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공항에서 선경의 진 부장 일행과 합류한 필자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올라 한 3시간여 지났을까, 뉴욜리언스 상공이 가까워지자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활주로에 방향을 맞추기 위해 날개를 왼쪽으로 틀었다 오른쪽으로 틀었다 한다. 창문을 통해서 내려다 본 뉴올리언스는 한쪽은 바다이고 한쪽은 거대한 도시이다. 그런데 바다를 끼고 굉장히 긴 다리가 보인다. 아주 길고 곧게 뻗어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는 센프란스시코에 있는 금문교라고 하던데 지금 보이는 이 다리가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같다.그러나 그것은 다리가 아니었다. 뉴올리언스에 도착해서 며칠 후에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늪지대에 놓인 하이웨이였다. 늪지대의 늪과 늪사이를 교각을 세워
한동안 서울 상류사회에서 불도장(佛跳牆)이라는 초고가의 중국요리가 유행한 일이 있었다. 사슴힘줄, 잉어부레 등 금수의 이색부위를 모아서 만든 요리인데 한 그릇에 15~20만원 하였다. 망아경에 빠진 선승(禪僧)일지라도 이 냄새를 맡으면 선방의 담을 뛰어넘고 온다고 해서 ‘불도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처럼 중국요리의 이름에는 과장된 이름이 많다. 이를테면 뽀얀 배를 가진 이리로 요리한 것을 서시유(西施乳)라 하는데 춘추시대 월나라 미인인 서시의 젖이라 했으니 감각적이다. 기방에서 기녀들을 마음먹은 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스태미나 요리의 이름은 여의채(如意菜)이다.18세기 청나라에 원수원이라는 향낙주의자가 있었다. 그는 중국의 강남 넓은 땅에 이상향을 만들어 고대광실 집을 짓고 모령의 여인들을 수
로봇산업하면 일본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일본의 로봇산업 발전의 기폭제가 된 것은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이었다. 1950년대에 일본의 어느 잡지에 연재된 만화 ‘아톰대사’를 1963년 TV용 에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 ‘우주소년 아톰’이다.이 만화영화가 일본 TV에 방영될 당시 시청률이 40%가 넘는 등 일본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 만화영화를 시청한 일본 어린이들의 꿈과 미래는 어떻게 하면 아톰과 같이 세상을 날아볼까 하는 것이었다.이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그들이 오늘날 일본의 로봇산업을 발전시킨 세대였다. 이렇게 ‘우주소년 아톰’은 일본 어린이들로 하여금 과학세계의 꿈을 자극시켰고, 결국 그들이 자라서 로봇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1982, 합판공장에도 로
1992년 말 부터 남양재 원목가격의 오름세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1993년 초가 되자 폭등세로 돌아섰다. FOB 100불 하던 말레이시아 MLH가격이 150불로 치솟았고, 120불 하던 인도네시아 라왕 가격이 170불로 치솟았다.1979년의 제2차 오일쇼크사태를 다시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각 합판회사들은 조금이라도 싼 원목이 없을까 해서 동분서주하였다. 1993년 당시는 뉴질랜드 침엽수(라디아타파인)를 30~40% 섞어 쓸 때이지만 나머지 60~70%는 남양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식회사 코마, 미얀마 크루인 한 배를 구입하다당시 필자는 주식회사 코마라는 원목수입상을 하고 있을 때인데 FOB 90불하는 미얀마 원목의 오파가 들어왔다. 미얀마에서 거젼(Girgun)이라고 부르는 나
피자(pizza)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파이’로서 지금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고 우리나라에서도 1988년 88올림픽을 계기로 선보인 이래 신세대들에게는 아주 인기 있는 식품으로 되어 있다. 밀가루에 이스트, 물, 소금, 올리브유를 넣고 반죽을 하여 얇은 원판모양으로 구운 후 토마토가 든 피자소스를 치고 치즈를 얹고 올리브유를 친 다음 새우, 오징어, 햄, 소시지, 피망, 버섯, 파인애플 등 여러 가지 고명을 얹어 틀에 넣어 굽는다.이탈리아에서도 가정집마다 그 맛이 다르다는 피자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나라마다 그 맛도 여러 가지로 변하여 그 나라 국민의 식성에 맞는 피자로 개발되었다.이탈리아에서 먹어보는 피자 맛과 브라질에서 먹어보는 피자 맛이 다르고 우리나라에서 먹어보는 피자 맛이 또 다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여름철이 되면 말라리아를 앓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해방 후 자유당시절만 해도 여름이 되면 말라리아가 꽤나 유행하였다. 학질이라고 해서 3일 동안 열이 39도를 오르내려 추워서 벌벌 떨다가 하루는 열이 내리고 괜찮은 듯하다가 또 열이 오르는 병이다. 여름에 솜이불을 덮고도 추워서 벌벌 떨 정도로 열이 난다. 당시는 금계랍이라고 해서 노란 알약이 특효약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9년부터는 우리나라 농촌도 새마을운동 등으로 깨끗해져서 모기가 기승을 부리지 못하게 되자 근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말라리아가 없어지다시피 했다. 오지로 인스펙션을 갈 때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해야만 했다1975년 필자가 말레이시아에 대성목재 주재원으로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오지로 인스펙션을 하러
마나우스의 관광을 마치고 포트벨호(Portvelho)로 돌아온 후로는 매일 매일 원목집하장으로 인스펙션을 나갔다. 원목집하장에는 수몰지역으로부터 벌채해서 나온 40여 가지의 수종이 집하되고 있었다. 타우아리(Tauari) 35%와 카스테니아(Castenia) 35% 외의 수종은 꾸아르우바(Quaruba)와 퍼플하트(Perple heart)로 싣기로 했다.그런데 특이한 것은 동남아시아 원목과는 달리 원목길이를 11m 이내로 조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동남아원목의 경우 12m, 심지어는 14m로도 조제되는 경우가 있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캠프매니저는 이에 대해 브라질은 11m이상 되는 원목을 싣고 시내를 통과 못하도록 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두까지 가려면 시내를 통과하여야 하는데 법에 걸
1979년부터 원목검역은 ‘본선검역’에서 ‘수몰방역’으로 바뀌게 된다. 필자가 해외에 있을 때였는데 본사로부터 식물검역이 수몰방역으로 바뀌어서 검역비가 본선 당 약200만원 정도 들게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것이 1978년 11월쯤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해외에서 소식을 듣기로는 그해 겨울에 인천항이 얼어붙어서 배가 접안이 안 된다느니, 70년 만에 인천항이 얼어붙었느니 하는 얘기들이었다.78년 겨울상황이 그러했으니 실질적으로 수몰방역이 실시된 것은 79년 봄부터라고 생각된다. 수몰방역은 당시 대부분의 원목들이 수중저장 된다는 데서 착안한 식물검역소의 아이디어였다. 바닷물에 잠긴 부분은 염분이 많으니까 벌레가 죽을 것이라는 예상 하에, 수면에 올라온 부분의 원목에만 약제를 살포하면 방역이
1970년.인천의 신포동에서 제1부두로 들어가는 길 오른쪽 모퉁이에 인천세관(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이 있었고, 그 맞은편 쑥 들어간 곳에 식물검역소 인천지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소장 이하 직원 예닐곱 명이 인천항에 입항되는 모든 식물에 대해서 검역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군산지소, 부산지소, 목포지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로 농과대학 농생물학과 출신들이 공무원 시험을 거쳐서 식물검역소 직원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고 있었다.우리나라 식물검역소 설립에 대해서 알아봤더니, 우리나라는 1953년 12월에 국제식물보호협약에 가입하였고, 그 일년 후인 1954년 식물검역법을 제정하여 농림부 산하에 식물검역소를 두게 되었으며, 1959년 7월부터 재무부 산하인 전국 세관에 파견되어 식
지난 3월29일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박지은이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 낭자 골퍼 6명이 ‘톱10’에 들었다. 박세리에 이어 박지은의 올해 첫 메이저대회에서의 우승이다. 금년 초부터 한국 낭자 골퍼들이 톱10 대열에 7명이 드는 등, 한국 낭자들의 골프실력이 세간의 화제다. 우리나라에서 골프 붐이 대중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1984년쯤으로 생각된다. 어언 20여년이 다 돼가는 것 같다.합판업계에 골프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2년 뒤인 1986년쯤으로 생각된다.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골프 붐도 같이 온 것 같다. 대성목재 총무이사인 박광수 이사가 하인천 식물검역소 옆에 있는 골프연습장에서 연습에 열을 올린 것도 그때였다. 합판업계에 골프 붐이 일기
합판산업야사 1988년 6월. MLH로만 생산을 한지도 벌써 일년이 다 돼가고 있다.합판공장도 MLH로만의 생산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MLH의 가격도 입방미터 당 CNF(선적가격) 130불을 상회하고 있었다. 이때 김진씨(전 성창기업 말레이시아 주재원)가 브라질산 원목의 오퍼를 들고 왔다. 브라질에서 입방미터 당 80불하는 원목인데, 빈 배로 오는 배를 잡으면 운송료를 40불에 할 수 있다고 했다.그러면 CNF 120불이 되는 셈이다.평균경은 얼마이고 수종은 이렇고 하며 샘플도 가져왔다. 원목 품질만 괜찮으면 되는 장사다. 브라질은 원래 원목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번에 댐을 설치하는 지역이 있는데, 댐을 건설하기 전에 수몰이 되는 나무를 미리 베어내어 수출을 허
합판산업야사 1971년 11월 무역의 날에는 동명목재가 금탑산업훈장을, 대성목재가 동탑산업훈장을 탈만큼 당시 합판수출이 국내무역을 주도하고 있었다. 1975년 동명목재는 4×10 로타리 2대를 설치하고 2개 라인을 증설하여 일산 15만 매 규모로 생산을 늘리고, 인니원목 10척(월간) 외에 말레이시아 타와우 Hapseng으로부터 월 5척씩을 추가 구입하며 합판 제조의 절정을 이루었다.1972년 종합소득세 고액납세자 랭킹에 의하면 동명목재 강석진 사장의 납부세액이 4억700만원으로 1위였고, 건설 및 철강이 그 뒤를 이었다.그러나 1973년부터 짓기 시작한 동명불원은 지을 때부터 말이 많았고, 부산시민의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동명목재의 뒷산 전체를 차지하는 규모에도 불만이었지만, 절 내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