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기업 주식회사 Ⅴ

1970년대 파티클보드 품질은 엉성
1970년대 대성목재와 동화기업이 생산하는 파티클보드의 품질은 지금의 파티클보드에 비하면 아주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필자가 경험한 일인데, 파티클보드로 만든 책장을 사서 책을 꽂아 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로로 놓인 파티클보드(당시 18㎜두께)가 습기로 인해 밑으로 축 처지는 일이 발생했다.
또 한가지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는데 1974년으로 기억된다. 고속도로 죽전 휴게소에서 한 남자가 두꺼운 바둑판을 팔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아가티스라는 원목으로 만든 바둑판이었다. 아가티스 원목으로 만든 바둑판을 하나 갖고 싶어 얼마냐고 물었더니 당시 돈 2천원이라고 했다. 지금의 20만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 당시 동화기업 신입사원 월급이 3만원일 때였으므로 꽤나 비싼 금액이었다.
그래도 아가티스 원목으로 만든 것인데 비싸겠지 하면서 바둑판을 샀다. 그런데 몇 달 후 바둑판의 모서리가 벗겨지면서 안쪽에 파티클보드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파티클보드에 아가티스 무늬목을 랩핑해 만든 것이었다.

한샘, 보르네오가구에 많이 팔려
1970년대 파티클보드의 품질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시 파티클보드는 가구산업에서는 획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합판만 있던 세상에 합판보다 가격이 저렴한 판상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1970년 창업한 한샘은 주방가구 제조 전문 업체였는데 파티클보드를 많이 사용했다. 싱크대 밑의 문짝, 싱크대 위의 찬장 등도 파티클보드에 무늬목이나 무늬종이를 랩핑해서 만들었다.
1966년 설립된 보르네오가구에서도 가구를 만들 때 파티클보드를 많이 이용했다. 소파내부에 뼈대용, 아파트 문짝의 내부에 벌집용등으로도 사용됐다. 뿐만 아니라 병원 의사실의 캐비넷, 목욕탕의 옷장 등도 파티클보드에 무늬목이나 무늬종이를 랩핑해서 만들어졌다. 지금은 파티클보드의 품질도 많이 좋아졌고, MDF도 나와서 좋은 세상이 됐지만 당시에는 MDF도 없을 때였다. MDF는 1986년 10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1973년 3월, 동화기업이 가구공장을 짓다
동화기업 승상배 사장은 1973년 3월, 내자 7억원, 외자 3억원 등 10억원을 들여 가구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목재의자와 침대를 만드는 가구공장이었는데 착공한지 14개월만인 1974년 6월 5일 완공돼 준공식을 가졌다.
1974년 6월 5일 하오2시 관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다. 인천 북구 가좌동에 세워진 이 가구공장은 대지 14000평에 건평 6000평의 규모로써 연간 98만 4천세트의 목재의자를 만들었으며, 가구 제조기를 비롯 조립 제조기계 등 300여대가 설치돼 완전 조립식 생산체재를 갖추고 있었다. 이 가구공장에서 생산된 목재의자와 침대 등은 구미 지역 및 일본에 수출됐다.

1974년 3월, 원목 하역회사 인수
동화기업 승상배 사장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돼 들어오는 라왕 원목을 자체적으로 하역하기 위해 1974년 3월, 보르네오통상(대표 위상식)이 운영해오던 보르네오통상 하역부를 1억 8500만원에 인수했다. 당시 보르네오통상 하역부는 부실운영으로 인해 중소기업은행이 관리 중이었다. 인수조건은 하역장비일체와 그에 딸린 부동산 일체를 인수하는 조건이었다.

1974년 3월, 원목수송용 선박 2척 구입
동화기업 승상배 사장은 1974년 3월 선박회사인 동화선박(대표 최진수)을 설립하고 원목 수송용 5천톤급 선박 2척을 일본으로부터 구입했다.

1974년 10월, 서초동에 아파트단지 조성
동화기업 승상배 사장은 서울 영동지구 서초동에 위치한 동화기업 부지 1만7000평에 1400가구분의 아파트단지 조성을 위해 대지 조성 시공업체들로 하여금 입찰에 응하게 했다. 이 대지 조성공사는 서초동 대지 1만7000평을 75년 2월까지 조성 완료하는 공사로써 최저 입찰자에게 계약체결권을 주되 그 회사의 실태조사에서 통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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