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동 골목 자생의 성지를 순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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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아침 햇살 사이로 마을버스들이 부지런히 오갑니다. 두 차가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길을 일개미처럼 묵묵히 8번 버스는 사람들을 내리고 태웁니다. 복잡한 명륜시장을 지나, 학생들이 많이 내리는 양현관 앞 다음으로 그 이름도 싱그러운 ‘샘 미용실’에 정차합니다.

아마도 공공미술가의 손이 갔는지, 회색빛 아스팔트 바닥엔 작고 고운 타일로 동그랗게 ‘샘 미용실’이라 장식한 정류장 표시가 눈길을 끕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갈래길로 접어듭니다. 처음엔 높은 축대와 건물이 앞을 가리더니, 오르면서 점차 그 벽이 사라지고 시선이 열립니다. 길이 끝나고 평평한 언덕마루쯤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 본 순간, 마치 춤을 추듯이 길들은 지형을 따라 위로 아래로 굽이쳐 뻗어가고, 그 사이로 빼곡히 산동네가 나타납니다. 이곳이 바로 명륜동입니다.

성균관 대학 캠퍼스를 옆에 끼고, 성북동 성곽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명륜동 골목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학생 한 두 명은 두지 않은 데가 없는 이른바 하숙촌이라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많아져 동네 곳곳에 중국어로 주의문구가 붙어있어 흥미롭습니다.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원래는 임야였던 곳에 해방 후, 또는 전쟁 이후에 몰려든 사람들이 임의로 점유를 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동네가 형성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곳에는 어느 것 하나 계획된 것 없이, 자연 지형에 따라, 또는 사람들이 점유한 순서에 따라, 길들이 나고 여기에 붙어 집터를 일구고, 대문과 마당을 두어 집을 만들어낸 그야말로 ‘순수하게 자생적으로 형성된 골목길과 집 그리고 동네’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동네 한가운데 이르면 나오는 <비둘기마트> 앞으로 길이 ‘굽이쳐 돌고’ 있습니다. 가게 앞 길 건너에는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 간간히 쉬어가도록 파라솔이 놓이고, 화분이 좁은 듯 다 자란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그 옆으론 조그만 동네 꼬마가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익숙한 동작으로 급한 계단을 올라오고, 전신주 뒤로는 집 밖으로 따로 나온 계단이 길과 옥탑방 사이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여기엔 담을 수 없었지만 비둘기 마트 아줌마는 마라톤에서 가족과 완주한 사진을 가게에 자랑스럽게 걸고 있습니다. 

명륜동을 돌아보면, 이곳에서 살아온 분들의 삶의 흔적이 차곡차곡 그대로 쌓여진 느낌이 듭니다. 지형과 구분되지 않는 축대며, 새 건물 아래 아직도 남아있는 샘터, 봄이면 축대를 타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나리나, 골짜기에 용트림 하듯 들어선 건물과 계단, 텃밭과 화분으로 가득하여 땅과 구분되지 않는 옥상의 모습 등등. 자연이나 지형 기타 환경의 조건에 맞게 삶의 터전을 스스로 만들고 고쳐왔던 ‘자생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풍경은 우리 도시만의 매우 고유한 특징이며, 또한 합리와 효율을 중시하는 지금 시대에는 만들 수 없는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글/사진_구가도시건축연구소 조정구 대표  

  

 2009년 4월 1일 제 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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