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산림청 발족○산림청 태동의 비화지리산 도벌사건의 수사가 한참 진행중이던 1964년 12월 중순, 박정희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대한해협을 지나 경북 포항의 영일만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파독 광부들을 만나고 일본을 경유해 귀국하는 길이었는데, 대통령의 눈에 비친 영일지구는 거대한 황무지였다. 벌거벗은 민둥산을 내려다보던 박 대통령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헐벗은 산을 그대로 두고 조국 근대화는 불가능하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그러나 현실적으로 밥을 지어먹고 겨울을 이겨낼 땔깜조차 없는 현실이 문제였다. 춘궁기에 소나무 껍질로 죽을 만들어 먹으며 연명해 오던 조국의 오랜 가난을 어떻게 해결할 지 박 대통령은 답답하고 막막했다.“나무를 많이 심으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 사 설 - 산림청장은 목재산업을 제도권으로 안아야 국가의 조직은 경제규모와 산업기반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도 예외일 순 없다. 임업 또한 마찬가지다. 산림청은 농림수산식품부의 소속으로 국가임업의 총지휘자요 총책임부서다. 국가임업경영의 확실한 목표와 비전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글로벌 자원 환경에 대한 대비도 빈틈없어야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산림청의 현 목표와 비전은 국가조직의 본질적 요소와 거리가 있는 마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조직이다. 식자들은 산림청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황폐화된 산림을 시급히 복원하는 임무와 그에 따른 조직이 치열한 평가 없이 자리유지 차원의 변화를 했다고 지적한다. 그런 결과 임업경영은 마이너가 됐고 생태, 보전, 휴양, 환경, 산불의 가치가
임업을 산업으로 성장시켜야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부부처 개편설이 나돌면 산림청의 주관부서가 어디가 되느냐가 항상 도마 위에 올랐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임업의 총산출액은 3조에 불과하고 여기에는 ‘임목 순생장량’을 고려한 가상적 산출액도 포함돼있어 실제론 더 작은 규모를 갖고 있고 임업 종사자도 적기 때문에 주관부서 이관은 개편설이 나돌 때마다 화제가 됐다. 또 임업은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아주 작은 그야말로 무시해도 좋은 총산출액 규모를 갖고 있으나 여기에 종사하는 국가 조직은 타 부서규모에 비해 형평성이 안 맞다고 느낄 것이다. 20여 년 전부터 산림청 종사자들은 임업의 한계를 비켜가려고 환경, 생태, 보호, 휴양 등등의 공익적 가치에 더 매달려 조직을 보전하려는
"현장임정, 기술임정, 참여임정 등 3가지를 중점적으로 실천해 나가겠습니다.”제25대 산림청장으로 지난달 21일 부임한 조연환 신임청장의 일성이다. 조 청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산림행정 전문가다. 21세기 산림비전 구현을 위한 실천전략 수립으로 21세기에 알맞는 산림정책 추진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숲가꾸기에 공공근로사업을 도입해 IMF이후 실업문제 해결 및 산림의 경제적 환경적 가치를 증대시키는데 기여했다. 또한 수원함양림 지정 및 관리, 산림휴양시설을 확충하는데 일조했다. 조직 내 상하간 의사소통이 원활하며 외부적인 활동영역이 넓다. 시와 수필 등 문학에서도 그 능력이 뛰어나다. 충북보은 출생으로 지난 67년에 산림청과 인연을 맺은이후 80년에 제16회 기술고시에 합격했다. 그후 경영계획과장
제24대 최종수 산림청장 지난 3일 정부의 차관급 인사에서 신임청장으로 내정된 후 다음날인 4일 취임식을 가졌다. 최종수 신임 산림청장은 얼마전까지 산림청 차장을 지냈으며 산림청 기획관리관, 국유림관리국장 등을 두루 거쳤다. 제11회 행정고시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한 최청장은 이외에도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 수급계획과장, 공정거래 정책과장, 경제기획원 KDI파견(국장), 국제협력단 기술협력이사, 농림부 통계국장, 원예특작국장, 감사관 등을 지냈다. 최청장은 산림청에 재직하면서 기획관리관으로 있던 지난 2000년 11월 23일 민원보호담당관제를 도입, 민원현장을 직접 찾아가 해결하는 옴부즈만 역할을 수행해 산림청이 민원처리 만족도 상승률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으며 국유림관리국장으로 자리를 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