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운영하던 산판과 제재소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
내고 문틀공장부터 가구제작 그리고 보드류와 표면재 대리점에서 독자 브랜드인 "미다지"를 만들기까지…
민우의 김동일 사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왔다.

 

Image_View태어날 때부터 톱밥 냄새를 맡고 자란 사람
강원도 화천 어느 산자락, 목재의 벌채가 한창이던 산판에서 김동일 사장의 유년시절 기억이 시작된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려하면 톱밥 냄새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그와 목재는 무관하지 않았다.
당시 강원도에서 아버지가 산판을 운영했기에 자연스레 나무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데…
그의 산판에서의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65년 가족 전체가 서울 응암동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재에 대한 그의 기억은 계속 이어진다.
아버지는 서울 응암동에 제재소를 세웠고 김 사장 형제들이 목재업에 종사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3형제가 모두 목재일에 종사하고 있으니 이제는 가업이 된 셈이다.


교사의 꿈을 접고 목재업계에 입문
그가 목재일에 직접 뛰어들 게 된 것은 아마 대학을 채 졸업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형과 제가 가업을 잇게 됐습니다. 다른 일이 하고 싶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일에 만족합니다."
사실 그의 꿈은 중고등학교의 교사였다. 김사장은 우스겟소리로 1년에 가장 쉬는 날이 많은 직업이 교사라며 자신의 꿈을 정한 이유를 말하지만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었다며 사뭇 진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홀로 인천으로
한동안 아버지가 일궈온 응암동의 제재소에서 형과 함께 일했던 그는 89년 비로소 독립을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결심에 따라 연고도 없던 인천에 첫발을 디뎠다.
처음 인천에 와서는 문틀공장을 세웠다. 그러다가 동화기업대리점 간판을 내걸게 됐다.
이후 LG화학의 비닐시트 대리점을 병행하게 되면서 MDF와 비닐시트를 오바레이해 판매하기도 했다.


신제품 개발 창고
지금의 민우는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다. 일단 중간재가 아닌 소비재 중심으로 생산품목이 바뀌었다. 도어, 문틀, 등박스, 몰딩, 아트월, 인디판넬 등 다양한 래핑 제품을 구비하고 "미다지"라는 독자브랜드까지 갖췄으니 말이다.
거기에는 김사장의 노력이 무엇보다 컸다. 민우에서 제작되는 신제품의 대부분이 그의 머릿 속에서 나오고 있단다. 그는 새로운 일에 몰두하고 새로운 제품을 구상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최근 출시한 다양한 벽면공간 연출과 수납공간을 해결할 수 있는 인디판넬도 그의 창작품이다. 시공이 간편한 인디판넬은 반나절에서 하루면 공사를 완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앞으로 그는 1주일 안에 리모델링 공사를 완료할 수 있는 자재들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표면재, 나무결 대중화 일등공신
남들은 비닐시트를 래핑하는 것을 목재가 아니라고 등한시할지 몰라도 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갈수록 좋은 목재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자재수급도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국민의 생활수준은 높아지고 있어 목재 내장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죠. 그러나 원목으로 제작된 제품은 서민들에게는 가격적으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좀더 대중적으로 목재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비닐시트나 페이퍼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파트가 들어서면 마루가 시공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만큼 목재 바닥재가 대중화됐다는 얘기다. 김사장은 목재 바닥재가 부각되기 시작한 원인을 원목무늬 PVC바닥재에서 찾는다. PVC 바닥재업체들이 앞다퉈 나무결이 프린트된 바닥재를 출시한 것이 좀더 원래 나무에 가까운 것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합판마루나 강화마루로 대체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목재산업 투명성 재고해야
오랜기간 목재산업에 종사한 김동일 사장은 그간의 목재산업의 발전을 높이사고는 있지만 아직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전에 4.5㎝ 각의 제재목은 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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