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이강민 교수

풍석 서유구 선생의 ‘임원경제지’는 한옥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보는 고전 중에 하나이다.
한옥의 세세한 부분을 알기 쉽게 설명한 고서들이 잘 없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건축을 파악하고 있어서 독해가 쉽기 때문이다. ‘임원경제지’는 도회지를 떠나 은거하는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을 모든 지식, 농사짓는 법부터 사냥, 사육, 요리, 건축, 예술, 공업, 의학, 예절까지 갖가지 항목을 망라하고 있는 백과사전이다. 이중에서도 한옥의 재료와 건축 방법이 소개된 곳은 전체 16지 중 ‘섬용지’ 부분이다.
‘섬용지’는 넉넉할 섬, 쓸 용자로 제목이 붙었다. 생활을 넉넉하게 하는 일용품들을 다룬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건축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건축물 자체를 다룬 부분은 1/3에 불과하고, 이어서 나무하고 물 긷는 도구, 부엌 도구, 의복과 패션 용품, 미용 도구, 실내 가구, 채색 도구 등 온갖 일상용품이 등장한다. 만약 이들을 실물로 만든다면 대형 마트나 백화점을 꽉 채울 수 있을 만큼 종류가 많고 빠진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200년 전에 건축물을 일용품의 하나로 다루었다는 점이 놀랍다.
주택을 일용품으로 바라보게 되면, 인륜과 명분의 기본단위로써 초월적이고 부담스러운 집의 의미가 한층 경감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일용품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택을 주문할 수 있다. 규모와 재료, 옵션을 하나하나 마우스로 선택하면 몇 주 후 주택이 배달되어 조립된다고 한다. 주택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은 모두 집주인이 고른 것이고, 기호에 따라 교체가 가능한 것들이다. ‘섬용지’에 등장하는 각종 기물들은 바로 이러한 옵션의 카탈로그로 보아도 무방하다.
일용품 주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건축의 모든 부분이 예측 가능한 상태로 규격화되어야 한다. 쉽게 구매하고, 쉽게 수리하고, 쉽게 교체하는 것이 가능할 때 주택은 실내가구나 미용도구처럼 일상용품이 된다. 그러려면 한옥이 크게 바뀌어야 했다. 흔한 통념과는 반대로 ‘임원경제지’에서 한옥에 대한 찬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자세한 진단과 호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풍석 서유구 선생은 박물애호가라기 보다는 혁신가였다.
200년 전, 주택을 생각했던 풍석의 세속적인 관점은 집에 둘러싼 근엄함과 허세를 제거했다. 주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의 하나로 인식하면서 오히려 견실하고 아름다운 것을 아끼는 마음이 부각되었다. 세밀하고 작은 것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문양을 음미하고 재료를 만지는 여유를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주택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 자유로운 가능성의 지평, 현실적인 대안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오히려 한옥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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