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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을지로3가역 5번 출구에서 나와 바로 보이는 입간판엔 ‘을지면옥’이란 글자가 선명합니다. 그 아래로 붙은 작은 간판엔 ‘을지다방’이 앙증맞게 셋트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마도 식사를 하고 나면 다방에도 들러 가란 뜻이겠지요. 을지다방이 2층에 자리했으니, 을지면옥은 건물 1층 정도엔 자리했겠다 싶어 이리저리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찾을 수 가 없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이라곤 밧데리, 기계공구에 용접기 총판, 아크릴 가게만 빼곡히 들어섰을 뿐입니다. ‘간판만 남고 없어진 집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순간, 가게들 사이로 좁고 긴 복도 같은 것이 나타났습니다. 손님으로 붐비는 식당을 기대했던 눈에는 참으로 이상한 풍경이 들어왔습니다. 대합실 의자들이 길게 늘어서고, 표구점처럼 벽에는 크고 작은 액자들이 빼곡합니다. 그리고 탐험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이 이상한 공간 끝 작은 유리창엔 다시 빨간 글씨로 ‘을지면옥’이란 글씨가 나타납니다.을지면옥은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집입니다. 의정부에 있는‘평양면옥’ 집에서 두 자매가 분가하여, 언니는 충무로의 ‘필동면옥’을 열고, 동생은 을지로에 ‘을지면옥’을 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세대에는 출신지에 의지하여 ‘평양’이란 간판을 걸고 식당을 키웠다면, 그 딸들은 새롭게 잡은 터를 따서 가게 이름을 붙인 것이 특이합니다. 그만큼 자기가 만든 음식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고, 도시의 장소성이 배어있어 들을 때마다 흐뭇한 느낌이 듭니다. 을지로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년 정도로, 을지면옥의 냉면은 우리가 접하는 냉면맛과는 많이 다른 편입니다. 처음 먹을 때는 ‘뭐 이런 밍밍한 맛이 있지’ 하다가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머리 깊은 곳에서 주파수 같은 것이 나와 꼭 가게를 찾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습니다.여기 한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아까 말한 복도에 걸려있던 지도입니다. 그 이름은 ‘북한 전도’. 우리가 남쪽 아래에 살면서 잊고 지낸 반쪽의 모양입니다. 새삼스레 우리가 둘로 나뉘어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국민학교’ 다닐 때 그렸던 온전한 우리나라 지도를 떠올립니다. 지도만 이런 것이 아니였습니다. 맞은 편 벽에는 대동강 철교 옛 사진이 걸려 있고, ‘1921년 착공, 그 이듬해 11월 준공. 총연장 661m...’라는 손글씨가 담담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애절함이 물씬 느껴집니다. 두고 온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색바랜 그림과 지도 그리고 사진에 가득합니다.우리가 찾던 식당 을지면옥은 긴 복도를 지 나선반가공공장과가게들이있는작은골목, 다시말해 길을 하나 건너야 비로소 나타납니 다. 큰 길에서 안쪽에 자리한 자기 식당까지 손님들이 들어오도록, 다른 건물의 공간을 빌 려 적극적으로 길을 튼 것이 신기합니다. 또 이곳을 오가는 분들은 단순하고 거칠지만, 서 로의그리움을나누고소통할수있는‘기억의 공간’을마련해놓은것이흥미롭습니다. 삭막 한도시속에식당이단순히음식만을파는곳 이아니라, 문화를나누는‘박물관같은장소’ 가 될 수 있음을‘을지면옥’은 말해주는 듯합 니다.글/사진_구가도시건축연구소 조정구 대표 2008년 12월 16일 제 2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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