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PB 및 OSB 국별 수입실적: 파티클 보드 & OSB, 기타 목질 재료
일본 보드류의 거래가 대체로 부진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OSB의 전체적인 거래는 지난달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임대 물건용은 비교적 양호하다. 구조용 합판의 거래가 감소했기 때문에 목조건축루트에서는 OSB도 연동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OSB의 l~5월 입하량은 9만7,900㎥로 전년대비 1.9% 증가했다. 캐나다산은 8만2,200㎥으로 동 3% 증가했지만 독일산은 6,300㎥로 동 21.5% 감소했고 폴란드산은 6,500㎥로 16.5% 감소해 감소폭이 두드러지고 있다. 9㎜×3×10은 1,250엔(관동시작 1차 도매상 도착가) 정도를 보이고 있다.한편 일본의 국내외산 MDF는 6월 중순부터 거래가 감소되고 있으며 4~5월에는 연도 말에 이월된 작업량도 있어 판매량이 감소되지 않았지만 6월부터는
파티클보드의 역사 Ⅶ1991년 1월 거성산업, 아산에 PB공장 건설인천의 거성산업(대표 김동수)은 1991년 1월, 충남 아산에 대지 1만9천평을 마련하고 건평 6,100평의 PB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일산 400㎥(년산 12만㎥)의 규모로 짓게된 이 공장건설에는 40억원이 투입됐으며 공장이름을 동인보드(당시 대표 이방희)라 지었다.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파티클보드 공장이었다.동인보드의 파티클보드 기계설비는 전 공정이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스 제어방식으로 작동하게 돼있었고, 특수재단기가 설치돼 다양한 규격을 자유자재로 생산할 수 있는 설비였다. 즉 6~35㎜까지의 전 규격을 생산할 수 있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16m 컨트롤프레스에 의해 생산됨으로써 제품물성간의 편차가 전혀 없는
목재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기술과 경쟁력을 뽐낼 수 있었던 코리아우드쇼2014. 이 전시회는 6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으며, 한국 목재산업의 저력과 앞으로의 위상을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로 의미있는 전시회가 됐다. 코리아우드쇼에서는 목조건축 소재·보존처리목재·가구재·압축목재·인테리어재·펠릿·접착제와 철물·데크재와 합성목재 등 목재로 이룰 수 있는 모든 산업군을 한자리에 펼쳐보였다. 이번 창간호를 맞아 코리우드쇼에 참가한 업체들의 저력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일 본 연 합 관 ▣ 미야자키현 프리컷 부재 전문제조럼버미야자키 협동조합 럼버미야자키 협동조합의 카와카미 이즈미 전무는 이번 코리아우드쇼에 일본 미야자키현에서 자
2014년 7월 국산재 가격원목 : 낙엽송,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류보드류 : PB, 섬유판제재목 : 낙엽송, 소나무
2014년 7월 보드류 가격 : 준내수합판, 내수합판, 코아합판, PB, 미송합판, MDF
파티클보드의 역사 Ⅵ1981년 10월, 부산의 태창목재 PB공장도 문닫아1981년 10월 7일, 부산의 태창목재(대표 정해찬)는 370억원이나 되는 부채와 금리부담을 견디지 못해 회사 재산 보전처분명령신청을 부산지법에 제출했다. 부산지법 민사1부는 태창목재에 대해 임금을 제외한 일체의 채무변재 중지와 재산처분, 소유권 양도, 담보권 설정, 금전차용 등을 정지시키는 재산보전처분결정을 내렸다. 태창목재는 1979년 기계설비의 반자동화 등에 90여억 원을 투자하였는데, 때마침 불어닥친 원목가격 상승, 경기불황까지 겹쳐 1981년 상반기 금리 부담만 38억 원에 달해 더이상 공장을 가동할 수 없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무리한 시설투자를 했으며, 경기침체에 따른 수출부진, 운영자금 부족, 과중한 금
파티클보드의 역사 Ⅴ세계 파티클보드의 역사세계 파티클보드의 역사를 살펴보면 1887년에 언스트 허바드(Ernst Hubbard) 씨가 저술한 「목재폐재의 이용」이란 책에서 톱밥과 동물의 혈액알부민을 혼합한 후 열압한 인공목재의 제조를 제안한 것이 파티클보드에 관한 세계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크라머(Krammer) 씨가 1889년 세이빙과 아마포(亞麻布)를 적층·접착해 보드의 특허를 출원했고, 1905년에는 파티클보드의 발명자로 일컬어지는 왓쓴(Watson) 씨가 얇은 파티클을 열압·성형해 파티클보드의 특허를 제출한 것 등이 문헌에 나와 있다. 이후 힘멜 헤버(Himmel Heber, 1929년), 카르손(Carson, 1936) 등에 의해 합성수지의 사용, 생산시스템의 자
○ 남양재 제재목■ 남양재 전문 제재소 - 감소 현상남양재만을 전문으로 제재하는 제재소가 감소하고 있다. 인천지역에서 남양재만을 켜는 제재소가 2009년에는 13개였는데 2014년 현재 7곳으로 줄어들었다. 약 50% 정도 줄어들은 것이다. 남양재 제재소들은 주로 딜레니아, 니아토, 타운, 부켈라, 말라스 등 조경재를 위주로 제재해 왔는데, 조경재의 수요량이 줄어든 만큼 제재소 숫자도 줄어들었다.조경재 수요량 감소는 목조주택, 펜션 등의 건축이 감소된데 기인하는데 조경재 수요량 감소는 남양재 원목 수입량의 감소를 초래했다. 2009년 남양재 원목 수입량은 24만7,000㎥에 달했으나 2013년에는 17만3,300㎥만이 수입돼 약 43% 감소했다. ■ 남양재 제재목 가격
파티클보드 역사 Ⅳ 한샘, 보르네오가구에 많이 팔려70년대 파티클보드의 품질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시 파티클보드는 가구산업에서는 획기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합판만 있던 세상에 합판보다 저렴한 판상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1970년 창업한 한샘은 주방가구를 만드는데 파티클보드를 많이 사용했다. 싱크대 밑의 문짝도, 싱크대 위의 찬장도 파티클보드에 무늬목 또는 무늬종이를 랩핑해서 만들었다. 1966년에 설립된 보르네오가구에서도 가구를 만들 때 파티클보드를 많이 이용했다. 소파 내부의 뼈대로도 이용했고, 아파트 문짝을 만들 때 문짝 내부에 벌집용으로도 많이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병원의 붙박이용 캐비넷, 목욕탕의 옷장 등도 파티클보드에 무늬종이 또는 무늬목을 랩핑해서 많이 사용됐
2014년 5월 PB 및 OSB 국별 수입실적 : 파티클 보드 & OSB, 기타 목질 재료
파티클보드의 역사 Ⅲ 보드산업의 태동국내에 파티클보드가 처음 탄생한 것은 1965년이다. 당시에는 원목수급이 원활해 합판과 동남아 원목 위주의 시장이 형성됐었고, 보드는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국내에서 최초로 파티클보드 공장을 건설한 회사는 대성목재(대표 전택보)이다.보드산업의 시초는 인천의 대성목재가 1965년 파티클보드 공장을 건설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파티클보드는 합판을 만들거나 제재를 할 때 발생되는 부산물(죽데기 등)을 파쇄기를 이용해 작은 나무조각(chip)으로 부순 후 수지를 첨가해서 성형시킨 목질판상재이다.불을 때거나 버려지는 폐자재를 원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자원재활용 측면이나 환경보호 측면에서 부가가치를 구현하는 산업이었다. 뿐만 아니라 합판공업,
라틴아메리카의 판넬 제조사인 마시사(Masisa)社가 생산테스트를 완료한 슈퍼 MDF ‘트리코야(Tricoya)’ 제품을 론칭했다고 발표했다. 트리코야는 외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높은 치수안정성과 부패나 부후에 대한 결함이 없고 내구성이 강해 50년이라는 기간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TTL社는 트리코야 제품에 대한 독점 유통권을 받았고, 앞으로 2년동안 더 독점권을 갖게된다. 이 제품은 앞으로 브라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시장을 겨냥해 공급될 것이며 모든 권한은 TTL社가 갖게 되므로 관련 마케팅도 TTL社가 주력으로 할 예정이다.트리코야 판넬은 독특한 방식인 아세틸화 공정을 이용해 제작됐는데, 이는 고객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는데 한몫했다. 트리코야 판넬은 이미
파티클보드의 역사 Ⅱ 1972년 6월, 동화기업 파티클보드공장 착공동화기업, 지금은 목질보드업계의 선두주자이지만 1972년 당시에 동화기업은 제재소에 불과했다. 동화기업(당시 대표 승상배) 역시 제재단지 내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양의 죽데기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찾다가 파티클보드공장을 지을 것을 계획하게 된다.동화기업 승상배 사장(당시 52세)은 미국의 ‘골든스테이트빌딩 프로덕트社’와 합작으로 파티클보드공장을 건설하기로 협약을 맺고 1972년 6월 공장건설에 착수했다.협약내용인즉 총 사업비를 300만 달러(당시 돈으로 12억6천만원)로 책정했는데 동화기업측은 땅(토지)과 건설비, 인건비 등을 투자하기로 하고 미국회사측은 150만달러 상당의 이계설비를 투자하는 것으로 했다
2014년 6월 국산재 가격원목 : 낙엽송,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류보드류 : PB, 섬유판제재목 : 낙엽송, 소나무
2014년 6월 보드류 가격 : 준내수합판, 내수합판, 코아합판, PB, 미송합판, MDF
파티클보드의 역사 Ⅰ우리나라 목질보드산업의 역사는 파티클보드로부터 시작된다2014년 현재 우리나라는 동화기업(대성목재 포함)과 부산의 성창기업만이 파티클보드 공장을 갖고 있어 MDF 공장보다 그 수에 있어서나 생산량에 있어 열세이지만, 실은 MDF 이전에 파티클보드가 먼저 시작됐다.1965년 대성목재, 우리나라 최초로 파티클보드 공장가동파티클보드는 톱밥, 대팻밥, 죽데기 등 목재폐기물을 분쇄해 칩(chip)으로 만들어 접착제와 함께 압축공정을 거쳐 제품화한 것으로 주방가구, 싱크대 찬장, 전자제품 케이스, 선박내장 등에 사용된다.1965년은 합판수출이 한참 잘 될 때인데 인천시 만석동에 위치한 대성목재는 일산 4만2,000매의 합판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합판을 많이 만들다보니 부수적으
○ 뉴송 원목■ 6월 가격-또 8$/㎥ 인하뉴질랜드산 라디에타 파인 원목(일명 뉴송 원목)의 수출 가격이 지난 5월 15$인하에 이어 이달에 또 8$/㎥이 인하됐다. 즉 뉴송 원목 6월 수출가격은 A-grade기준 137$/㎥(CNF 인천)이 됐다(TPT社의 경우).레이오니아社는 7$/㎥을 인하해 138$/㎥(CNF 인천)에 수출되고 있다. 2013년 1월 수준으로 환원된 것이다. 이처럼 뉴송 원목 수출가격이 갑자기 인하되고 있는 이유는 뉴질랜드측이 미국원목에 대한 견제 때문 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국내재고가 많아 원목수입을 줄이고 있는 이때에 미국 원목보다 가격을 대폭 싸게 해서 뉴질랜드 원목을 많이 수입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이러한 뉴질랜드측의 의도는 7월에도 이어질 것
2014년 4월 PB 및 OSB 국별 수입실적 : 파티클 보드 & OSB, 기타 목질 재료
목재시장이 커질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이 즐비한데도 불구하고 쉽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혜부족이라기 보다 닫혀버린 의지가 더 문제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를 깨워서 차별화된 소비를 하게 할까? 목재제품 표시제도를 어떻게 알려서 인지하게 할까? 숙제임에 틀림없다.플라스틱이나 비닐에 빼앗긴 시장을 어떻게 회복할까? 이런 질문의 답은 소비자가 목재를 알게 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어떻게 보면 목재 정보에 굶주려 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하게 있다. 소비자는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정보제공이 안될 뿐만 아니라 찾기도 어렵다.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떠도는 목재정보는 그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수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