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나무를 꿰뚫어보는 목수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소목장 보유자 방대근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목수가 된지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스승이 무서워 서울로 도망을 치기도 했지만 목수가 되겠다는 일념은 한번도 변치 않았다는 그. 결국 엄하고 정 많은 스승이 서울로 찾아와 도피행각은 수포로 돌아갔다는데…….
나무를 꿰뚫어 보는 사람만이 목수가 될 수 있다는 소목장 방대근의 나무와 함께 하는 삶을 엿보자.

 

Image_View아버지가 열어준 소목장 인생
9남매 중 차남이 있었다. 만드는 것을 좋아해 연을 날리기 위한 얼레, 썰매 등을 곧잘 만들곤 했던 아이의 재능을 살려주기로 마음먹은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을 만들어 주게 됐다.
전북 진안군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방대근의 아버지는 당시 경찰이었다. 작고한 권세병 스승과 아버지는 전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아들의 재능을 눈여겨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목수수업을 받도록 했다.
그렇게 방대근 소목장의 나무와의 인연은 시작됐는데…….


 

수포로 돌아간 도피행각
Image_View스승인 권세병씨는 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사람 손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오차가 날 법도 한데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오차가 생기는 작품은 과감히 톱질을 해 버리고 작업시 연장을 분실하면 연장을 찾을 때까지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스승이 무서워 한번은 서울로 도망을 쳤는데 직접 서울까지 제자를 찾으러 올라온 스승 때문에 오늘의 그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월정이라는 그의 호는 스승이 직접 선사했는데 달밤에 정자에 앉아 마음을 다스려 작품활동에 매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단다. 제자에 대한 유별나고도 각별한 사랑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쓸수록 빛나는 전통가구의 멋
Image_View그는 전통가구가 서양의 것과 다른 ‘무엇’을 이렇게 정의한다. “전통가구는 서양가구와 달리 쓸수록 귀중품이 됩니다. MDF로 만든 서양가구가 결국 쓰레기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얘깁니다.”
전통가구는 못질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판재끼리 짜맞추고 꼭 못이 필요한 경우에는 가느다란 대나무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전통가구에는 괴목(느티나무), 참죽나무, 돌배나무, 먹감나무, 오동나무 등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는 특히 괴목과 돌배나무를 좋아한다. 괴목은 단단하고 치밀한 무늬가 맘에 들고 돌배나무는 선명하고 간결한 색상이 좋다.
전통가구는 크게 안방가구, 사랑방가구, 부엌가구로 나뉘는데 안방가구는 여자가구, 사랑방가구는 남자가구로도 불린다. 예전에는 혼수 1호가 의걸이장이었는데 요즘에는 추세가 많이 바뀌고 있다.


아이들 밥까지 굶겨가며 이어온 ‘전통’
Image_View한창 가구를 만들던 70년대에는 비키니 옷장이 특수를 누렸다. 이전까지 혼수로 많이 쓰이던 전통가구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고 대형가구업체의 등장으로 어려운 상황은 계속됐다.
게다가 가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나무를 구하는 일또한 쉽지 않았다. 최하 150년 이상 된 나무를 사용해야 하는데 오래된 나무들은 대부분 보호수로 지정돼 있어 수몰지역이나 고사한 나무를 가져다 쓴다.
어쩌다 나무를 구해도 전쟁 때 탄피가 박힌 채 자란 경우는 제재할 때 탄피가 튀기 때문에 제재소에서 제재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전통가구 제작이 크게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예전에는 끼니꺼리가 없어 1주일간 라면만 먹기도 했다.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줄 수 없던 아버지는 그때가 가장 가슴아팠다고 토로한다.
어렵사리 전통의 맥을 이어온 그의 인생에 대한 보상이랄까? 99년 그에게 소목장이란 호칭이 내려지게 됐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이일을 배우려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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