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원목수출을 많이했던 말레이시아 사바(Sabah) 주를 작년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사바주의 입문도시인 코타키나바루(Kotakinabaru)는 예전부터 원목이 생산되는 도시는 아니었고 주로 산다칸(Sandakan)이나 사라와크로 가기위해서 거쳐야 하는 도시였으며,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바나 사라와크의 원목이나 제재목을 알선해 주는 업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초로의 박형빈씨만이 남아서 인삼지주목을 배열하고 있었다. 그는 78년에 이곳에 왔다고 하니 27년이나 이곳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가끔 정규식씨(부산대, 동명목재 출신, 전 유림교역 대표)와 만나 골프를 친다고 했다. 정규식씨는 동명목재 무역부장으로 재직하다가 80년초 동명목재가 도산하자 개인적으로 회사를 차려 인도네시아에서 합판을 수입하기도 하고 국내 합판기계를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도 했는데 80년대 말 회사가 부도가 나자 이곳으로 와서 살고 있다. 코타키나바루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다칸(Sandakan) 항은 7~80년대에는 원목수출로 성황을 이루던 항구도시이다.

보르네오섬의 홍콩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게 생긴 산다칸항의 앞바다에는 당시 원목을 싣는 배들이 매일 30여척 씩 떠 있어서 하루에 5~6척씩 입출항을 하던 분주한 항구였는데 25년만에 들린 산다칸 항구는 일주일에 겨우 1척 원목선이 들어올까 말까할 정도로 한가한 항구가 돼 있었다.

그 많던 합판공장도 겨우 12개 공장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제재공장도 3개 공장만이 가동되고 있었다.

산다칸에 온지가 18년이나 됐다는 이정철씨(고려대 농대, 대성목재 출신)는 그간의 경력도 많다. 원목알선업을 하기도 했고, 한때 라하다투에서 제재공장을 운영하며 라란(Laran)을 켜서 한국으로 수출해 재미를 보기도 했으며, 차량재를 켜서 우성산업에 납품하기도 했다. 현재는 동생이 경영하고 있는 인천의 아람목재에 몰딩재를 납입해 주고 있었다. 산다칸의 터줏대감 허훈씨는 이곳에 온지가 23년이나 됐다고 했다.

브루나이에 태권도 사범으로 나왔다가 우연히 들린 산다칸이 마음에 들어 태권도 사범을 그만두고 원목을 배웠다.

당시 인천에 있는 어느 목재회사에 원목 한 배를 알선해 주었더니 미화 6000불을 주더라나, 그 길로 원목알선업에 나선 것이 그의 재력의 원동력이 돼 땅을 사서 제재소를 짓고 한때 잘 나갔었으나 IMF 직전 공장문을 닫고 지금은 그 자리에서 성형합판을 만들어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산다칸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타와우(Tawau)는 예전에는 산다칸 보다 작은 도시였으나 이제는 산다칸보다 큰 도시로 변해 있었다. 아직까지 인근 임지에서 원목생산이 되고 있었고, 인도네시아 타라칸에서 공산품을 사러 이곳으로 많이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카스파라마타 합판공장에는 임흥순씨(고려대 임학과, 대성목재 출신)가 원목구매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임흥순 씨는 대성목재 재직시 자카르타 주재원을 하기도 했으며, 산다칸에서 제재알선업을 하기도 했었으나, 한국의 제재목 수입이 뜸해지면서 카스파라마타 합판공장에 취직을 했다고 했다.

글; 김상혁 / shkim@witconsulting.com
      한국목재컨설팅 상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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