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반 합판용재로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목재로 맥주상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30년동안 목재기업을 운영해온 김태규 사장은 철도침목과 바닥재를 관납하는 전문업체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육십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기업활동으로 노련함을 과시하고 있는 김태규 사장을 만났다.

 

Image_View맥주회사에 근무한 것이 창업의 계기라던데
학교를 졸업하고 두산 오비맥주에 근무했었다. 자재를 맡고 있었는데 맥주회사의 자재 구매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맥주병과 상자였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플라스틱 상자가 아닌 목상자였다. 맥주상자라면 하찮은 것으로 보이지만 괜찮은 아이템이라 생각됐다. 당시 작은아버지가 부산에서 제재소를 하고 계셨는데 이 아이템을 권유하고 오비맥주와 단독 공급 계약을 맺고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처리가 곤란했던 합판용재 자투리를 이용한 상자개발로 자재비도 줄이고 급기야는 나도 같이 사업에 참여하게 될 만큼 급성장을 거듭했다.
Image_View서울로 올라와 독립회사를 설립한 것이 72년이다. 대성목재의 합판 잔재로 목상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목재업계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품목변화는 어떻게
목상자가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 품목변화가 필요했다. 건축내장재로 전환하면서 원목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현지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해외에 자주 나갔다. 지금도 직접 출장을 나가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90년초반까지 내장재를 주로하다가 91년부터 또한번의 품목변화를 하게 됐는데 당시 건설회사의 도산으로 회사또한 불안해지자 안정된 관급을 선택했다. 철도침목을 주아이템으로 학교의 교실 바닥재를 병행하면서 조달청과 철도청에 납품하고 있으며 팔레트도 제작하고 있다.


내실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제 30년의 역사를 갖게 됐다. 철도침목과 교실바닥재 생산업체로는 가장 많은 양을 납품하고 있으며 인천 서구 오류동에 있는 제 2공장인 방부·방충처리 공장의 규모도 동종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현재 34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내실을 가장 중요시 하기 때문에 무리한 확장은 하지 않는다. 직원 모두가 안정되게 일할 수 있는 회사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30년을 경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재무구조의 악화이다. 회사 자체의 경영상 문제점이 아닌 외부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93년이 가장 힘든 해였다. 불량채권의 발생으로 1년동안 40억의 부도를 맞았는데 받은 어음중 반이상이 부도가 날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사재를 털어 회사를 살려놨지만 그 때의 힘든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엠에프때는 환차손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 당시 모든 업체들이 그런 고생을 했지만 달러당 800원대에 사온 물건의 결제를 2000원 가까이 결제하는 고초를 겪었다.


현 품목변화의 필요성은
처음 철도침목을 시작하던 10년전만 해도 철도침목은 무조건 목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콘크리트 침목이 70%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30%가 목침목이다. 하지만 반드시 목침목을 사용해야 하는 교량이나 분기침목, 이음매 침목등의 꾸준한 물량이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단 1차 가공해서 납품하는 품목이기 때문에 원가절감이 관건이다.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소득수준과 정비례하는 조경, 목조주택 등은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에 조경쪽의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제 2 공장에서 방부·방충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완제품 생산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목재업계의 선배로서 현 업계의 폐단을 지적한다면
Image_View목재업계의 폐단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다. 공급과잉으로 물건을 팔지 못하니까 수요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