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세한도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적인 산수화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던 1844년에 제자인 이상적이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주자 추사는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변함없이 지극함에 감동해 이상백의 인품을 송백의 지조에 비유하며 그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1974년 12월 31일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한지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으며 크기는 가로 69.2㎝, 세로 23㎝이다.

그림을 보면 넓은 공간에 자그마한 집과 아름드리 송백만이 매우 간략하게 그려져 있어 추운 시절의 황량한 느낌이 잘 나타나 있다.

삼각형의 안정된 구도 속에 꼿꼿하고 굳센 필치와 메마르고 차가운 먹색이 어우러져 고고한 문기를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다.

이상적은 중국어 역관으로 십 여차례 중국을 드나들며, 스승의 소개로 중국의 명망있는 문사들과 깊이 교유하였다.

추사에게서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이듬해 다시 중국 북경에 가게 되었고 옛 친구인 오찬의 잔치에서 세한도를 내보였다.

이 때 자리를 함께 했던 청나라 문사 16인은 이 그림을 감상하고는 세한도의 높은 품격과 사제간의 깊은 정에 감격하여 저마다 이를 기리는 시문을 남겼다.

현재 세한도의 두루마리에는 그림 뒤쪽에 이들의 시문이 모두 붙어 있으며, 이외에도 김준학,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의 찬문도 포함되어 있다.

사인암은 단양의 명물 다섯 바위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바위다.
김홍도가 50대 이후 사경풍속의 평범한 언덕, 길, 들녁, 나무, 잡풀 묘사에서는 무르익은 완숙미가 두드러진다.

자유자재로 구사한 독필의 언덕 묘사와 잔붓을 세워 탄력 있게 밖에서 안쪽으로 쳐 낸 잔가지의 나무 표현이 그러하다.

사인암의 거의 네모진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화면에 가득 채워가지고는 그림이 안 나올 거란 걸 김홍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홍도는 사인암으로 화폭을 가득 메우면서도 슬쩍 오른편으로 밀어붙이고 좌측에 원경을 깔아 원근감과 공간감을 동시에 살렸다.

아래 쪽의 아기자기한 돌무더기와 물 그리고 짙고 옅은 나무가 주는 공간의 깊이도 훌륭하며 사인암 꼭대기에 보이는 수목들의 배치도 시정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아래편을 흐리게 하고 윗부분이 맑게 떠오르게 그린 것은 거대한 물체를 올려다 보았을 때의 시각현상을 고려한 처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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