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모두에게 깊이 각인돼 있고, 지금도 누구나 두려워하고 있는 외환외기 때도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사람이 있다. 물론 그런 일들이 다 지난 후인 지금에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찌됐던 하윤규 사장의 아이엠에프는 남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목재를 접한지 삼십년이 넘는 그의 인생역경과 경영철학을 들어보았다.

 

Image_View목재관련 사업이 운명처럼
하사장의 처음 진로는 목재쪽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장학금을 받으며 들어간 곳은 지금은 ‘경상대학교’인 진주농대 임학과였다. 졸업 후 고향서 멀지않은 중학교에서 교직에 몸을 담은 적도 있었으나 이 또한 제 갈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학문의 길로 들어섰으나 점점 가슴속에 더해만가는 생각은 산업현장에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 뿐 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이 ‘삼익악기’였다. 그후로 13년간을 줄곧 정신없이 뛰어다녔으니 바로 그곳이 하윤규사장의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삼익악기란 곳에서 일을 하다보니 제가 얼마나 ‘조직사회’라는 것에서 활력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았지요. 정말 열심히 일했던 때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즐겁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업은 정도경영으로 해야만 한다
그가 삼익악기에서 13년간 몸담은 곳을 떠나게 될 때는 2세 경영체제로 바뀌는 과도기가 계기가 되었다. 후임 회장은 경영진의 개편을 필요로 했고, 그간 전임 회장과의 신뢰와 믿음이 없는 곳은 이미 예전의 그가 몸담았던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후 잠시 맡았던 대신목재의 대표이사자리도 역시 정도만을 바라보고 가기에는 주변의 친인척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당시 대신목재의 사주는 좋은 분이었습니다. 허나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아쉬움을 가진 채 그곳을 정리했었죠.”
그렇게 2년간의 사장직을 뒤로하고 올바른 사업을 한번 해보겠다며 92년 그 해가 다가기 전에 ‘상신목재’의 간판을 올렸다.
그 후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들이 있었지만 그는 단 한번도 은행이자날짜와 직원들의 급여를 지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 업체와 주변에 믿음이 있었기에 닥쳐올 위기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사업의 운은 처음부터 급성장으로
“사업을 시작한 후로 정말 탄탄대로 였습니다.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주셨고 처음 시작한 가구재의 해외 가공 수입이 꽤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시 그는 직원들에게 늘 우리제품을 쓰고있는 상대방입장에서 물건을 생각하고 지시해서 수입하라는 원칙이 있었다. 그것이 ‘정도경영’의 기본이고 기업이 오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바탕이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은 곧 회사의 성장과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꾸준히 성장하던 ‘상신’에도 위기가 오고 있었다.
아이엠에프를 맞기 일년 전부터 무수히 많은 업체들의 부도행진이 시작한 것이었다. 대형 메이저 업체는 물론이고 한달에도 몇 건씩 부도수표를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일년간 쌓인 적자액이 이미 십억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위기의 해결은 ‘정면돌파’ 뿐
그렇게 이미 적자경영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갑작스런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다. 4억5천만원에 발주한 물건이 결재하려 할 때는 이미 9억이 넘어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 버텨가며 수입한 물건들은 환차손이 20억원을 넘었다.
“당시에는 아침에 아무런 생각도 할수없이 출근했다가 다시 멍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저 농약을 마신 죽억가는 물고기같은 느낌이었습니다.”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짐작이 갔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가 쌓여 있는 사채와 은행빚을 생각하던중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식구들에게 다짐을 하고 집도팔고 차도팔고 사무실도 산업유통센타의 월세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다짐을 할 때, 그가 생각한 것은 환차손이 있으면 반드시 환차익이 올 때도 있을 것이란 확신과 당시의 수입물량을 볼 때 머잖아 품귀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종합상사가 줄이어 목재수입을 정리하던 때에, 외환위기로 이미 빚더미에 앉은 그 때부터 그는 ‘봉이 김선달’과 같은 승부수를 던졌다. 여러 종합상사의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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