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종합목재(풍산목재) Ⅲ

창업주, 유승봉 회장
풍산목재 유승봉 회장(1945년생, 70세)은 1971년 그의 나이 27세 때 故최득수 회장이 운영했던 한국무늬공업사(당시 마포구 당인리 위치, 現한국종합목재)에 입사해 목재와 첫 인연을 맺는다. 한국무늬공업사에 5년간 근무한 뒤, 1975년 10월에 한국무늬공업사를 퇴사하고 1976년 4월 그의 나이 32세 때 마포구 도화동에 금강마루판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故최득수 회장에게서 배운 목재의 지식과 경험으로 나홀로 서기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79년 그의 동생인 유승근 씨(1951년생, 당시 29세, 現풍산목재 사장)와 함께 ‘미주루바’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때 돈을 많이 벌게된 유승봉 회장 형제는 1982년 성동구 성수공단 내에 ‘풍산무늬목재공업사’라는 건자재상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무늬목 업계에 진출했다. 한창 송파구에 개발붐이 일 때여서 장사가 무척 잘 됐다. 유승봉 회장은 “그때만큼 재미를 보던 때도 없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때부터 유승봉 회장은 ‘풍산’이라는 상호를 사용했는데 오늘날의 상호도 ‘풍산종합목재’이다.
충남 보령이 고향인 유승봉 회장은 부친이 축산업을 했고 본인도 충남 예산 농고에서 축산을 전공했지만 한국 무늬목계의 거두 최득수 회장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한국 무늬목계의 거두였던 최득수 회장(現한국종합목재 최병길 사장의 부친)밑에서 5년을 일하면서 목재와 인연을 맺은 것이 그의 평생의 업이 된 것이다. 유승봉 회장은 “故최득수 회장으로부터 엄청난 무형의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37년간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故최득수 회장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했다. 故최득수 회장의 고향은 부여인데, 그곳에는 최득수 회장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최득수 회장이 한국 무늬목계 발전을 이루게 한 것을 기리기 위해 공덕비를 세운 것이다. 유승봉 회장은 이 공덕비를 세울 때 지인 380여명과 함께 많은 조력(助力)을 하기도 했다.

외상장부 없는 회사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공급한다’는 풍산목재. 시가 50여억원 어치, 물량 2천여㎥의 재고를 가지고 유통 및 가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풍산목재.
풍산목재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칠레, 러시아, 아프리카, 호주, 미국, 캐나다, 중국 등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특수목과 제재목을 직접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다. 또 구조재, 천연데크재, 방부목 등 목조주택 자재를 비롯해 내외장 마감재, 창호재, 정원용 목재, 철물에 이르기까지 ‘풍산에서 찾아서 안 나오면 국내에 없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풍산은 국내를 대표하는 종합 목재회사이다.
풍산이 이처럼 국내를 대표하는 목재회사로 자리매김 한데는 합리적인 가격 경쟁력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막강한 재고파워를 가격 안정화와 연계시킨 것이다. 풍산은 외상거래를 하지 않는다. IMF 이전에는 20억원 넘게 외상거래를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외상은 물론 어음도 받지 않는다. IMF 이후에 외상 거래근절은 유승봉 회장 형제의 철칙이었다. 입금이 안되면 출고도 안한다는 고집이 매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외상거래근절은 회사를 건실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풍산은 목재 수입시에도 구매자의 입장에서 신뢰를 강조한다. 말레이시아의 한 거래처와는 30년간 지속적으로 거래하고 있을 만큼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물론 미국, 캐나다, 중국, 아프리카, 남미 등 각국의 업체들과 신용을 우선으로 해서 거래를 하고 있으며 거래처에서는 물건을 국내로 보내 확인 후 입금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신뢰를 쌓고 있다.

배달도 없고 영업사원도 없다
풍산목재는 배달도 안하고, 영업사원도 없다. 배달이나 영업사원을 쓰면 그만큼 제품가격을 올려야하기 때문이다. 밀어내기식 외상거래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싼 값에 물건을 판매하는 비법이다. 풍산목재는 외상장부도 없다.
‘외상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유승봉 회장 형제의 지론이다. 있는 범위 내에서 과욕을 부리지 말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유승봉 회장이 외상값을 받을 때의 일화가 있다. 돈을 못 받은 경우에 회장인 유승봉 씨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돈을 받았다. ‘사장님이 돈을 줘야 체불임금을 받습니다’라고 쓴 플랜카드를 붙인 차를 몰고 나가서 돈을 줄때까지 마이크로 떠들어 댔다. 어떤 때는 요강을 들고 들어가서 ‘돈 줄때까지는 당신과 나는 밖으로 못나간다’며 윽박지르기도 하고 차 앞에서 누워서 오기를 부리기도 했다. 오죽하면 풍산 돈 떼먹으면 징그럽다며 현금주고 사간다는 말이 업계에 떠돌기도 했다.

★ 지금까지 목재산업사 제재산업 편을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파티클보드의 역사」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