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민들에게 삼림욕이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숲길을 손꼽으라고 하면 새재길을 비롯해 진남숲, 영신숲, 소야솔밭, 구랑리숲 등을 꼽을 것이다. 이 숲들은 환경 친화적으로 잘 조성 관리해 오고 있으며 남녀노소가 소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로 힐링할 수 있는 사랑받는 곳이다. 그런데 이 숲속에다 터널형의 파크 골프장을 만들겠다면 시민들은 적극 찬성일까 강력 반대일까?

이 물음에 십중팔구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정신 나갔다고 소리칠 것이다. 왜냐하면 수백 년 된 송림 숲속에 골프장을 조성한다는 것은 산림보호법 등의 위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설사 위반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공 산림자원 차원에서 보존의 논리가 앞설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생활체육의 일환으로 소수 시니어 특권층들을 위해 다수의 남녀노소가 향유하는 치유의 숲을 빼앗는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므로 어떤 논리를 펴건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소중한 유산인 숲에다 골프장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중학교 폐교 부지의 지주가 무상으로 운동장을 장기 제공하겠다고 해도 이를 거절해 버렸다 한다.

대정공원 원경

이럴 진데 관련법을 무시한 채 앞에 열거한 숲보다 훨씬 가치 있는 세계 최초의 식목 송림숲인 <대정공원>에다 골프장 조성을 강행, 오픈까지 했으니 이 사례는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닌가. 게다가 홍보자료까지 만들어 숲속 최고의 명당에 조성한 으뜸 골프장이라며 버젓이 회원모집 장사를 하고 있다니 소가 웃을 노릇이다. 특별법이 일반법을 우선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공사를 강행하여 이에 분노해 국민신문고 민원을 냈는데, 특별법(후백제역사정비법)을 무시하고 일반법(생활체육법)을 부당 적용한 것은 “주민들의 요구가 있었다.”, 통로 확보를 위해 소나무를 벤 것과 중심가지를 자른 문제, <항일의 숲 안내판> 철거 등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런 일이 없다”고 단답형의 답변으로 뭉개버렸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대정공원과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왕의 역사를 조사하면서 그동안 지자체 등에서 발굴하지 못한 유적과 설화, 지명 등을 통해 새로운 시대정신과 가치 연구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후 수차례 지역 언론을 통해 새로운 발굴 내용을 보도한 바 있어도, 해당 관청에서는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하거나 묵살해 버린 것이다. 전임 시장이 공원 내 설치한 <항일의 숲 안내판>을 현 시장이 뽑아내는가 하면,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휴게소의 문경시 관광 안내판에는 <대정숲>이라고 홍보하면서도 그곳을 숲이 아닌 골프장으로 만든 상식 이하의 행정을 펴고 있다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공을 위한 공무원(公務員)이라기보다 특정인의 사주를 받은 사무원(私務員)이라 부름이 더 적절하지 않겠는가.

쇠막대기를 마구 휘두르는 골프장을 가슴에 품은 대정공원은 천연 자연림이 아닌 땔감시대와 일제치하의 벌목공출시대, 그리고 625전쟁의 포화를 어렵사리 이겨온 세계 최초의 식목 송림숲이다. <문경문화재대관>, <대정지>, <청조향람>, <백치자연보> 등에 의하면 숙종8년(1682년) 무렵 한우물 동민들이 마을 수구막이를 위해 수백주의 소나무를 심은 것이 산림녹화의 시작으로, 90여 그루의 소나무가 350살의 나이를 먹으면서도 험난한 질곡의 역사를 견디며 오늘날까지 존림해 오고 있다. 1895~1896년 도암 신태식, 운강 이강년, 지산 이기찬 의병장이 각각 출병하며 의진을 설치했고, 1925년 송림의 소유권 논란이 있어 일제 치하에서도 그 소유가 마을에 있음을 확정하게 된다. 1928년, 우동석이 소나무 7그루를 베었다가 그해 마을주민 20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후 매년 음력 2.1일을 <식목의 날>로 지정 운영해 왔고, 1933년 김상건이 대정공원과 명소 6경(구몽탄, 육송정, 하한대, 삼괴정, 임청대, 부지도)의 이름을 지어 동네에서 특별 관리해 왔다.

대정숲 벌목된 나무 3그루
대정숲 벌목된 나무 3그루

1944년 태평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무렵 조선총독부에서 군함 제조용으로 공원 소나무를 전량벌목 공출하라는 관령이 떨어져 <애국청년단>이 결사반대하며 잔인한 고문 등을 이겨내고 90여그루를 존치할 수 있었다. 1949년 마을에서 3천여 평의 숲이 있는 하천부지 대금으로 1만원을 거출, 면사무소에 지급했으나 등기이전이 일부만 된 채 나머지는 시유지로 나눠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후 1982년 육송정 소나무만 문경시 보호수로 지정했을 뿐 다른 소나무들은 골프장의 공을 얻어맞으며 호흡곤란으로 고사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문가 견해에 따르면 “소나무 뿌리의 생장공간을 인간의 편의에 의해 복토하거나 콘크리트 등으로 피복하고 답압하게 되면 수분과 양분의 이동이 제한되고 토양으로 산소의 유입이 차단되어 뿌리의 호흡작용이 마비되므로 뿌리의 활동이 정지되거나 고사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이를 지양해야만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산림보호 관청이나 산림보호과는 이를 알고도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지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정공원은 1682년 식목한 숲으로, “세계 최초의 식목으로 인정하고 있는 1872.10.미국 네브래스카스 주” 보다 200년이나 앞선다. 하동부사가 조성한 하동송림숲(1745년)보다는 60여년이 빠르며, 1929년부터 대정숲 식목행사를 시행해 온 기록은 1949.4.5. 한국 식목일 시행일보다 20여년이나 빠른 것을 안다면 이 숲의 가치는 국내 최고가 아닌 세계 최고인 것이다.

한국산림정책 연구회에서는 우리나라 산림녹화 업적에 대해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신청 중인데, 여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대정공원이 관계자들의 무관심으로 누락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 보존의 당위성마저 무시된 채 훼손 일로를 걷고 있다. 소나무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데,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 후손들은 생각지 않고 고작 몇 명의 시니어들의 놀이를 위해 소중한 자연 유산을 이렇게 훼손해서야 되겠는가? 이는 보훈부(항일의 숲)와 산림청(산림문화유산), 문화재청(천연기념물)과 경상북도(시보호수) 등에서 함께 지혜를 모아 시급히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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