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부터 지금까지 목공이 한결같이 좋았다는 오세명 대표. 어떤 과정이나 배움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목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애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도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는 그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오세명 대표를 만나 그의 가구를 대하는 철학과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구공방 53 오세명 대표

고3 시절부터 시작된 목공의 꿈
“고3 시절이었습니다. 인문계 학교라, 다른 친구들은 모두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죠. 그런데 저는 기술전문학교를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일종의 위탁교육과정인데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이 가는 이미지가 있어서 친구들과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확고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교육을 받았는데, 졸업할 때쯤 담당 선생님이 제대로 해보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죠. 전 큰 고민 없이 바로 서울로 올라가 남부기술교육원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4년 정도 기술을 연마하며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했다. 그리고 2007 경기도 지방기능경기대회와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은 건 국가대표, 2009 국제 기능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올라갔지만 아쉽게 거기까지였다. 국가대표가 돼 국제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는 아쉽게 문 앞에서 좌절하고 바로 군대를 가야 했다. 그리고 제대 후 제작, 교육 공방을 거치며 6년 정도 실무 경험을 쌓았다. 

스푼

본인의 것을 찾는 과정으로 여겨
이 일을 평생 하려면 여기저기 많이 굴러 다녀야 한다는 스승의 이야기를 그는 그대로 따랐다. 그렇게 들어간 제작공방, 일이 정말 많았지만, 크게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예전에 기능경기대회 준비할 때 훈련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웬만한 작업은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체 공정을 너무 잘 이해하다보니, 그는 거의 관리자처럼 생각하고 일했다. 다른 직원들이 미워할 정도로 마인드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자기의 것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날마다 커져갔다. 꾸준히 스케치 작업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나름대로 천천히 준비를 해나갔다. 또한 공방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 또 어떤 특색과 마인드를 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정리했다. 그리고 교육공방에서 일을 그만두고 나올 때쯤, 그는 드디어 때가 왔음을 느꼈다. 오 대표는 “이전과는 기분이 좀 달랐습니다. 이번엔 다음 일터를 빨리 구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별로 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참에 힘들더라도 직접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죠”라며 달랐던 점을 짚었다. 그는 생각보다 일찍 첫 걸음을 내디뎠다. 

윈저체어

밴딩기법으로 새롭게 풀기 시작하다
“특별히 주제를 한정하고 물건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의자를 좀 제작 했었고, 최근엔 조명도 만들었는데, 계속 기존의 없던 것을 디자인해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요새 아트 퍼니처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틀이 있거든요.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했고, 그러다 선택한 것이 ‘밴딩기법’ 입니다”
밴딩기법은 해외에 비해 아직 국내에서는 잘 활용이 안되고 있는 방식이다. 이 기법은 나무를 구부려 곡선이나 자유로운 선을 나타내는 방식인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제작기법 자체도 어렵다. 그래서 할 줄 아는 사람도 얼마 없고, 설사 할 수 있다 해도 잘 안 하려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가 이런 방식을 잘 할수 있었던 것은 원목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결과도 그렇지만 그는 무엇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완성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원목을 존중하며 친구처럼 작업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제품이 원목과 자신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내가 만지고 있는 ‘목재’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최고의 파트너이자 친구인 것이다.    
 

인체어

‘흐름’과 ‘자유’를 작품에 심다  
‘플로우 라이트’는 펜던트라는 주제를 가지고 만든 작품인데, 밴딩기법으로 만든 조명가구다. 그는 먼저 ‘흐름’이란 콘셉트를 잡고 제작 과정 속에서 본인의 생각을 투영시켰다. 
“차근차근 다 알아본 후에야 실행에 옮기는 게 제 성격입니다.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을 싫어하죠. 사실 각자의 기준이 있는데, 우린 남과 비교해서 자신을 평가하게 되잖아요. 자신의 기준에 맞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는데, 타인의 기준에 좌지우지 될 때가 많죠. 남의 기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만의 흐름이 있을 때, 그게 자신에게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준다고 생각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구부릴지도 고민이었지만, 이 작품을 만들며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밴딩작업을 할 때 클램프를 많이 물려 놓고 쓰게 되는데, 그 무게 때문에 자꾸 쳐지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이런 부분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그동안 의자 등받이 같이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 꾸준히 이 기술을 연마했다. 
‘프리 체어’ 역시 밴딩기법을 활용한 작품인데, 의자 머리부터 팔걸이 그리고 앞다리까지 그 기술을 통해 유연한 흐름을 만들었다. 당시 기성가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본인의 디자인이 답답해, 그는 ‘프리’라는 이름을 작품에 붙였다. 성격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본인의 손을 거친 작품만이라도 자유로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드터닝 오브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만든 ‘인체어’ 
밴딩기법과 목선반은 물론, 다양한 목공예 오브제까지, 그가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범위는 꽤 넓은 편이다. 하지만 공방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펼칠 수 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디자인’이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인체어’다. 이 작품은 보는 위치에 따라 디자인의 변화가 크다. 그래서 한두 군데를 보고는 이 작품의 재미를 정확히 느낄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마음도 그렇잖아요. 마치 제대로 자기 속을 쳐다보는 것처럼, 이 작품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라며 특징을 설명했다. 

프리체어

경험을 공유하는 교육 그리고 순회 전시 
가구공방 53은 개인작업과 교육의 두 축으로 돌아간다. 이제 조금씩 시작한 교육이지만, 그는 궁금하다. 그가 가진 역량이 학생들을 교육할 때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영향을 줄지. 그리고 일방적인 가르침을 넘어 교육생들과 함께 정진하고자 한다. 돈을 벌기 위한 것보다 ‘내 작업’을 하고 싶어 공방을 만들었기 때문에, 함께 작업과정을 나누며 더 다양하고 좋은 경험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쌓이게 될 작품들을 모아 개인전시를 하고, 더 나아가 순회전시를 하는 게 그의 계획이다. 그냥 대충 넘어가지 않는 그이기에 이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플로우라이트

가구공방 53
공  방  명 : 가구공방 53  
대  표  자 : 오세명
품        목 : 원목 주문 제작, 목공교육 
창  립  일 : 2017년 12월 9일
주        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로51길 9 문열빌딩 지하
블  로  그 : blog.naver.com/53art_furni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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