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림목재 Ⅸ
● 2004년, 대만으로 파렛트 수출
영림목재는 2004년 6월, 대만 굴지의 물류회사인 L&R社에 목재파렛트 11만8000세트(약 20만 달러, 당시 한화로 2억3000만원)를 수출했다. 이경호 사장은 “그동안 음료 및 오일제품을 적재하며 간접적으로 파렛트를 수출한 적은 있지만 파렛트만을 직접 수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 2005년, 당진에 물류센터 설립
이경호 사장은 충청남도 당진에 부지 17500평을 구입하고(2004년 3월 취득) 또 하나의 자회사인 당진물류센터를 설립했다(2005년 4월 법인등록). 법적으로는 ㈜장연이라는 상호로 등록돼 있는데 ‘장연’이 라는 상호는 이경호 사장의 고향이 황해도 장연이어서 고향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다.
장연물류센터 또는 당진물류센터라고도 불리는 이 자회사는 처음에는 단순히 물류사업만을 하기 위해 설립했으나 최근에는 부지 3300평을 추가로 구입해 공장을 짓고 있으며 공장 건설이 완료되면 인천에서 제작하고 있는 파렛트 공장을 그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경호 사장이 당진에 물류센터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경호 사장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부터는 물류사업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류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넓은 부지가 있어야 하고 큰 창고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또 다른 창고 부지를 물색하였다. 일본 유학시절에 동경에 있는 유수의 목재업체들이 본사와 150㎞ 이내에 제 2공장이나 창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많이 봐왔던 이경호 사장은 ‘수원근처에 창고를 지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수원 근처의 부지를 알아보니 웬만한 곳은 삼성 등 국내 유수업체들이 다 차지하고 있고 이미 땅 값은 오를대로 올라 있었다. 그래서 인천에서 약 100㎞ 떨어져 있는 당진 쪽으로 알아보니 뜻 밖에도 한 야산이 싼 값에 나온 곳이 있었다. 당진이라면 평택항도 가깝고 군산항도 가깝고 부산항에서도 인천보다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미국과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목재들의 운반비도 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2004년 3월, 이경호 사장은 그 땅(부지 17500평)을 매입했다. 당진물류센터 초대 사장은 임호식(林浩植)씨였는데 작년 9월부터는 고문으로 물러나있다.
현재 ㈜장연의 대표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이승환 씨(1983년 1월생, 현 30세, 국민대졸, 일본동경대 농학생명과학대 대학원졸, 이경호 사장의 아들)가 맡고 있다. 임호식 고문(1948년생, 현 65세)은 영림목재에 근무한 지(1974년 입사) 38년이나 된 영림목재 역사의 산 증인이다. 임호식 고문은 입사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저는 1974년에 영림목재에 입사했는데 생산쪽에 있지 않고 관리쪽에 있었어요. 소규모 제재소니까 이용복 회장님 빼고는 사무실 직원은 저 밖에 없었죠. 그때는 발동기로 제재기를 돌렸어요. 발동기는 지하에 놓고 피데로 육상에 있는 제재기와 연결해서 동력을 얻었지요. 왜정시대때 차에 시동을 걸 때 손으로 돌려서 하는 것처럼 발동기를 사람이 손으로 돌려서 시동을 걸었지요. 당시 영림목재는 소규모 제재소였는데 일본말로 하면 ‘마찌고바’라고 했지요. 원목은 켜지 못하고 절단목을 주로 켰습니다. 주로 빵상자, 술상자, 사과상자를 만들었는데 빵상자는 대패질을 해서 만들었고, 병이라든가 사과를 담는 것은 그냥 만들었지요. 돌아가신 이용복 회장님이 일제시대 때 제재소의 톱을 다루는 기술자였는데 영림목재를 하기 전에 방앗간도 하셨고 주물공장도 하셨대요.”
영림목재는 당진물류센터에 파렛트 등 저가의 물품은 물론 북미산 특수목 등 고가의 물품까지 모든 품목을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 모든 물품이 실내에 보관됨으로써 제품의 품질이 손상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한편 당진 이남으로 판매되는 것은 이 곳에서 직접 출고하고 있다.

참고자료 : <영림목재, 마흔 나이테>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