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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사라지는 궁중악기 와공후는 13줄이 울림통 위에 비스듬히 매여 있다. 울림통은 다른 악기와 달리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운 느티나무로 만들었으며 줄은 명주실이다.목이 굽은 모양이 봉황의 형상과 같다고 하여 봉수공후라 부르기도 하고, 고구려 악에 이 악기가 사용됐고 그 뒤로는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연재 국립국악원에 보관돼 있는 와공후는 1937년 북경에서 사들인 것으로 연주법도 전하지 않는다고 하며 공후는 하프(Harp)의 총칭으로 3종으로 구분한다. 모양에 따라 제 1종에 속하는 수공후, 제 2종에 속하는 와공후, 제 3종에 속하는 대공후, 소공후로 나눈다. 향비파는 거문고, 가야금과 함께 신라삼현(新羅三絃)에 들며, 고구려의 오현(五絃)과 같은 악기이고 곧은 목으로 돼 있어 직경비파(直徑琵琶)라고도 한다.거문고와 같이 앞면은 오동나무, 뒷면은 밤나무를 사용하며 명주실을 5현으로 쓰고 울림통 위에 10개의 괘에 걸쳐져 있다.연주법은 가슴에 비파를 안은 다음 왼손으로 목 밑을 쥐어 손가락으로 괘를 짚고, 오른손으로 술대를 잡고 타는데, 조선 후기부터는 술대 없이 손가락으로 타기 시작했다. 삼국시대로부터 구한말까지 향악에 사용됐으며 각종 노래와 춤의 반주악기로 사용됐다. 1930년대까지 사용되다가 음량이 작고, 음정이 불안정해 그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월금은 공명통이 달 모양으로 둥글다고 해서 월명이라고 이름이 지어진 것 유래되며 가늘고 긴 목을 달고 13개의 주(柱)를 붙여 자현(子絃) ?중현(中絃) ?대현(大絃) ?무현(武絃)의 네 줄을 맸다. 본래 중국의 악기로 한국에서는 고구려고분 벽화에 그 모습이 보이며, 조선시대의 악학궤범에 향악에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악기만 보존돼 있다. 소를 봉소(鳳簫)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순제(舜帝) 때부터 사용했다고 하며, 한국에는 1114년(고려 예종 9) 안직승(安稷承)이 송나라에서 돌아올 때 들여왔다는 기록이 있다.약 4세기경에 영조 된 것으로 보이는 안악 제3호 분의 벽화나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소의 그림이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소는 16개의 관(管)을 가졌으나 원래는 12관?24관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소의 구조는 해죽(海竹)으로 만든 16개의 가는 나무 관을 나무틀에 꽂고, 관의 벌집 밀로 봉한 다음 관대마다 취구(吹口)를 마련했으며, 관의 길이는 양쪽 끝이 가장 길며 가운데로 갈수록 점차 짧아지고 있어 봉황의 날개를 닮았고 봉황무늬가 그려져 있다.사용법은 틀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 낮은 음이 오른쪽으로 놓이게 하며 음률에 따라 입김을 불어넣는다. 글쓴이 : 권태원 북부지방산림관리청 홍천국유림관리소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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