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나무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보유자 최기영님

기억력과 눈썰미, 손재수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목장 최기영.
열일곱에 나무를 만지기 시작해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사원건축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기까지의 고생을 헤아릴 수 있으랴만은 작년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보유자로 선정되어 그간의 고생을 인정받았다.

 

톱밥이 날리는 문 안을 들여다보니 옛 사찰들의 모형들이 보인다. 언뜻 봐서도 정교해 보이는 모습이 심상치 않은데 모형치고는 크기도 꽤 큰 듯하다. 무얼 저렇게 열심히 만들고 있는 것일까?
“대목은 개인전이 힘들잖아요. 규모가 크니까. 그래서 실제 모습을 그대로 축소해서 정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조만간 개인전을 갖게 될 겁니다. 이 작품들 여기서 나가려면 벽을 터야겠네요.”
건축만큼 아름다운 예술도 없다. 더군다나 사찰건축만을 40년동안 해온 장인의 보여주고 싶은 욕망은 누구못지 않게 강렬할 것이다.


목숨같은 여겨온 대목장의 길
경기도 퇴계원에 자리잡은 그의 작업실은 큰 나무를 상대해야 하는 만큼 웬만한 공장하나 크기는 되어 보인다. 마당에 즐비한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목재들이 제멋을 뽐내는 듯 싶다. 누군가가 고생을 알아주면 그나마 속내가 편해지는 모양인지 작년 무형문화재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된 후의 그의 얼굴이 밝아보인다.
60년대 초반이었던 열일곱에 당시 수덕사 대웅전 해체 및 복원공사로 활약하던 김덕희 선생 문하에 입문한 이래 9년동안 스승의 사사를 받고 69년 독립하여 내장사 명부전 신축공사에 참여하게 됐다. 그후로 지금까지 오직 사찰건축에만 힘을 쏟아 크고 작은 신축, 복원이 120여군데나 되고 현재는 강화 삼선면의 고려왕건태조왕궁터의 복원과 파주 통일동산에 신축되는 통일대전를 짓고 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돈벌이에 나섰는데 사실 배가 고파서였지 전통계승이고 문화재로 이런 건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다보니 이것처럼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이 없더라구. 난 복을 받은 건지, 요즘 아이들은 적성 찾느라 고민한다는데 난 단번에 평생 목숨같은 직업을 얻게 되었어요. 단 한번도 딴 일을 해보지 않았을 만큼 쉼없이 일을 해왔네요.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과 함께 주말도 없이 보냈습니다.”
그가 일년에 쉬는 날은 열흘이 넘지 않는단다. 설과 추석명절외에는 쉬는 날이 없다. 이런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주일에 사나흘은 조깅으로 체력을 단련한다는데 역시 체력에는 장사는 없는 듯하다.


편안하고 흐뭇한 소나무의 매력
대목장이지만 사찰건축의 특징상 설계에서부터 소목, 조각에 이르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호도 직접 짠다.
그가 스승으로 부터 전수받은 米국화문은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 그가 유일하다고 한다. 문살이 네개가 겹쳐지면서 그 위에 조각하게 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건축의 설계에서부터 구조계산까지 가능한 사람도 그가 유일하다고 한다.
무엇에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그 어려운 건축설계를 독학으로 공부할 때는 얼마나 지독하게 매달렸겠어요. 누구에게도 배워본 일이 없습니다. 혼자서 책보고 공부했지요.”

최근 그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소나무의 송진이다. 우리의 소나무가 오랜 세월 보전될 수 있는 것은 송진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따라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송진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하는데….
우리 소나무는 송진이 겉쪽에 있어서 외부의 습기를 차단해주지만 외송은 그렇지 못해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간다는 것이다. 우리 소나무의 우수성을 학문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사비를 들여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이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책으로 엮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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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0만원짜리 국내산 소나무. 벌목해서 운반하기가지 엄청난 경비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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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의 200년, 100년된 나무들을 모아놓았다



나무는 쓸 곳에 제대로 써야
“적어도 장인이라면 각각의 수종을 파악해서 적당한 곳에 알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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