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중동붐이 일기 시작하려는 무렵 금호실업에 근무하는 정기택씨(서울대 농대 출신, 현재 양평에서 농장경영)가 당시 대성목재에 근무하던 필자를 찾아왔다.

사연인즉 이란에서 철도침목 100만개의 주문이 들어 왔는데 이를 아피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합판 100만장 ~ 200만장은 식은 죽 먹기로 수출할 때 이었으므로 철도침목 100만개 쯤이야하고 얼마만한 양인가 계산을 해 보았다.

그러나 철도침목 100만개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철도침목 100만개를 생산하려면 아피통 6천㎥을 매월 1척씩 1년동안 수입해서 제재해야만 되는 물량이었다.

당시 공신목재가 철도침목 전문생산업체이었지만, 이러한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공장이 못되었고, 우리나라에 있는 큰 제재소를 풀가동해도 될까 말까한 물량이었다.

더구나 아피통 수입가격이 달마다 변할 것이기 때문에 이란측과 미리 가격협상에 나선다는 것은 모험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금호실업의 정기택 씨는 이러한 상황 설명을 듣고는 이란으로 철도침목 수출은 포기하고 말았다.

또하나, 당시 대성목재 수출과장 문공훈씨(서울대 상대 출신)는 이라크에서 멩쿨랑으로 합판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 30만장을 받았다.

멩쿨랑을 하프로타리 방식으로 절삭해서 합판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멩쿨랑은 엇결이 심해 합판재로 사용하지 못할 때이었는데 하프로타리 방식으로 절삭하니 엇결도 일어나지 않고 깎여진 단면은 마치 마호가니를 절삭한 단면같이 아름다웠다.

이라크 사람들은 이 멩쿨랑 합판을 수입해서 관을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했다.

사실 중동붐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장관 회의가 촉진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초 어느날,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해 일어난 오일쇼크로 모든 기업들이 힘들어 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경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경제각료와 경제단체들을 불러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때 중동에서 외교관을 지낸 한 보좌관이 뒷좌석에 있다가 ‘지금 오일달러가 중동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동을 공략해야 합니다’고 발언을 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래요,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중동을 공략할 지 연구하도록 하세요’

이때 대통령보다도 이 말을 귀담아 들은 사람은 현대의 정주영 회장과 동아의 최원석 회장, 두산의 박용성 회장이었다.

그들은 각기 자기회사에 돌아오자 마자 간부들을 불러 회의를 주재하고, 중동진출을 지시하였다.

오일쇼크로 빚어진 회사의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고 있던 그들에게는 이처럼 반가운 아이디어가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당시 두산의 주재원으로 사우디에 파견되었던 유삼태씨(서울대 상대출신, 삼포만두 대표이사)의 말이다.

“당시 사우디에 처음 입국할때는 입국카드의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썼었으나 두번째 입국할때는 모슴렘이라고 쓴 일이 있었지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어쩐지 불리할 것 같아 사이비 모슬렘 노릇을 한 셈이지요. 외국인이 종교란에 모슬렘이라고 쓴 것을 보면 입국장소에서 한곳으로 불러서 모슬렘 경전을 외어보라고 했어요. 사이비 모슬렘 노릇을 하기위해 간단한 경전을 외우고 다녔지요.”

중동붐은 1977년부터 일기 시작했지만, 1974년부터 그들은 중동지역에 주재원을 파견해서 기초를 닦고 있었던 것이다.

글; 김상혁 / shkim@witconsulting.com
      한국목재컨설팅 상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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