대표가 입사한 △△목공방은 사장 1명에 직원이 6명인 대규모의 주문제작 공방이었는데 박수광 대표는 “그동안 하드우드만을 해왔던 터라 소프트우드 자재를 많이 사용해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목공방에서 다양한 목재를 쓸 수 있어 도움이 됐다”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평일, 주말 없이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여러 가지 가구를 제작해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많았지만, 많은 사람과 공동의 작업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목공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사고를 겪게 된다.
박수광 대표는 “목공방을 돌아다니다가 사고 이야기는 많이 듣죠?”라며 자신의 손가락을 보여줬다. 반대편 손과 비교했을 때 다소 짧은 가운데 손가락이 그날을 회상하게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날이었지만 무언가 몽롱한 정신 상태가 사고를 치루게 했다. 목재의 홈을 파는 작업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손위치를 바꿔 작업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손가락에 홈이 파이면서 큰 사고가 났지만,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되면서 다행히 손가락을 크게 잃지 않았다. 하지만 3개월간 일을 쉴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부상으로 일을 할 수 없어 쉬는 기간 동안 가장 힘이 됐던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잘 일해 오던 회사를 그만뒀을 때도 첫 목공일을 시작할 때도 항상 옆에서 응원해주며 힘을 잃은 박수광 대표에게 용기와 자신감 북돋아 줬다. 또한 소하나무공방을 시작하는 데에 아이들이 큰 힘이 됐다. 박수광 대표는 “소하나무공방 운영을 가능할 수 있게 해준 부인에게 너무 고맙고, 아이들의 응원으로 더욱 힘내겠다”라고 했다.

소하의 첫 시작
소하나무공방은 작은 강이 흐르는 목공방이라는 뜻으로 보기에는 작지만, 강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목공방이 되자라는 의미로 짓게 됐다. 특히 천천히 흐르는 강처럼 더디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목공방을 그만두고 소하 목공방을 시작할 때, △△목공방에서 배웠던 경영 노하우를 활용해 목공방을 크게 키워볼 생각을 가졌다. 처음에는 DIY 교육을 통해 목공방을 운영하며 주문제작가구도 받았지만, 불규칙한 교육시간으로 주문제작가구 납기를 마칠 수 없어 1년 만에 교육을 정리했다.
그 후 주문제작 가구에만 몰두하며 다양한 가구를 제작해 선보였고 현재는 좀 더 소하나무공방 만의 작업을 특화해 어린이 가구, 놀이기구 등의 제작 등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는 ‘문호리 병아리 리버마켓’이라는 신진 마켓에 참여해 다양한 목재소품을 선보이며 소하나무공방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박수광 대표는 “항상 작업실에서만 작업하며 외부세상과의 소통이 조금은 부족했는데, 마켓에 참가하게 되면서 외부 사정을 잘 알게 됐다”라며 “학업도, 목공도 모든 것을 다른 사람보다는 더디게 시작할 때가 많아 주위 분들의 걱정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앞서 시작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소하나무공방이 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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