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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가구 아티스트, 양웅걸 퍼니처 스튜디오> 비보잉 춤사위처럼 공방 경계를 넘나들다
  • 최천절 기자
  • 승인 2017.07.13 14:27
  • 호수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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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보잉(B-boying)을 하던 한 청년이 우연히 공병대에 가서 목공을 배우게 됐고,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하게 됐다”. 이 한 문장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땀들. 고난이도의 동작을 멈추지 않고 연결시켜야 하는 비보잉처럼 그는 구상하고, 디자인하고, 만들어낸다. 마치 춤을 추듯이 부드럽게 말이다. 

그가 지금 서 있는 무대
도예작가와 함께 만든 ‘소반’으로 최근 해외는 물론 국내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양웅걸 목수를 만나기 위해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지하철 인덕원역에서 다소 떨어진 조용한 곳, 그의 스승과 다른 목수들의 작업 공간이 마치 작은 목공 작업촌처럼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목공일을 배운 후 취업을 했었지만, 오히려 직장 일보다 목공 관련 개인작업 의뢰가 많아지면서 스승과 상담을 하려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스승이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공간을 내어 주면서 그는 이곳에 다시 자리를 잡게 됐다. 다소 더운 날씨에도 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작업에 열중하는 목수들의 작업 소리를 들으며 기자는 그의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둥근 사각 거실장

유연한 정체성, 제작과 작품 사이
공방을 처음 시작할 때, 그는 브랜드 네임을 정해 사업으로 확장시켜 나갈지, 아니면 작가로서 방향을 잡아야할지 고민했다. 결국 작가로서 입지를 넓혀가고 싶은 마음에 ‘양웅걸’이란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공방을 시작했다. 물론 그의 이름이 다소 특이해서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는 것이 어색하다. ‘작가’ 뿐만 아니라, ‘목수’나 ‘디자이너’ 모두 그렇다. 오히려 그냥 이름을 불러주는 게 제일 편하고 듣기 좋다. 이러한 그의 유연함은 그가 주로 만드는 가구나 작품세계에도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만든 가구를 ‘작품’이라는 호칭 안에 가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재는 가구나 소품 등의 작품을 만들면서 주문제작도 하지만, 그가 원하는 목표는 본인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을 판매하는 것이라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시간과 경비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현재는 시간과 판매에 대한 부분을 계산해야 한다. 그는 현재의 위치를 중간단계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제작’과 ‘작품’ 사이에 있는 ‘제작품’ 정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스스로의 호칭을 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작업도 경계를 넘나든다.

덥석 의자
라운지 체어
덥석 차탁
소반

 

비보잉 무대에서 파리 ‘메종오브제’ 전시로
제주도에서 비보이로 활동하던 그가 어떻게 파리 ‘메종오브제’로 그 영역을 확장시켰을까. 그 시작은 바로 더 큰 무대를 꿈꾸던 비보이가 군대를 가기로 결정한 그 순간이었다. “우연히 공병대 목공병으로 차출이 됐습니다. 만드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잘됐다고 생각했죠. 주로 초소를 지으면서 즐겁게 군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역 후, 목공과 춤 사이에서 고민을 하던 그는 결국 목공을 선택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 그 때 바로 지금 인연을 맺고 있는 그의 스승, ‘나무와 사람들’의 오승섭 대표를 만났다. 3년 정도 일을 배우고 나니, 제작하는 부분은 제법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가구 전시회를 갈 때마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디자인의 한계를 느끼던 차에, 27살 조금 늦은 나이에 가구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계원예대에 입학했다. 처음엔 목공 기술 때문에 어린 학생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교수님은 그렇게 칭찬에 취해 있었던 그에게 따끔한 한 마디를 건넸다. “목공만 하지 말고 가구 디자인을 배워라”.
이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그는 학교에 있는 2년 동안 배움에 열중하며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졸업 후 그는 디자인에 눈을 떴고, 가구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열심히 개인 작업을 이어 나가던 중, 디자인 페스티벌과 공예 트렌드 페어 등에 입상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2013년과 2014년, 2년간 연속해서 ‘메종오브제’ 전시에 참여했다. 그리고 올 해도 참여하기 위해 상황을 조율중이다. 이렇게 국내외 다양한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특히 2013년도에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류벤치 세트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소반’ 협업
최근 주력했던 작업은 박선영 도예작가와 함께 한 ‘소반’이었다. 공예 영역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목공 기술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수정 보완하기 위해 협업을 선택했다. 제작 초기, 그는 완벽한 협업을 위해 경기도 이천에 직접 찾아가서 도자기를 만드는 모든 과정과 운영방식을 지켜봤다.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결과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만든 ‘청화소반’이 더 주목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주로 원형의 소반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사각형, 더 정확히는 모퉁이 끝이 각 처리 된 팔각형 모양의 ‘나주반’을 만들고 있다.

청화소반

다양한 소재를 ‘덥석’ 물며 영역 확장
그는 ‘소반’ 협업 외에도 다양한 재료와 영역에 관심이 많다. 월넛 원목을 많이 사용하지만,  특별히 소재는 잘 가리지 않는다. 예대시절 친구와 과제로 처음 만들었던 ‘덥석’ 시리즈도 그런 관심을 통해서 탄생했다. ‘덥석’이란 이름은 나무가 알루미늄을 물었다는 느낌을 표현한 것으로, 테이블과 선반으로 구성됐다. 이미 언급한 도자기와 금속 뿐만 아니라, 그는 가죽을 이용한 작업도 즐긴다. 한 작품에서, 그는 나무로 만든 다리에 가죽을 얇게 잘라서 띠처럼 엮었다. 여러 개를 만들어서 다리로 활용했는데, 이 작업도 ‘덥석’ 시리즈처럼 예대를 다니던 시절에 탄생했다. 가죽의 색상을 활용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면서 이 작업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 몇 년간 그는 계속해서 다양한 재료들을 ‘덥석’ 물며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회들을 찾았다. 올해도 10개 이상의 전시회에 참여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국내 시장이 다소 좁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눈은 현재 해외를 향해 있다. 혼자 디자인하고 만들고, 때론 협업도 하면서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는 그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스텝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비보이들은 이미 전 세계를 누비는 ‘문화 브랜드’가 됐다. 그 역시 한국의 자랑스러운 비보이들처럼, 그만의 멋진 춤사위를 가구를 통해 보여주길 바란다.

 

대표자: 양웅걸
품   목: 원목가구, 주문제작
창립일: 2012년 10월 5일
주   소: 경기도 의왕시 새터말길 10
블로그: www.woonggul.com

최천절 기자  1000ccj@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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