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미국에 건너가 최고의 마루전문가가 되기까지 그의 노력은 무모하기까지 했다.
영어한마디 못하면서 중고차 하나 끌고 길도 모르는 미국 대륙을 보름동안 횡단하면서 그가 꾼 꿈은 최고가 되겠다는 것.
그가 터득한 미국의 선진 마루기술을 국내에 보급하기 위해 전사로 입국한 피터 염 그가 들려주는 마루이야기.

 

Image_View미국에 건너가게 된 계기
미국 이민바람이 한참 불던 84년, 미국에 혼자서 이민을 갔다. 비자가 잘 안나오던 시절이었는데 20대 초반의 미혼남이었던 내 이민비자가 그렇게 빨리 나온 이유를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아마 내 운명이 그랬던 것 같다.
컴퓨터를 공부하려고 바다를 건너갔지만 빈손으로 도착한 미국은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급한 곳이었다.


미국생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영어도 못하고 길도 모르고 돈도 없고 자동차보험은커녕 운전면허증도 없이 달랑 중고차 한 대를 사서 미국대륙을 횡단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우고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긴 트레일러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어찌나 낭만적으로 보이던지 난 그 모습을 보면서 직업을 선택해버렸다. 트레일러 기사가 되어 다시 한번 미국대륙을 횡단하겠다고….
대륙을 횡단하면서 있었던 일이나 만난 사람들을 매일 일기에 기록했다. 텍사스를 통과하면서 길을 잃었을 때 일이다. 몇 시간을 헤매다가 한 농가를 찾았는데 집주인은 의사소통도 안되는 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자기 차로 3시간을 같이 달려 나를 안내해주고 돌아갔다. 얼마나 고맙던지 지금도 그때 일은 잊을 수가 없다. 꼬박 보름을 걸려 나의 대륙횡단기는 끝이 났다.


영어 때문에 고생한 일은
당장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은 정말 치명적인 일이었다. 다행히 난 한국사람들이 많이 없는 버지니아주에 있었기 때문에 빨리 배울 수 있었다. 틀리는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항상 혀를 구부리거나, 내놓고 다녔다.
한국사람들이 어렵다는 TH와 R발음을 위해서 였다.


마루전문가가 되게 된 동기는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취직한 곳이 플로링 회사였다. 우습지만 나의 직업은 파트타임으로 일한 그곳에 취직하면서 결정됐다. 그 회사에서 플로링을 가르치는 학교에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마루업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나에게 마루시장의 전망을 말해주며 동양사람은 아직 없으니까 한번 도전해보라며 학교를 소개해줬다. 그의 조언으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많은 학교를 수료한 것으로 아는데
이왕 시작했으니까 미국 최고가 되자는 결심아래 학교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스포츠마루의 기본처럼 굳어진 100년 전통의 MFMA(단풍나무 바닥재 생산자 협회)의 플로링학교를 비롯해 미국 내 9개주에 있는 12개 관련학교를 모두 수료했다.
10년동안 공부하면서 한국사람은커녕 동양사람이라곤 중국사람을 단 한명 만난 것이 전부이다. MFMA의 회원은 아시아에서 내가 유일하다.
한국의 업체가 MFMA의 회원이 되려면 나에게 교육을 받아야 가능하다.


미국의 마루시장은 어떠한가
미국은 원래 마루문화이다. 하지만 카펫문화가 시작되면서 마루바닥재는 주춤했으나 96년을 기점으로 계속 성장세를 보이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의 마루바닥재는 한국의 합판마루와는 다르다. 마루의 가격이 윗 표면을 몇번 깎아내어 재사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얇은 무늬목을 붙여 한번만 쓰고 철거하는 한국의 합판마루와는 전혀 다른 문화이다. 한번 쓰고 뜯어내면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생각해야 한다. 오래되면 무조건 철거한다는 개념은 바뀔 필요가 있다.


한국시장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pro&tech라는 마루 시공회사를 운영하면서 한국인 체육관 마루 시공기술자를 만난 일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한국에 언제가는 돌아가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건망지지만 의무감 같은 것들이 생겼다. 내가 알고 있는 선진기술을 보급해야겠다는….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국민대 엄영근 교수의 웹사이트를 찾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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