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내린 함박눈으로 국민대학교 캠퍼스가 하얗게 덮여 차분한 적막으로 가라앉았던  12월의 어느 겨울날, 봉일범 교수는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로 기자를 맞아줬다. 건축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미국에서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하고온 그는 본인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 건축물의 설계, 그리고 건축과 관련한 수많은 연구성과와 집필서적으로 잘 알려져있는 건축학자이자 건축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공간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업무를 맡아서 하던 봉일범 교수는 문득 ‘진짜 설계가 뭐지?’라는 스스로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유학의 길을 택했고, 귀국 후에는 해외의 여러 건축 현장에서 느낀 많은 것들을 건축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과 공유했다. 봉일범 교수를 만나 현재 건축에 대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짜 건축’에 대해 가졌던 의문
학부와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졸업 이후에 ‘공간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배웠습니다. 1990년대 말이었는데, 참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진정으로 좋은 건축이란 어떤 것일까?’, ‘이대로 계속 하다 보면 좋은 설계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던졌던 이 질문으로 바쁜 와중에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더 공부해보자’는 것이었죠.

그렇게 해서 썼던 책이 ‘건축-지어지지 않은 20세기’였고, 이후 유학도 다녀오면서 처음 가졌던 의문에 대해 어느정도 답을 찾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건축은 OO다’라고 한마디로 정의내리지는 못했습니다.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고, 건축을 공부하면서 지금껏 제가 생각해온 것들, 느낀 것들, 경험한 것들을 하나씩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완주 ‘단계정’ 실외 전경
       
건축의 딜레마, “집보다 오래사는 사람은 없다”    
모든 업계가 그렇듯이 경제상황의 영향이 반영돼서 지금은 ‘어렵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라고 말합니다. 건축업계도 다소 침체된 상황에 몇년째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시행되는 사업이나 신규건축에 대한 수요가 경기의 영향을 받아 확연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인데, 여기에 더해서 건축의 근원적인 딜레마가 하나 더 있습니다.

건물은 대개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보다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집을 잘 지어 놓으면 최소한 수십년은 가게 되니 새로 지을 집의 수요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건축주들이 정상적인 수준의 주택을 평생동안 한번 짓는다고 한다면, 일부러 집을 허물지 않는 이상 집보다 오래 생존해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겠죠. 
 
그렇게되면 자연스럽게 건축의 업역이라는 것도 점점 변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축보다는 수리·리모델링이 이전과 비교했을때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목조건축의 발전 가능성, Hybrid
건물의 신축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기야 하겠지만, 근래에 접어들면서 ‘편안한 안식처’라는 개념의 단독주택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 자리하게된 것이 바로 ‘목조주택’입니다. 목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자연의 선물과 같은 소재입니다. 실제로도 인체에 이로운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목재로 지은 집에서 다른 소재로 지은 집에서보다 쾌적한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구요.

다만, 이렇게 이로운 점이 부각되다보니 목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약점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음과 진동에 대해서는 확실히 취약하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흰개미에 의한 피해가 우려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건설 직후에 목재의 건조에 따라 자연스럽게 뒤틀림이라든지 갈라짐 등의 변화가 생기는 것 등은 목재가 가진 특성이자 목조건축물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목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요즘은 Hybrid(혼성) 공법으로 짓는 목조주택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닥 슬라브는 철근콘크리트로 하고 벽체는 목조로 하는 등 구조 방식을 목조와 그렇지 않은 재료로 혼용할 경우 단점은 적고 더 좋은 집을 지을수 있습니다.

▲동탄 ‘다른 두 집’ 실외 전경

친환경에 대한 재고(再考) 
생활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건축계에서도 ‘친환경’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두가지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하나는 문자 그대로 ‘환경과 친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여름에 덥게 살고 겨울에 춥게 사는 것이 단열이 잘된 집에서 적은 에너지로 사계절 일정한 온도에서 사는 것보다 더 친환경이 아닐까요? 물론, 화석연료의 사용량을 줄인다는 점에서 보면 단열이 친환경의 최대화두일 수도 있겠지요. 또 하나의 문제는, 당연한 얘기지만 친환경이라는 것이 상업적으로 악용되는 구호여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농약값이 안들어갔는데 가격이 더 비싼 유기농 채소의 아이러니처럼 말입니다.  
 

건축을 의뢰하시는 분들에게    
집을 짓는, 건축을 하는 과정은 논리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프로세스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측면으로 고려돼야할 사항이 참 많다는 것이겠지요. 끝으로 건축을 의뢰하는 건축주 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한가지는 건축가를 ‘믿고 맡겨달라’는 것입니다. 충분한 신뢰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설계과정은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봉일범 교수 프로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미국 하버드 대학 건축학석사
•(주)공간 종합건축사사무소 근무
•현재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건축학부 부교수로 재직중 

•주요 저서
‘건축-지어지지 않은 20세기’ 연작 10권 
•주요 시공설계 작품
‘파주 책집’, ‘완주 단계정’, ‘동탄 다른 두 집’, ‘양평 개군서당’, ‘파주 대각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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