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림목재㈜ Ⅷ
● 현경목재, 이현의 대표
지금의 이현의 사장은 원목을 제재하면 어디에다 사용돼야 할 지를 잘 아는 목재 전문가다. 이현의 사장은 바둑 실력도 대단해서 아마추어 1급이다. 1995년 이현의 사장이 영림목재 이사를 맡았을 때 필자의 회사(㈜코마)에 와서 가끔 바둑도 두곤 했다. 그때 필자는 영림목재가 수입한 미국산 스프러스 켄트목(건조된 제재목)을 사서 바둑판을 만들어 거래처에 돌린 일이 있었다. 또 1990년에는 미국산 더글라스퍼 켄트를 사서 필자의 건물(5층)을 지을 때 문틀재와 계단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현의 사장은 영림목재 입사 후의 일들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기도 했다. “1982년 현대종합상사가 월미도에 있는 원목장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였습니다. 그때 거기에 쌓여있는 원목 2백만재를 영림목재가 산 일이 있어요. 이 원목들을 영림목재로 옮겨야 하는데 장비 임대료가 비싸니까 전기톱을 가져가서 원목들을 절단해서 공장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때는 정말 무식하게 일했지요. 당시 신혼생활을 할 때였는데 집에 돌아오면 나무 분진이 구두에 묻어있는 것을 본 아내가 ‘당신은 무슨일을 하는 사람이냐’라고 묻기도 했지요.”

● 2002년 9월, 이경호 사장 일본 유학
2002년 이경호 사장 많은 목재회사들이 영림목재보다 더 경쟁력있게 경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논의했다. 임직원들과 여러 논의를 했지만 새로운 분야의 품목 개발에 대한 필요성만 느낄 뿐 구체적인 답이 나오지 않았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정밀목재가공과 그에 연관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해법의 하나로 이경호 사장(당시 그의 나이 53세)은 일본유학을 가서 많은 것을 배워오기로 했다. 회사의 대표로서 회사를 1년간 비운다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동안 영림을 지켜온 식구들을 믿기로 하고 과감하게 2002년 9월 일본 유학길에 나섰다. 이경호 사장은 동경에 있는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 연구원 자격으로 2002년도 가을 학기에 입학했다. 와세다 대학 대학원의 연구원 자격으로 기숙사에 머물면서 컴퓨터도 지원받고 도서관 이용과 강의도 들으면서 틈틈이 일본어 등 어학공부도 했다. 동경대 농과대학, 교토대, 홋카이도 대학 등을 방문했고 특히 80년 전통의 돗토리대학 농과대학에서는 2개월간 숙식을 하며 공부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첫째주 토요일 귀국해서 회사 경영도 챙겼다. 이경호 사장은 “1년 동안 짧은 기간이었지만 와세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일본목재연구소 등을 둘러본 경험이 고급 목재 활용 노하우를 쌓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이경호 사장은 조경 산업의 미래 시장성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홋카이도 등 46개현을 돌아다니며 목재 선진국인 일본을 철저하게 연구했죠. 목재관련 세미나, 포럼 등 거의 다 참석했습니다.” 이경호 사장은 2003년 한국에 돌아와서는 나무 데크, 펜스, 벤치, 파고라 등 조경산업에 관심을 높여 새로운 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 2004년, 신복산업 분당점 개설
신복산업(대표 최항순)은 2004년 2월 1일 경기도 분당에 ‘e-라이브러리’ 직영점을 개설했다. 서울 신사동 강남점에 이어 두 번째 직영점이다. 2001년부터 ‘e-라이브러리’라는 브랜드로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자 2004년에는 분당에도 직영점을 개설한 것이다. ‘e-라이브러리’의 성공비결은 미국에서 직수입한 특수목을 사용해 유럽식 고품격 서재가구를 고객의 취향을 살려 맞춤형으로 만든 것이었다. 당시 최항순 사장은 “질 좋은 원목 사용과 품위 있는 디자인이 가능한 것은 모체인 영림목재의 노하우에서 비롯됐다”며 “성인용 서재가구에 이어 주니어(학생용) 서재가구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참고: <영림목재, 마흔 나이테>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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