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 예림임업(주) 전 용 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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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서구 원창동에 위치해 있는 예림임업(주)는 원목 및 래핑을 이용한 문, 문틀, 몰딩 등 종합인테리어 제품을 생산하는 전문기업이다. 예림임업의 전용진 대표는 지인의 권고로 우연한 기회에 목재산업과 인연을 맺었다.

전신인 ‘구 용산목재’의 창업으로부터 현재의 ‘예림임업’이 있기까지, 다양한 아이템과 기술개발을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전용진 대표를 만나 25년 예림의 역사를 뒤돌아본다.

예림임업(주)의 전신인 구 용산목재는 1979년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창업된 제재소의 사업자명이다. 당시 용산목재의 주요 아이템은 병풍, 액자 틀을 제재해 완제품 생산업체에 납품하는 것으로 취급 수종은 미송이 일반적이었다.

“1970년대 후반 무렵부터 10여 년간 우리나라 인테리어의 트렌드는 동양적인 요소가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양화가 그려진 병풍 액자 등이 인기를 누리면서 관련 산업이 전국으로 확대되던 때였죠. 그런데 미송원목은 제재 후 형태가 틀어지는 단점이 있어 이를 보완하고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문양이 뛰어나고 변형이 적은 스기목(삼나무)을 도입했더니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전 대표는 단순히 수종 변화를 통한 시도가 용산목재의 매출이 전국 유통물량을 좌우할 정도에 이르기 까지 발전시킨 것에 대해 제품개발 및 품질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남다른 공감을 표시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서양화의 물결이 인테리어 업계로 스며들고 병풍 및 액자 사업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1994년 인천시 남동공단에 입성하게 된다. 사업전환이 필요했지만, 전신인 제재소 설비를 무시할 수 없었고 제재설비를 옮겨 곧 특수목 제재를 시작했다. 1997년 가을 아이엠에프의 위기가 오기까지는 젤루통, 마디카 등을 이용한 원목 몰딩이 주택시장을 한창 주름잡던 시절이어서 큰 무리는 없었다.

“어렵다는 말이 늘어날수록 그 시장에 대한 기술력을 무기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나왕문틀의 시작도 그런 의미에서였습니다.”

아이엠에프의 시련이 중소제조업계를 뒤흔들 무렵, 전 대표의 아이템 개발은 나왕원목 문틀의 개발을 이미 끝낼 즈음이었다. 요즘처럼 중저가 래핑 문틀이 없던 시절이어서 원목 문틀의 제조는 기존 설비를 끌어가기에 적절한 아이템으로 판단됐다. 기업경쟁력을 위해서는 대중적인 제품을 남과 다른 전략에 따라 생산 판매할 수 있어야 했다는 것이 전 사장의 설명이다.

“수입 산지로부터 원자재를 제품 규격에 근접한 수치로 맞춤주문하면서 재단에 따른 원자재 손실과 노동력을 줄이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나왕 원목문틀에 대한 그의 노하우는 제조원가의 절감과 생산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적절한 기계를 제작 하는 등 주문형 제작에 적합한 아이템으로 개발을 단행했었다. 그리고 불과 2~3년 뒤 ‘문틀하면 용산목재’라는 당연함이 베어날 정도로 문틀 품목에서 대형 시판 체제를 가능하게 했다.

이후 남동공단 내 나왕원목 문틀의 생산라인을 유지하면서 2002년과 2003년에는 현재의 원창동 부지에 래핑 문, 문틀 생산라인의 가동을 시작했다. 나왕원목 문틀의 매출이 저가격 경쟁에 따라 시장에서 급격히 감소할 즈음 전 사장의 예상은 적중했고 인테리어 시장에서의 래핑 제품 매출이 빠른 증가세를 보이면서 사업규모도 점차 확대 추세를 띄게 됐다.

올해 5월 신규법인인 예림임업(주)이 탄생하기까지 이러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전 사장은 ‘그저 남다른 운이 있었을 뿐’이라고 겸손한 어조로 일관한다.

장민우 기자 minu@wood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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