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집 피앤케이코리아 대표는 우드 아카데미를 이끌며 목공을 하는 우드워커들에게 목재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3년차가 된 이 모임은 목우회라는 이름의 작지 않는 네트워크로 성장하며 국내 목공인들의 가치와 수준을 높이는 훌륭한 매개로 자리 잡았다. 이런 쉽지않은 프로젝트의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우드 컬렉션을 정리하며 국내에 아직 없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진행 중인 정연집 대표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종종 우연한 시기에 예기치 못한 일이 찾아온다. 서울대에서 임산공학을 전공한 정연집 대표는 목재해부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강사로 일하며 십여 년 넘게 학교에 있었다. 그러다가 페르고를 만나게 됐고, 마루업계로 뛰어들었다. 그때가 1997년이었다. 글로벌 기업인 페르고 사의 바닥재 및 강화마루 제품을 수입해 공급하며 그는 마루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된 시기는 2014년이었다. 목재해부학자로서 강단에 서며 수많은 연구수행과 후학을 양성하던 국민대학교 임산공학과 엄영근 교수가 갑작스럽게 타계한 것. 대학 선배였던 엄영근 교수는 은퇴 후 그와 함께 조그마한 연구실에서 국산재 연구 자료를 함께 검토하고 보완해 단행본으로 엮길 원했었다.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연구 결과에 대한 완성을 보지 못한 엄영근 교수는 그에게 자료와 연구 슬라이드 등을 전하며 단행본 완성을 유언으로 남겼다.

“교수님의 업적을 기리고 연구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출판을 결정했어요. 1주기에 출간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이 책에만 매달렸고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선후배들과 제자들이 함께했죠. 다행히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원했던 시기에 미디어우드에서 책이 출간 되었습니다. 삶의 가장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죠.”

양장으로 귀하게 엮어진 책에는 다양한 수종들의 목재해부학적 특성들이 한글과 영문 병기로 담겼다. 한국에서 자생하는 목본 식물과 19세기 근대 개화기와 한국 전쟁 이후에 도입된 수종을 포함한 나자식물 6과 16속 28종, 피자식물 62과 150속 266종이었다. 그는 책 출판 이후, 삶의 방향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됐다. 퇴직 이후로 미루어 둔 삶의 계획들이 앞당겨졌다. 목재 관련 블로그를 열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목재의 건조나 도장을 비롯해 자신의 전공 분야인 목재에 대한 자료 등 여러 정보들을 하나씩 정리해 올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기회 역시 우연히 찾아왔다. 블로그를 본 이들이 찾아와 강의를 요청한 것.

“우리나라에 목공을 하는 우드워커 모임이 인터넷에 있는데 카페 회원이 28만 명이예요. 엑티브 하게 움직이는 회원만 10만 명 정도죠. 목공을 하는 네트워크가 10만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거예요. 그 안에서 목공이나 목재 관련 정보를 주고받고 있는데, 아무래도 아마추어들이다 보니,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잘못된 부분도 많아요. 이곳을 통해 블로그를 찾아온 이들로부터 목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어요. 취미로 목공을 하는 사람들이 왜 공부를 하려고 할까 했죠. 그래서 5명만 모이면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재능 기부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날 바로 열 명이 훌쩍 넘는 사람이 모였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우드 아카데미는 이렇게 시작됐다. 모임을 주도한 사람은 죽산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 공간을 기꺼이 내주었다. 정확히 3년 전인 2017년 5월에 시작된 교육은 이제 시간을 거치며 체계적으로 변모했다. 강사진도 보강했고 10주 과정으로, 서울과 죽산에서 15명씩 모집한다. 교재비나 장소 등에 드는 비용 때문에 일인당 10만 원 정도의 교육비는 받고 있다. 회사를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일과 중에는 시간을 낼 수 없는데도 강의는 공고를 올리자마자 바로 마감된다.

“7주 정도는 제가 직접 목재 조직을 비롯한 다양한 목재의 성질에 대해 강의하고 목가구 디자인과  특수 건조, 목공예 제품 온라인 세일즈 분야의 전문가들이 와서 강의하죠.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1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교육 받는 게 쉬운 건 아니예요. 대부분 취미 활동으로 하고 있는 이들인데도 교육에 대한 열정은 다들 남부럽지 않아요.”

그는 수업할 때 학계에서 쓰이는 용어를 정확히 사용한다. “외국은 학술적인 용어나 업계, 우드워커가 쓰는 용어가 다 연결돼요. 하지만 우리는 업계에서 쓰이는 용어와 학계에서 쓰이는 용어가 전혀 다르죠. 저는 그 용어들이 정확하게 통일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10주로 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어려운 용어를 계속 반복하고 실제 사용하면서 익히게끔 하는 거죠. 네트워크로 묶여 있을 때는 그런 용어가 쉽게 통용될 수 있거든요. 정확하고 전문적인 용어들이 실제로 자주 쓰이게 되면서 전체적으로도 수준이 오르는 거고요. 목재 산업은 급격히 바뀌고 있어요. 산업 외의 공간에서 더 크게 발현되고 있죠.”

그는 목공예를 하는 교육생들과 함께 하는 작은 전시회를 꿈꾸고, 수업이 안정되면 워크샵 진행도 계획 중이다. 규모가 커지고 교육이 계속되면서 상설화시킬 수 있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의미 부여를 하며 지속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목우회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요. 돈벌이가 되는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매진하냐고. 하지만 저는 저의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됐다고 생각해요. 내 업을 퇴직한 후 하려고 했던 일을, 저는 생각보다 조금 더 일찍, 우연히 하게 됐어요. 60대, 70대가 돼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즐겁게 나무를 만질 수 있을 테니 얼마나 행복한가요. 저는 교학상장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스승은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말이죠. 목공을 배우는 사람들은 정말 남녀노소 가리지 않아요. 정년퇴직 하신 분들부터 중고등학생, 대기업 직원, 의사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목공 공부를 하고 싶어 하죠. 이 네트워크가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는 재감용 우드를 모으는 작업도 한참 진행하고 있다. 8*15센티 크기의 각기 다른 결을 가진 나무들은 그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그는 이를 모아 미국에 있는 우드 데이터베이스 닷컴의 우리나라 버전 사이트를 만드는 것을 계획 중이다. 목재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DB다.

“미국은 500여종 정도를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는 목재시장이 그리 크지 않아 250종 정도면 웬만한 목재 정보는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외국에 있는 우드 콜렉트 소사이어티 모임에서 컬렉션 개념으로 나무를 서로 교환하고 있는데, 제가 가진 것들과 교환을 하며 모으고 있죠. 비싸고 희귀한 목재일수록 가짜가 많아요. 특수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와 유사한 목재일 뿐인 거죠. 전 구매하는 사람들이 속지 않고 정확하게 알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쩌면 세일즈를 하는 이들에게는 제 존재가 그리 탐탁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파는 사람들도 속여서 판다기보다 그게 가짜인지 모르고 파는 경우가 많아요. 다만 판매하는 사람 중에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으니 그건 분명하게 걸러내야 하는 거고요.”

목공인들을 교육하고 우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꿈꾸며 자신이 지닌 전문적인 목재 지식을 세상과 나누고 있는 정연집 대표. 향후 그가 이끄는 이 네트워크의 힘은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게 될까. 아직은 미약해 보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며 더욱 성장하게 될 이 소중한 행보를 기대해 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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