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통나무 건축물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인 80년대 말 캐나다 앨런 매키 통나무건축학교에서 통나무 건축과정을 수료한 유재완 교장은 당시에 함께 교육을 받았던 이들에게 한국의 앨런 매키가 되겠다며 국내 통나무주택 교육에 앞장 설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95년, 8년만에 우림 통나무 건축학교를 설립하면서 그 약속을 지켰다.
우림통나무 건축학교 유재완 교장의 통나무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mage_View통나무건축학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74년부터 82년까지 9년정도 목재사업을 하면서 항상 건축가가 되고자하는 꿈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중 82년 대학 후배의 소개로 서울에 방문한 웰트 머리(Walt Murray)라는 캐나다 통나무 건축업자를 만나게 됐다. 당시 건축과 목재에 상당부분 경력을 갖추었고 영어가 능통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통나무 건축분야에 뛰어들 수 있었다.
통나무 건축학교에 대한 꿈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87년 현대 통나무 건축의 아버지인 앨런 매키(B. Allan Mackie)선생의 통나무 건축학교에 다니면서다. 당시 학교에 입학해 첫 수업에서 자기소개를 하게 됐는데 그때 나는 "한국의 앨런 매키가 되고 싶다"고 감히 말했고 이것이 지금의 우림 통나무 건축학교을 설계하는 첫 걸음이 됐다.
앨런 매키 통나무학교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노동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으면서 귀국하면 젊은이들에게 내가 발견한 노동의 고귀함을 일깨워 주겠다고 다짐했다. 95년 경기도 포천에 터를 매입해 우림목재의 공장을 이전하고 그해 10월 통나무 건축학교를 개교했다.

앨런 매키 통나무 건축학교에 동양인학생은 얼마나 있었는지.
앨런 매키 통나무 건축학교 수료생 중 최초이자 마지막 한국인이 바로 나다. 이미 일본인들은 여러 명이 그 학교를 수료했고 입학당시 4명의 일본인 동기생이 있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학생이 된 것은 매키선생님이 은퇴한 후 얼마지나지 않아 학교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현재 앨런 매키 통나무 건축학교는 일본인이 명의를 인수해 밴쿠버섬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당시의 정통성이나 역사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수공식 통나무 건축업자들의 대부분이 앨런 매키 통나무 건축학교의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 곳에서 통나무 건축과정을 수료한 것이 자랑스럽다.


우림 통나무 건축학교 개교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
지난 8년간 우림 통나무 건축학교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교육시설이나 환경뿐만 아니라 기술의 변화에 민감히 대처해 교육내용을 확충해왔다.
초창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의 우림은 외국의 통나무 건축학교와 비교해도 우수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수료생들의 구성비와 취업실태는.
교육생들은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손수 자기 집을 짓고자하는 건축주이고 둘째는 통나무건축기술자가 되고자하는 이들이다. 셋째 통나무 건축 기술을 배워 기술자에서 의뢰해 통나무 주택을 제대로 짓고 살고자 하는 경우이다.
국내에 통나무 건축 관련 학교가 많지 않다보니 수도권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찾아온다. 이들이 수료 후 전국적으로 흩어져 자신이 살 주택을 짓거나 기술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때 직업을 잃고 새로운 직업을 찾고자 학교를 찾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 중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수료생들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통나무 건축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통나무 건축 기술자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90년대까지 외국에서 수입됐던 통나무 건축물을 이제 우리 손으로 짓게 돼 수입억제로 인한 외화절약에도 기여하고 있으니 통나무 건축 기술자야말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간혹 직업적인 전망을 묻는 이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매우 전망이 밝다"고 말한다. 진정한 노동의 즐거움과 보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라면 통나무 건축이라는 직업은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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