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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의 일입니다. 경복궁 서쪽 적선시장을 지나 위에 있는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계절은 봄이라지만 이른 아침에는 여전히 쌀쌀한 날씨,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셨습니다. 답사를 하는 우리 일행은 보이는지 마는지, 이 집 저 집을 오가십니다. 이내 조용했던 한옥 골목에는 5~6명의 아주머니들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아, 그래요. 어디 봐요. 추운데 보일러 고장나면 어떻게 하라고요?”하며 할머니를 따라 한 사람 겨우 지나는 비좁은 샛골목으로 모두들 사라집니다. 사람은 안보이고, 안쪽에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가 나더니만, 다시 들어갔던 순서 그대로 나오십니다. “ 그… 전화해요. 내가 수리하는 데 갈쳐 드릴께!”.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들 중에는 보일러를 손보실 분은 아무도 안 계셨던 모양입니다. 할머니네 집은 여전히 춥겠지만, 사시는 동네는 참 따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햇살이 든 한옥 골목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습니다.서울을 아끼는 사람들, 혹은 여기저기 다녀 본 외국인들에게 서울에서 가장 특이한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도 ‘골목’이 되지 않을 까요? 서울을 감싸고 있는 산들이나 가운데를 흐르는 한강도 있겠지만, 아기자기한 공간과 따스한 삶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골목이야말로그 으뜸이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골목 중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은 어디일까요? 교수님들의 견해에 따르면, 한옥이 밀집한 북촌의 가회동이나 계동, 종로 한가운 데 자리한 인사동, 돈화문로 양쪽의 골목들도 그러하겠지만, 오늘 말하려는 체부동 골목이 가장 오래된 골목 중 하나가 될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거의 100년 전의 지적도와 지금의 것을 비교해 보아도 땅모양과 골목은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시작했던 당시의 자료이므로, 아마도 체부동의 골목은 이전의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에도 지금처럼 빼곡히 한옥들이 들어서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체부동 골목 안에 자리한 마당과 양쪽으로 뻗은 골목들의 풍경입니다. 집에서 김장김치를 담그던 시절에는, 이 가운데 마당에서 몇 백 포기의 배추를 쌓아놓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담그기도 했다 합니다.겨울 다시 찾은 골목, 집 앞에는 화분들이 벽에 기대어 삼삼오오 봄을 기다리고, 골목 끝 기와 지붕 너머로 어느 집 나무일지 모르지만, 높은 키를 세우며 골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울려 사는 사람들처럼, 지붕과 나무, 담장과 화 분들도 서로 의지하며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여기 체부동의 오래된 골목인 것입니다. 겨울 햇살이 가득한 골목의 따스한 풍경과 다르게 곳곳에는 재개발을 막지 말라는 붉은 깃발이 눈에 띕니다.얼마 전 서울시장의 한옥 선언이 있었고, 체부동 일대는 이러한 한옥마을 살리기의 중요한 거점이 될 것 같습니다. 사유재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의 의견도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북촌에서 한옥작업을 하면서 마을이 되살아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 받는것을 보아온 건축가로서는, 체부동 주민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한옥’과 ‘오래된 골목’이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소중한 미래 자산’이 될 것이라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글/사진_구가도시건축연구소 조정구 대표 2009년 1월 16일 제 2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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